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만부 팔린 93살 미국 요리책…잡채·갈비 K-푸드도 담았다

박미향 기자 2024. 4. 18.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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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향의 미향취향 ‘조이 오브 쿠킹’
1931년 초판…손자·증손자 9번째 개정판
이르마(어마) 롬바우어의 손자, 이선 베커. ‘Courtesy of Joy of Cooking’ / ‘JOY OF COOKING’ 제공
미향취향은?

음식문화와 여행 콘텐츠를 생산하는 기자의 ‘지구인 취향 탐구 생활 백서’입니다. 먹고 마시고(음식문화), 다니고(여행), 머물고(공간), 노는 흥 넘치는 현장을 발 빠르게 취재해 미식과 여행의 진정한 의미와 정보를 전달할 예정입니다.

매달 서점가에 쏟아지는 요리책만 해도 수십종이 넘는다. 출판업계뿐만이 아니다. 인터넷에는 화려한 음식 사진으로 무장한 레시피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제대로 된 조리법인지, 건강에 도움이 되는지 따질 겨를도 없이 쏟아진다.

음식은 우리 몸에서 에너지를 만드는 중요한 원천이다. 제대로 된 음식을 섭취한 이만이 미래를 도모할 수 있다. 신뢰할 만한 조리법, 요리에 ‘진심인 이’들이 의지할 만한 레시피가 중요한 이유다. 여행자들에게 지도처럼 말이다. 정확한 지도만이 여행자를 가고자 하는 데로 인도한다. 이런 이유로 ‘조이 오브 쿠킹’(요리의 즐거움) 개정판 국내 출간은 반가운 일이다. 이 책은 1931년 처음 출간됐다. 속도가 ‘기본값’인 세상에서 100년 가까이 멈추지 않고 시대를 아우르는 조리법을 담아온 요리책은 그 의미가 각별하다.

저자 이르마(어마) 롬바우어(1877~1962)는 가정주부였다. 우울증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한 남편 때문에 깊은 슬픔에 빠져있던 그는 생계도 막막했다. 돌파구로 ‘요리책’을 골랐다. 자녀들의 권유가 큰 힘이 됐다. 자비로 3000부를 찍었는데 뜻밖에 성공을 거뒀다. 현재 전 세계 누적 판매량 2000만부의 고전이 됐다. 시대와 국경을 넘어 스테디셀러가 된 데는 후손들의 공도 크다. 그의 딸 매리언 롬바우어 베커(1903~1976), 손자 이선 베커와 증손자 부부(존 베커와 메건 스콧)는 시대의 조류에 부응하며 새로운 레시피를 추가한 개정판을 꾸준히 냈다.

이르마(어마) 롬바우어. ‘Courtesy of Joy of Cooking’ / ‘JOY OF COOKING’ 제공
이르마(어마) 롬바우어(사진 왼쪽)와 그의 딸 매리언 롬바우어 베커. ‘Courtesy of Joy of Cooking’ / ‘JOY OF COOKING’ 제공

요리 초보자에게는 든든한 조력자, 전문 요리업계 종사자에게는 소중한 자료가 된 이 책 중에선 1997년에 나왔던 7번째 개정판이 특히 주목받았다. ‘뉴욕타임스’가 요리면 톱 기사로, ‘타임’이 특집 기사로 다뤘다. 조리 기계의 발달, 맞벌이 부부 증가, 외식업계의 빠른 성장, 건강식에 대한 관심 등 달라진 사회 환경이 반영된 내용이었다. 이번 책은 9번째 개정판이다. 1235쪽에 담긴 레시피만 4600개가 넘는다. 한겨레가 최근 개정판의 주역 이선 베커와 존 베커-메건 스콧 부부와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레시피 빼는 건 고통스러운 일”

―대중은 새로운 유행을 좇고 지난 것은 쉽게 잊는다. 그런 측면에서 100년 가까운 이 책의 역사는 놀라운 기록이다. 비결이 궁금하다.

“이르마 할머니는 아마추어 요리사였다. 자신이 요리 초보자였을 때 궁금했던 것들을 잊지 않았다. 초보자에게 초점을 맞춰 집필한 게 성공 요인이다. 여기에 우리의 노력이 더해졌다. 초판은 400쪽에 1000개 레시피가 실렸는데, 소박했다. 우리는 시대에 맞게 수정하되, 기존 독자들에게 인기 있는 레시피는 남겼다. 우리도 요리 트렌드에 열광하고, 흥미로운 조리법은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하지만 변치 않는 방대한 요리 지식도 존재해야 한다. 개정판은 새로운 재료, 현대의 맛과 시대를 초월하는 기술, 고전 레시피 사이의 균형을 섬세하게 조정한 결과다.”

―개정판을 내면서 중점을 둔 것은?

