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상민의 사진지문] 완벽한 아침

오상민 사진작가 2024. 4. 18.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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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커피, 책, 그리고 사진

# 오전 5시 50분. 알람이 울리기 전에 조용히 눈을 뜹니다. 배달시킨 커피 원두를 꺼냅니다. 가위로 모서리만 조금 자릅니다. 진한 원두 향이 잠을 깨웁니다. 그라인더 3인분 표시선까지 원두를 넣고 복도 쪽 방으로 들어갑니다.

# 문을 닫고 방석으로 그라인더를 덮고 커피를 갑니다. 덕분에 아무도 깨어나진 않았네요. 그렇게 만든 커피를 보온병에 담습니다. 물병도 챙기고, 작은 1인용 돗자리도 챙깁니다. 읽고 싶었던 책과 겉옷도 챙깁니다. 혼자 잠시 소풍을 다녀오려 합니다.

# 사전투표를 마친 덕분에 하루 휴가가 생겼습니다. 점심엔 가족과 함께 영화관에 갈 예정입니다. 막내가 오매불망 기다리던 쿵푸팬더 4편입니다. 늦어선 안 될 소중한 약속입니다.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헬멧을 쓰고 자전거를 들고 현관을 조용히 나옵니다. 하늘은 '햇살을 비췄다 구름 뒤로 숨었다'를 반복합니다. 새벽 공기가 시원합니다. 페달을 밟는 만큼 바람이 얼굴에 부딪힙니다.

# 한강에 접어들어 새로운 길로 가봅니다. 난지공원에 접어들자 벚꽃이 남아있습니다. 멋진 풍광에 자전거를 멈추고 주변을 둘러봅니다. 벚나무 아래 적당한 의자를 찾아 앉습니다. 따뜻한 커피를 꺼냅니다. 벚꽃 아래에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습니다. 이보다 완벽할 순 없는 아침입니다.

# 이른 아침이라 그럴까요. 조용한 세상엔 새소리만 가득합니다. 그때 조금 떨어진 곳에서 망원렌즈를 들고 뭔가를 열심히 찍고 있는 사람을 발견했습니다. 시선을 따라가보니 그곳에 듬직한 반려견이 앉아있더군요. 벚나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미소가 가득한 주인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저까지 행복해집니다. 순간, 작은 보답이라도 드리고 싶어졌습니다.

# 최대한 수상하지 않게 다가가 정중히 물어봅니다. "괜찮으시면 제가 선생님 카메라로 두 분 찍어드릴까요?" 주인이 다가가자 반려견은 안기고 핥고 신이 났습니다. 둘의 모습은 그렇게 행복해 보일 수 없습니다. 꼭 부모와 자식의 모습입니다. "좋은 추억이 됐습니다." 카메라를 돌려드리며 감사 인사를 받고 나니 마음이 뿌듯합니다. 사진을 '잘' 찍는다는건 참 좋은 일입니다. 누군가에게 진심을 전할 수 있고, 작은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 그와 반려견은 다시 길을 떠납니다. 어디선가 또 멋진 사진을 담겠죠. 그들을 기억하기 위해 멀리서 사진에 담아봅니다. 이젠 저도 가족에게 돌아가야 할 시간입니다. 저도 아이들과 손잡고 영화관에 가야지요. 벚꽃과 커피, 책, 그리고 귀한 인연의 사진까지. 더욱 완벽한 아침이 됐습니다. 아참. 귀염둥이 반려견의 이름은 '모카'입니다.

사진·글=오상민 천막사진관 사진작가
studioten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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