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4.아주대학교 도구박물관

경기일보 2024. 4. 18.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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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대 도구박물관. 윤원규기자

 

꽃이 지고 난 자리를 채운 나뭇잎들이 싱그럽다. 캠퍼스를 거니는 학생들의 표정과 발걸음에도 싱싱함이 가득하다. ‘율곡관’, ‘성호관’, ‘다산관’, ‘홍재관’은 아주대 캠퍼스의 주요 건물에 붙여진 이름이다. 아주대 도구박물관(관장 김종식)은 ‘연암관’에 있다. 그렇다. 연암관은 ‘열하일기’를 통해 조선의 개혁을 설파한 박지원(1737~1805)의 호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수원화성을 설계한 정약용의 호를 딴 다산관도 있고 18세기 문예부흥을 꽃피운 정조대왕의 호를 딴 홍재관도 있다. 캠퍼스 건물에 조선의 대학자와 실학자들이 추구한 실사구시 정신을 우리 시대에 계승하려는 뜻을 담고 있다는 사실에서 아주대의 건학이념이 뚜렷하게 느껴진다. ‘사실에 근거해 진리를 추구한다’는 실사구시 정신은 우리 선조들이 일상에서 사용한 도구에 집약됐다.

아주대 도구박물관. 윤원규기자

■ 국내 최초의 도구박물관

아주대 도구박물관(Ajou University Museum of Tools)은 국내 최초로 ‘도구’를 테마로 한 개방형 전문 박물관이다. 도구와 관련된 유물을 집중적으로 수집해 온 아주대가 개교 40돌인 2013년 도구박물관을 개관한다. 농기구부터 인쇄 도구, 대장간 도구, 목공 도구, 도량형기 등 약 300점의 유물을 전시해 선조들의 생활상을 생생하고 흥미롭게 엿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다산 정약용 연구자로 알려진 조성을 교수가 초대 도구박물관장을 지냈다. “인류의 역사와 문화는 도구를 만들면서 발전됐다는 점에서 인류의 역사는 곧 도구의 역사입니다.” 조 관장의 말처럼 도구는 역사의 동력이다.

박물관 입구 유리관 속에 동물 조각처럼 생긴 시커먼 물건이 들어 있다. 무엇일까 다가가 보니 ‘먹통’이다. 먹이 묻은 실을 들었다 놓으면 순간 곧은 줄이 그어지는 먹통은 가구를 제작하거나 집을 짓는 목수의 필수품이다. 기하학적 무늬가 촘촘히 새겨진 다식판과 나무 표면을 다듬는 대패도 들어 있다. 입구에 커다란 필름도 늘어뜨려 놓았다. 세 가닥 필름에는 무엇이 담겨 있을까? 앞쪽에 있는 흑백 필름부터 살펴본다. 1973년 제1회 입학식, 1974년 개교기념식 등 아주대 50년의 역사적 순간이 담겨 있다.

아주대 도구박물관. 윤원규기자

■ 툴툴씨네 가족이야기

박물관은 툴(tool)툴(tool)씨네 가족이 사용한 도구들을 전시해 놓은 방식이다. 툴툴씨네 가족은 모두 일곱 명인데 모두 솜씨가 좋다. 논에 물꼬를 내는 ‘살포’를 손질하는 아버지(툴툴씨)가 중앙에 서 있다. 그 왼편에 새끼를 꼬는 막내아들과 곁에 앉아 아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어머니, 길쌈질하는 할머니가 있고 오른편에 대패질하는 할아버지와 일을 돕는 첫째 아들, 짚신을 삼는 삼촌이 있다. 막내아들이 집안 곳곳을 돌아다니며 방과 도구를 설명해 주는 임무를 맡았다. 전통 도구들에 어떤 지혜와 사연이 담겨 있을까? 사학과 대학원에 재학 중인 도구박물관 홍현기 조교가 집안을 안내해 주는 툴툴씨의 막내아들 역할을 맡아줬다.

할아버지가 대패질하고 있는 작업장부터 둘러본다. 할아버지는 오랜 시간 소목장으로 일해 솜씨가 뛰어나 마을에서 이름난 목수다. 형은 할아버지처럼 뛰어난 소목장이 되는 꿈을 가지고 일을 배우고 있다. 목수의 손때가 묻은 유물들이 정겹다. ‘정(丁)자자’와 ‘기역자자’는 글자처럼 생겼고 ‘연귀자’는 삼각자와 비슷하다. ‘탕개톱’, ‘깎낫’은 양쪽에 손잡이가 있다. 망치처럼 생긴 ‘그무개’처럼 도구들의 특징과 쓰임을 드러낸 이름이 재미있다. 대팻집은 마찰이 적고 결이 곧으며 수축이 적은 참나무나 느티나무로 만들었다는 사실도 새롭다.

