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결 지상주의는 시대착오적 발상[포럼]

2024. 4. 18.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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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결 원칙은 초기 민주주의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시대가 흐르고 민주주의가 발전하면서 다수결은 더는 절대시되지 않게 됐다.

단순한 다수결 원칙을 보완하는 여러 정교한 민주주의 모델이 학계에서 제시됐고, 그 노력은 구미 민주주의 국가들의 실제에도 상당 부분 반영됐다.

다수결 지상주의라는 낡고 거친 흉기로 무장한 입법 독재는 민주주의와 국정만 망가뜨리는 게 아니고 거대 야당에 양날의 검으로서 예상치 않은 자해(自害)를 가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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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호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다수결 원칙은 초기 민주주의의 상징이었다. 1인 전제정이나 엘리트 과두정과 달리 다수 대중의 민의를 받들려니 자연히 다수결 지상주의가 힘을 얻었다. 그러나 시대가 흐르고 민주주의가 발전하면서 다수결은 더는 절대시되지 않게 됐다. 단순한 다수결 원칙을 보완하는 여러 정교한 민주주의 모델이 학계에서 제시됐고, 그 노력은 구미 민주주의 국가들의 실제에도 상당 부분 반영됐다. 우리 국회도 그런 흐름을 타고 다수결 지상주의에 제한을 두는 운영 제도와 원내 규범을 부분적으로 키워 왔다.

그런데 제22대 국회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하게 된 더불어민주당에서 시대착오적 다수결 지상주의를 되살려 원(院) 구성에 적용하겠다는 소리가 들린다. 통상 제2당이 맡던 법제사법위원장을 절대 내줄 수 없다거나 심지어 모든 상임위원장을 가져와도 된다는 소리도 들린다. 당의 현직 최고위원들, 전현직 원내대표들이 연이어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을 보면 원 구성 협상의 기선 잡기용이 아니라 속내를 드러낸 말로 들린다.

거대 야당이 이를 실제로 이행하려 한다면 국회와 정치권 전체는 격랑에 빠지게 된다. 원 구성 단계에서부터 극한적인 여야 갈등이 벌어질 것이며, 국회는 제때 개원하지 못하고 입법 과정은 교착에 빠질 것이다. 만약 민주당이 정말로 숫자로 밀어붙여 상임위원장 직을 ‘싹쓸이’한다면 입법 독재가 현실이 돼 한국 민주주의와 국정 거버넌스는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입법 과정에서 권력 균형과 다원성이라는 민주주의의 가치는 사라질 것이다. 국회와 대통령·행정부 간의 관계는 얼어붙어 국정이 거의 멈추는 지경에 이를 수 있다.

다수결 지상주의라는 낡고 거친 흉기로 무장한 입법 독재는 민주주의와 국정만 망가뜨리는 게 아니고 거대 야당에 양날의 검으로서 예상치 않은 자해(自害)를 가할 수도 있다. 입법권의 완전한 장악과 독주는 선호 의제의 통과라는 전리품을 가져올 수도 있지만, 국정 교착과 정국 불안정에 대해 모든 책임을 지는 문제를 촉발한다. 이런 책임 문제는 2년 후 지방선거와 3년 후 대선을 준비해야 하는 정치인과 정당이라면 결코 직면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 다수결 지상주의에 따른 입법 독재는 순탄하게 작동해서 좋은 성과를 내기 힘들다. 사회의 파편화와 양극화가 교차하며 체제 전반에 복잡성·급변성·불확실성·갈등이 커지다 보니 국정 성과가 잘 나오지 않는다. 유권자는 막연한 불안감을 느끼고 각종 형태의 권력과 권위를 불신한다. 이런 유권자를 어떤 입법과 국정 운영으로도 지속해서 만족시키기는 힘들다. 특히, 주도권을 쥐고 있는 측은 행정권을 행사하는 대통령이든 입법권을 휘두르는 거대 정당이든 유권자가 불만·불신을 넘어 분노를 터뜨리는 과녁이 되기 쉽다.

학자들이 단순한 다수결 지상주의를 괜히 비판하는 게 아니다. 시대 상황상 여러 민주주의 가치를 놓칠 뿐 아니라, 유권자의 호응을 얻는 국정 성과를 낼 수도 없고 통치 주체가 자칫 책임 문제만 걸머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수주의와 합의주의를 어떻게 배합할지, 승자독식 제도를 어떻게 완화해 소수 측도 포용할지, 다수결에 앞서 어떤 숙의 과정을 거칠지 등을 연구하는 것이다. 거대 야당도 여기서 교훈을 얻으면 좋겠다.

임성호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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