기약 없는 수술 일정, 다칠까 걸릴까 조마조마...출구 없는 ‘의료공백’ 불안한 환자들

김명지 기자 2024. 4. 18.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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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이탈 두 달째
‘응급실 뺑뺑이’ 논란도
의대 증원 정책과 관련해 의정갈등이 계속되고 있는 16일 대구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관계자가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의 일방적 의대 증원 정책에 반발해 전공의들이 대거 의료 현장을 떠난 지 2개월째를 맞아 치료가 시급한 환자들이 병원을 찾지 못해 숨지는 일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가 진료보조(PA) 간호사의 업무 역량을 높이고 전임의와 개인병원 의사들로 의료 공백을 메우고 있지만 한계에 다다랐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정부가 의대 증원 정책에서 후퇴하지 않겠다는 입장이고 의사들 역시 의대 증원 정책 원점 재검토만 요구하고 있어 해법이 보이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정치권 의료계가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해 빠른 시일 안에 합리적 중재안을 만들어야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 의료진 부족해 진료 거부

18일 의료계에 따르면 지난달 이후 치료받을 대형병원을 찾지 못해 숨지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지난 11일 부산에 사는 50대가 급성 대동맥박리 진단을 받은 후 수술이 가능한 대형 병원을 찾다가 숨졌다. 지난달 31일 경남 김해에서는 급성 대동맥박리 진단을 받은 60대가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숨졌다.

지난달 충북 보은군에서 도랑에 빠진 33개월 아이가, 충북 충주시에서 전신주에 깔린 70대 여성이 사망했다. 대한응급의학회는 긴급하게 이들 대동맥박리 사망자 발생과 관련해 “전공의 사직 사태와 아무 관계가 없다”고 밝혔지만 의료공백 사태가 길어지면서 중증응급환자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암 환자들의 불편도 점점 커지고 있다. 경기도 분당에 사는 한 여성은 유방암 건강검진에서 판정을 받았지만, 수술과 치료를 받을 병원을 고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여성은 집 근처에 분당서울대병원, 분당차병원 등 대형 대학병원이 있지만, 진료와 수술 일정을 잡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진료 예약을 하더라도 연기 통보를 받을 수 있어 불안하다.

암은 천천히 진행되는 질환이기 때문에 암 환자는 응급 환자로는 분류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전공의 이탈 사태 이후 주요 대학병원은 신규 암환자는 예약을 받지 않고 있다. 환자 환우회 커뮤니티에서는 “암 수술을 받으려면 서너 달은 기본이고, 다섯 달을 기다리라고 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출산일정이 임박한 고위험군 임산부, 뇌질환 환자들도 불안을 호소하고 있다.

◇ “증원 1년 유예 등 대책 내야”

의사단체와 정부는 접점을 찾지 못하는 상태다. 의사단체들은 의료 공백 사태를 해결하려면 정부가 증원 정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는 전날(17일) 성명서를 내고 ‘의대 증원 원점 재검토’를 재확인했다. 같은 날 대한의사협회도 브리핑에서 “대통령은 의대 정원 증원을 멈추라”고 요구했다.

정부는 의료 공백 사태 장기화에 대비하고 있다. 정부는 당장 전공의의 빈자리를 진료보조(PA)간호사들이 채울 수 있도록 교육에 나섰다. 이번에 새로 PA간호사로 배치되거나 경력이 1년 미만인 PA간호사, 교육 담당 간호사는 이날부터 8~24시간 시범 교육을 받는다.

정부는 내달부터는 80시간의 PA간호사 표준 교육과정을 운영할 계획이다. 여기에 시니어 의사 활용, 전임의 확충 등을 대안으로 병원에 제시하고 있는 상태다.

전문가들도 의견이 엇갈렸다. 양측이 팽팽히 맞설 것이 아니라 정부가 절충안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과 정부 정책은 돌이킬 수 없다는 주장이다. 윤석준 고려대 보건대학원 예방의학과 교수는 “현재 사직한 전공의들이 4월 말까지 복귀하지 않으면, 1년의 수련 과정을 채우지 못해 유급된다”라며 “4월 말 5월 초가 넘어갈 때까지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내년 봄까지 의료 대란이 이어진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윤 교수는 “정부가 마주 달리는 기차처럼 의료계와 맞부딪히면 결국 피해는 국민이 보게 된다”라며 “정부에서 의대 증원 1년 유예 등 전향적 대책을 내놓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의대 입학 정원 2000명 증원은 이미 발표된 사안이라 대통령도 뒤집을 수 없다”며 “행정 절차가 진행된 정책을 백지화하면 고등교육법 위반이라 오히려 학부모와 수험생으로부터 소송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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