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쓸모가 없다… 사라지고 싶다…" 우리가 몰랐던 '그들의 우울과 절망' [스프]

이현정 기자 2024. 4. 18. 09:0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더 스피커] 청년을 위한 정신건강 정책이 필요한 이유


지난 몇 년간 코로나19 유행으로 모두가 힘든 시기를 보냈지만, 청년층의 우울과 자살 문제는 특히 도드라졌습니다. 이는 수치로도 증명됩니다. 지난해 말, 정부는 청년들의 정신건강 문제에 집중하는 내용을 담은 정책을 발표했습니다.

그날 저는 서울의 한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에서 30대 여성 환자 A 씨를 만났는데, 그는 치료 과정에서 느낀 어려움과 아쉬움을 진솔하게 털어놨습니다. 정부 정책에는 미처 담기지 않은 내용이 많았습니다. <더 스피커>는 A 씨의 사례를 통해 우리 사회가 '청년들의 정신건강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병원에 가야 하는데 돈 때문에..."

A 씨가 우울증 진단을 받은 건 20대 중반의 일이었습니다. 우울한 감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던 어느 날, '나는 쓸모가 없다. 사라지고 싶다. 죽고 싶다'라는 생각에까지 미치자 그는 스스로 병원을 찾았습니다. 현명한 결단이었지만,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약을 챙겨 먹으며 몇 년을 지내다가, 자살 시도로 한 달 넘게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습니다. 자해와 자살 시도가 빈번해지면서 A 씨는 경계성 인격장애 진단까지 받았습니다.


"약의 부작용이 있다 보니까, '약을 끊고 싶다' '병원을 그만 가고 싶다'라는 생각이 강해요. 지금은 관리해야 하는 병이라고 생각하고, 당뇨처럼 생각하고 계속 약을 병행하고 하지만 사실 불편하거든요. 약을 안 먹으면 활동이 안 되니까요."

치료에 대한 의지가 강하고, 주위의 지지를 받고 있는 A 씨조차도 머뭇거리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부담스러운 치료비 때문입니다.

"입원하면 당장 나가고 싶어요, 돈 때문에. 너무 비싸요. 집중 치료를 하는 게 입원병동만한 데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엄두가 안 나요. 병동에서 만난 친구는 저처럼 경계성 장애여서 입·퇴원이 잦았는데, 자해를 하면 흥분도가 굉장히 높은 상태에서 응급실로 실려가거든요. 그 상황이 잦은 사람은 응급입원비가 부담이 돼요."

밤에 찾아오는 감정의 소용돌이는 더 위태롭습니다. A 씨는 그때마다 주위에 도움을 요청하기보다 의료진을 찾아가 치료를 받는 게 효과적이란 사실을 알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저 스스로 119를 눌러서 '제가 지금 죽고 싶은 상황이라 상태가 안 좋으니 병원에 좀 데려가 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데 기존에 그 병원에서 외래진료를 받지 않았으면, 약 처방이 안 돼요. 약을 먹지 못한 상황에서 계속 대기하다가, 응급실이니까 피검사나 심전도 검사 같은 걸 필수로 하잖아요. 결국 아무것도 처치받지 못하고 비용만 10만 원 넘게 나와서, 나중에는 응급실도 안 가게 되죠."
 

팬데믹에 급증한 청년 자살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부동의 1위입니다. 삶의 만족도와 주관적 건강 상태는 최하위입니다. 특히 A 씨 같은 청년층의 정신건강 문제는 점점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대 우울증 환자 수는 2018년 9만 9,796명에서 2022년 19만 4,322명으로 2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국립중앙의료원과 중앙응급의료센터에 따르면, 2022년 전국 응급실 이용자의 0.56%는 자해·자살 시도자(4만 3,268건)였습니다. 이 중 46%가 10~20대로, 이들 세대의 자해·자살 시도는 최근 수년간 급증하는 추세입니다.

코로나19 유행으로 청년층의 정신건강은 사회적 상황에 취약하다는 사실이 극명히 드러났습니다. 팬데믹은 진정됐지만, 그 영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A 씨가 다니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에도 청년층 환자가 많습니다. 대부분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불면 등을 겪고 있습니다.

"젊은 분들은 아무래도 취업 준비하면서 많이 와요. 취업을 해도 문제인 게, 사회초년생이다 보니까 '내가 잘하고 있는 게 맞나' 이런 생각도 많이 하고요. SNS가 발달해 있다 보니까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스트레스받아서 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요즘에는 선택지가 너무 많고, 상황이 불확실하다 보니까 과거보다 더 사람을 힘들게 만들 수 있는 거죠.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고 느끼는 게, 회사에서 '여기 괜찮으니까 가봐라'라고 해서 같은 회사분들이 정신과에 같이 다니는 경우도 있어요."
(허규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심각성을 인지한 정부는 최근 '20~34세 청년층의 정신건강검진 주기를 기존 10년에서 2년으로 단축해 조기에 개입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건강검진을 할 때 2년에 한 번씩 우울증·조현병·조울증 등에 대한 검사 문항을 추가해, 위험군으로 분류되면 심층 검사를 진행하는 방식입니다.

보건복지부는 청년층을 우선 대상으로 삼은 이유에 대해 "조울증·조현병 등 발병 시기가 20~30대이고, 조기 발견 시 적절한 치료를 거쳐 회복할 수 있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이현정 기자 aa@sbs.co.kr

Copyright ©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