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법 제정, 유럽 모델은 곤란하다[시평]

2024. 4. 18.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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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
생성형 AI 부정적 시각 확산
EU 인공지능법 2026년 시행
위험 4단계 구분해 사전 규제
美는 행정명령으로 간접 규율
지원이냐 규제냐 입법 갈림길
인권과 국가 먹거리 조화 중요

최근 사회 전반에 걸쳐 생성형 인공지능(AI)에 대한 기대가 급격히 커지고 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생성형 AI에 대한 두려움도 커지고 있다. 통계는 없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전반적으로 AI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많은 듯하다. 그 이유는 크게 2가지다. 첫째는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뺏어간다는 것이며, 둘째는 AI가 인간을 지배하고 통제할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2021년 유럽 집행위원회는 AI로부터 인간의 기본권을 보호하고, 신뢰 가능한 AI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 ‘유럽연합(EU) 인공지능법안’을 제안했고, 지난 3월 13일 이를 통과시켜 2026년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이 법의 주요 내용은 AI 시스템을 위험 정도에 따라 4단계로 구분하고 단계별로 규제의 정도를 달리하는 것이다. 즉, 인권을 위협하는 정도에 따라 최상급 위험군에 속하는 것으로 인간의 잠재의식이나 취약성을 이용하는 기술이거나 생체인식 기술 등은 ‘수용 불가능한 위험군’으로 분류하고, 이 기술의 개발 및 사용은 금지된다. ‘고위험’ ‘제한된 위험’ ‘최소 위험’에 속하는 AI의 경우에는 위험 수준에 따라 복잡 또는 간소한 절차를 거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물론 제6장에서 기술 혁신 지원 조치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지만, 전체 113개 조문 중 7개 조문에 불과해 이 법은 AI의 사전 규제에 초점을 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도 ‘인공지능 기본법(안)’을 포함해 9개가량의 AI 관련 제정 또는 개정 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일 정도로 AI에 대한 법제 정비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입법 방향은 유럽과 많이 다르다. 여러 법안 중 가장 논의가 활발한 ‘인공지능 기본법(안)’의 경우 AI 기술 도입과 활용 지원, AI 기술 개발과 창업 지원 등 산업 육성 등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사전 규제보다는 산업 촉진 차원에서의 지원법 형태의 입법을 추진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나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규제가 지나치게 완화됐다는 이유로 지원보다는 억제에 초점을 맞춘 법안으로 바꿀 것을 요구하고 있다. 즉, 유럽 인공지능법을 모델로 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최근 각국의 신기술 관련 입법례를 보면 크게 2가지 입법 방식으로 분류해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사전 규제법’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지원법’ 방식이다.

우리나라가 어느 법제 방식을 따라야 하는지에 대한 중대한 기로에 서 있는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가 AI 관련 글로벌 시장 선도 국가로 가는 길과 후진국으로 가는 길목에 서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참고로, 미국은 ‘신기술에는 법의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입법 전통에 따라, AI와 관련해서도 유럽처럼 법률을 제정해 규제하기보다는 행정명령의 형식으로 규율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정부 기관뿐만 아니라 민간 기업도 AI 개발에 법적인 직접 통제를 받는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연방정부 기관만 통제를 받고 민간 기업은 권고 형식의 간접 통제만 받는 것이다.

유럽이 AI라는 신기술에 대해 2021년 사전규제법안을 마련한 반면, 미국은 반도체라는 신기술에 대해 2022년 반도체지원법을 제정해 2800억 달러(약 390조 원)를 지원하기로 한 것이다. 즉, 신기술에 대한 유럽과 미국의 법감정이 전혀 다른 것이다. 미국이 중국과의 기술 패권 전쟁 중임을 고려하면, 장기적으로는 AI에 대해서도 지원법을 제정할 가능성이 크다.

최근 수년간의 AI 관련 특허 출원 건수를 종합해 보면 중국이 미국보다 2배나 많다. 다음이 일본·한국 순이며, 유럽 국가 중 독일이 5위지만 한국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여타 유럽 국가들은 대만이나 캐나다보다도 열악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우리나라가 ‘인공지능법(안)’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유럽 인공지능법’을 모델로 하는 데 매우 신중해야 함을 의미한다. 자동차 제조의 신기술을 가장 먼저 개발한 영국이 이른바 ‘붉은 깃발법(Red Flag Law)’을 제정해 자동차 속도를 제한한 이후 독일 등에 자동차 시장의 선두 자리를 뺏겼던 역사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인권 보호와 국가의 먹거리 창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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