다음은 건넌방이다. 보부상으로 전국을 떠도는 삼촌이 건넌방에서 짚신을 삼고 있다. 삼촌은 올봄과 여름에 시장에 내다 팔 물건들을 준비하고 먼 길을 떠나기 위해 짚신을 만들고 있다. 짚신을 만들 때 ‘짚신틀’을 사용한다. 새끼줄을 걸어 지지대 역할을 해주는 도구로 ‘신틀’ 또는 ‘짚틀’로 불린다. 짚신틀 바닥에 있는 구멍에 두 개의 기둥을 꽂은 후 새끼줄을 걸면 짚신을 만들 수 있고, 세 개를 사용하면 짚신보다 비싼 미투리를 만들 수 있다. ‘나무바늘’, ‘망태기’, ‘신골 방망치’ 같은 도구들이 있다. 벼에서 나온 짚을 이용해 만드는 짚신은 사극 영화를 통해 우리에게 익숙한 물건이다. 문득 속된 궁금증이 일어난다. 짚신 한 켤레에 담긴 정성은 돈으로 계산하면 얼마나 될까?

남성의 공간인 사랑방에 선비들의 애장품인 문방사우가 있다면 안방에는 여성들의 애장품 ‘규중칠우(閨中七友)​’가 있다. 반짇고리에 담긴 자, 가위, 바늘, 실, 골무, 다리미, 인두 일곱 가지는 조선 여인들이 바느질과 다림질할 때 사용했던 소중한 도구들이다. 불과 얼마 전에도 사용했던 물건이라 눈에 익은 것들이지만 인두는 좀 낯설다. 미니 다리미라 부를 수 있는 인두는 한복의 깃처럼 세밀한 부분을 섬세하게 다릴 때 사용했던 도구답게 끝이 뾰족하다. 숯불이 담겨 있는 다리미와 달리 인두는 화로에 달궈 사용하기 때문에 금방 식는다. 따라서 두세 개의 인두를 교대로 사용해야 했다.

아주대 도구박물관. 윤원규기자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부엌에는 무엇이 있을까. 시루, 도마, 강판, 칼, 솥, 시루, 맷돌 등 모두 우리의 눈에 익숙한 물건이다. 바람을 일으켜 화력을 세게 하는 풍로는 요즘 보기 힘든 물건이라 다시 살펴본다. 제사를 드릴 때나 잔치에 빠지지 않는 것이 떡이다. 떡을 만들 때 쓰였던 떡살에 새겨진 문양이 너무나 섬세하고 우아하다. 먹는 떡에도 아름답고 정교한 문양을 새겼던 옛사람들의 고운 마음이 그립다. 떡살은 옛사람들의 미적 감각과 여유를 깨닫게 해준 멋진 유물이다.

창고에는 농기구들이 가지런히 정리됐다. 묵은 땅을 갈아엎는 쟁기, 씨 뿌릴 때 골을 타는 ‘고써레’가 보인다. 투박한 ‘새갓통’은 거름을 밭에 뿌리거나 똥오줌을 퍼서 장군에 담을 때 사용하는 그릇이다. 바가지처럼 생겼으나 한쪽에 거름을 따라내기 쉽도록 배출구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땅을 기름지게 해야 풍년을 기약할 수 있었기에 똥오줌으로 만든 거름을 내는 일을 빠뜨릴 수 없다. 집을 벗어나면 툴툴씨네 마을(시장) 이야기가 시작된다. 숯불을 달구는 ‘풀무’와 커다란 나무에 넓적한 쇠를 박아 놓은 ‘모루’가 인상적인 대장간을 지나면 여러 가지 물건을 파는 상전이다. 18세기부터 책을 찾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책을 빌려주는 생겨난 ‘세책점’의 풍경이 재미있다. 전시 유물 중에서 책등을 묶을 때 사용했던 ‘책 조이개’는 매우 보기 어려운 특별한 유물이다.

아주대 도구박물관. 윤원규기자

■ 아주대 50년의 역사를 담다

아주대는 지난해 경기도·수원시와 함께 ‘아주 50년展: 100년을 향한 여정, 협력하는 지성으로(路)’ 특별전을 열었다. 1973년 개교해 지난해 개교 50주년을 맞이한 아주대가 걸어온 여정을 하나하나 살펴본다. 대학 설립부터 세계 수준의 대학으로 도약한 현재에 이르기까지 아주대가 걸어온 길을 사진과 기록물, 실물 자료 등을 통해 대학의 역사가 생생하게 그려진다. “개관 이래 대학 구성원들로부터 수집·보관해 온 3천300여점의 자료 가운데 90여점을 선별한 것입니다. 1부 ‘아주 50년의 발자취’는 1965년 ‘한국과 프랑스 간 기술 초급대학 설립에 관한 협정’에 의해 설립된 아주공업초급대학의 탄생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아주대 발전사를 보여줍니다. 2부 ‘대학이념의 실천’은 개교 이래 추구해 온 ‘인간존중, 실사구시, 세계일가’의 교육이념에 따라 아주대가 걸어온 길을 주요 주제별로 전시한 것입니다. 3부 ‘아주가 나아갈 길’은 지난 50년의 역사를 바탕으로 미래 100년을 위한 길을 개척해 나가는 아주대의 현재를 담은 영상물을 상영합니다.”

아주대 도구박물관은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박물관 입구에서 만난 입간판에 적힌 문구가 ‘아주 재미있는 박물관’이다. 수원시의 중심에 알차고 짜임새 있는 전시가 돋보이는 아주대 도구박물관이 있다. 김준영(다사리행복평생교육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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