“우리의 목표는 ‘독자들이 더 자주 요리하도록 영감을 주고, 주방에서 자신감을 갖게 하며 궁금한 점은 해결해주는 지침서를 만드는 것’이다. 이 목포를 위해 △맛있는 요리를 만드는, 신뢰할 수 있는 레시피 출간 △깊이 있는 정보 제공 등에 중점을 뒀다. 지금 세상에는 아름다운 사진이 있는 요리책, 유명 셰프를 내세운 책 등 많은 요리책이 출간되고 있지만 정작 초보자 관점에서 공들인 책은 적다. 인터넷 검색도 신뢰성을 담보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에스이오(SEO, ‘검색엔진 최적화’로 트래픽을 높이는 디지털 마케팅)나 다른 임의적인 요소가 작동한다.”

이르마(어마) 롬바우어의 증손자 존 베커(사진 왼쪽에서 두번째)와 그의 아내 메건 스콧(사진 맨 왼쪽). © Pableaux Johnson
이르마(어마) 롬바우어의 증손자 존 베커(사진 오른쪽)와 그의 아내 메건 스콧. © Pableaux Johnson

―기후위기 시대다. 음식물 쓰레기는 또 다른 골칫거리다.

“2019년 개정판에 버려지는 남은 재료 활용법을 실었고, 생태계 보전에 친화적인 식재료 정보도 넣었다. 환경 파괴가 적은 해산물 고르는 팁 같은 것 말이다. 육류보다는 채소 중심의 조리법을 추가했다. 식재료를 최대한 남김없이 활용하는 법도 담았다.”

―개정판을 내면서 가장 어려웠던 일은?

“지난 9년간 수천가지 레시피를 테스트하는 일이 힘들었다. 개정 작업이 마무리될 때쯤 다른 가정 요리사를 고용해 테스트를 또 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레시피를 빼기도 하는데, 고통스러운 일이다. 과거 빠진 레시피에 상심해 항의하는 독자 편지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이선 베커는 할머니 이르마 롬바우어와 어머니 매리언 롬바우어 베커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할머니 집에 도착하면 쿠키 냄새가 났고, 따스한 포옹이 이어졌다”고 한다. 어릴 때 그는 ‘보조 요리사’였다. “정원에서 허브·아스파라거스·토마토 등 제철 재료라면 뭐든 따서 주방에 가져가 씻었어요. ‘완수’하면 어머니는 다른 임무를 주문했는데, 그 모든 일이 즐거웠습니다.” 이런 추억이 담뿍 담긴 레시피를 삭제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최근에 출간된 ‘조이 오브 쿠킹’ 국내 개정판. 박미향 기자

‘화려한 음식 사진’ 없는 이유

책에는 프랑스, 이탈리아 등 서양 요리 전통도 자세히 다뤄져 있지만 ‘터키식 윙’ ‘중국식 슬로’ ‘타이식 다진 돼지고기 샐러드’ ‘자메이카식 콩 스튜’ 등 아시아 국가 음식도 상세하게 담겼다. “타이·베트남 등 다른 지역 식문화가 눈에 띄게 성장하는 모습도 담고 싶었다”는 게 이유다. 한식도 있을까.

―요즘 한식이 케이(K) 푸드란 이름으로 세계적으로 인기다.

“한식을 정말 좋아한다. 한식당 가서 먹어보고, 조리에 도전해보려고 한다. 돌솥도 구매할 거다. 이 책엔 김치찌개·김치·잡채·갈비·파전·김치볶음밥 레시피만 있지만 다음 개정판에 한식을 더 넣을 생각이다.”

‘조이 오브 쿠킹’ 여러 개정판 책. ‘Courtesy of Joy of Cooking’ / ‘JOY OF COOKING’ 제공
이르마(어마) 롬바우어와 자녀들. ‘Courtesy of Joy of Cooking’ / ‘JOY OF COOKING’ 제공

책은 음료부터 디저트까지 방대한 양의 요리 정보와 조리법이 실렸다. 육수 부분만 봐도, 기본 설명과 사용 도구, 거르고 식히는 법까지 자세하다. ‘갈색 소 육수’ ‘돼지 또는 햄 육수’ ‘가금류 육수‘ ’생선 육수 ‘채소 육수’ ‘버섯 육수’ ‘압력솥 육수’ 등 미처 생각지도 못한 ‘육수 내기’가 다뤄지고 있다. 이런 식의 구성은 이 책에서 다루는 모든 식재료에 적용된다. 호박·토마토·치즈 등 식재료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도톰하게 할애한 영양학적 접근이 돋보인다.

이 책에는 침이 고이게 하는 ‘화려하게 유혹하는 음식 사진’이 한장도 없다. 왜일까. 여기에 지난 100년간 살아남은 이 책의 존재 이유가 있다. “독자들이 자신이 만든 요리를 화려하고 완벽한 사진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들의 방식을 존중하며 요리하도록 돕고 싶었습니다.” 저자들의 답변이다. 평소 마파두부, 김치찌개, 생강 넣은 간장에 익히는 닭 넓적다리 요리, 다양한 샐러드 등을 자주 해서 먹는다는 이들. 그들의 밥상은 ‘집안의 유산’이 양념처럼 뿌려져 더없이 풍성하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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