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위기종 서식지 사라지나…‘4대강 세종보’ 재가동 움직임

최예린 기자 2024. 4. 18.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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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호강과 금강 만나는 합강
‘미호종개·흰수마자’ 서식지
지난 11일 오전 합강 일대의 모습. 합강습지보호 지역시민네트워크 제공

“어, 날씨 좋다. 미호종개 만나기 딱 좋은 날이구먼.”

성무성 물들이연구소장이 가슴팍까지 올라오는 장화를 신으며 말했다. 성 소장은 동료 활동가들과 함께 어류 모니터링을 위해 강을 찾은 터였다. 성 소장과 조사팀은 물고기 채집에 필요한 손잡이 그물과 수중 카메라 등을 가지고 하천 중간의 모래톱으로 향했다. 조사를 시작하자마자 중고기·몰개·모래무지 등이 연달아 나왔다. 20분쯤 허리를 굽혔다 펴기를 반복하던 조사팀이 환호했다. “미호종개다!”

이들이 이날 어류 모니터링을 한 곳은 세종시에 있는 ‘합강’이다. 합강은 주민들이 미호강과 금강의 합류부를 부르는 이름이다. 금강의 제1지류인 미호강은 충북 음성 마이산에서 발원해 진천·청주, 세종시 조치원을 거쳐 세종동과 합강동의 경계에서 금강과 만나는데, 이 일대엔 넓은 모래톱과 하중도, 습지가 발달해 있다. 이곳은 ‘수생태계의 보고’로도 불리는데, 하천 폭이 넓고 수심이 깊은 곳과 얕은 곳이 적절히 섞여 있어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하기에 적합하다.

수생태계 보고 ‘합강’엔 습지, 하중도, 모래톱

지난 11일 충청지역 시민단체들이 모여 꾸린 ‘합강습지보호 지역시민네트워크’의 합강 생태 모니터링에 동행했다. 모니터링은 환경단체 활동가와 생태 전문가 등 20여명이 조류, 어류, 양서·파충류, 식생 4개 분야로 팀을 나눠 진행했다.

오전 11시. 금강 본류에서 200m가량 떨어진 합강 일대로 들어서자 대규모 버드나무 군락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합강의 시작점에 있는 ‘월산교’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자 넓은 모래톱과 하중도가 보였다. 미호종개를 발견한 성 소장이 능숙한 솜씨로 수중 카메라 촬영을 시작했다.

지난 11일 합강 생태 모니터링에 나선 전문가와 환경단체 관계자, 시민들이 합강에서 어류 조사를 하고 있다. 오윤주 기자

처음 발견한 지점에서 20m 떨어진 곳에서 또 다른 미호종개를 발견했다. 피라미·돌마자·줄몰개도 잇따라 나오더니 흰수마자도 보였다. 미호종개와 흰수마자는 모두 멸종위기 야생동물 1급으로, 미호종개는 2005년 천연기념물(454호)로도 지정됐다.

미호종개는 1984년 김익수(전북대)·손영목(서원대) 교수 연구팀이 발견해 학계에 보고한 한반도 토종 물고기다. 암갈색 몸 중앙에 원형·삼각형 점이 있고, 턱엔 6가닥 수염이 있으며 길이는 6~8㎝ 정도다. 학계는 세계 유일종으로 인정하고, 발견 서식지 이름을 따 ‘미호종개’라 이름 붙였다. 4대강 사업 등으로 서식지가 크게 줄었다가 2018년 세종보가 완전 개방된 뒤 드문드문 발견되고 있다.

지난 11일 합강에서 관찰한 미호종개. 합강습지보호 지역시민네트워크 제공

미호종개·흰수마자, 한반도서만 서식

잉어과인 흰수마자 역시 한반도에만 서식하는 특산종인데, 턱 아래에 흰 수염 8가닥이 나 있는 희귀종이다. 얼핏 모래무지를 닮았는데, 모래무지는 턱 아래 수염이 2개뿐이다. 조사팀은 이날 1시간30분 동안 미호종개 5마리와 흰수마자 8마리를 관찰했고, 민물검정망둑·갈문망둑·밀어 등도 채집했다. 채집한 물고기는 확인 뒤 모두 풀어줬다. 앞서 금강의 주요 5개 지점을 조사한 세종환경운동연합은 지난해 8월 합강 일대에서 미호종개와 흰수마자 서식을 확인한 바 있다. 2021년 9∼10월 순천향대와 한국수자원공사의 조사에서는 합강 일대에서만 44마리의 흰수마자가 관찰됐다.

성 소장은 “미호종개와 흰수마자는 위협을 느끼면 강바닥 모래에 몸을 숨긴다. 오염되지 않은 고운 모래는 이들 물고기 서식에 꼭 필요한 조건이다. 하중도에 깨끗한 모래가 있고 적당한 유속에 수심도 깊지 않은 지금의 합강은 미호종개와 흰수마자가 서식하기 알맞은 환경”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11일 합강에서 관찰한 흰수마자. 합강습지보호 지역시민네트워크 제공

하지만 불안 요인도 있다. 정부가 다음달 재가동을 목표로 세종보를 수리하고 있어서다. 환경단체들은 세종보 재가동이 합강 생태계에 미칠 영향을 걱정했다. 세종시는 세종보 재가동을 전제로 금강을 따라 관광·레저·체험·휴식 공간을 조성하는 ‘비단강 금빛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김성중 대전충남녹색연합 국장은 “세종보 수문이 닫히면 합강의 수위가 지금보다 2∼3m 이상 올라가게 되고, 합강 일대의 모래톱과 하중도는 다시 물에 잠긴다”며 “그렇게 되면 강바닥엔 펄이 쌓이고 미호종개와 흰수마자도 다시 자취를 감출 것”이라고 했다. 특히 미호종개는 전세계 몇 안 되는 서식지가 사라지는 꼴이라 사실상 멸종 위기에 놓이게 된다는 게 환경단체들의 주장이다. 한국수자원공사는 지난해 합강 일대에 멸종위기종인 미호종개 치어를 방류하기도 했다.

세종보 가동되면 금강에 레저 공간 들어서

실제 이날 합강과 가까운 쪽 모래톱 표면에선 얇은 펄층이 갈수기 논바닥처럼 갈라진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시궁창 냄새도 났다. 세종보가 닫혀 있던 2012년부터 6년 동안 강바닥에 퇴적된 펄층이었다. 김 국장은 “세종보를 재가동하고 물을 막으면 지금처럼 물이 흐르는 강이 아니라 호수가 된다”며 “수위가 올라가면서 생태적 가치가 큰 합강 모래톱과 습지도 물에 잠기게 될 것”이라고 했다.

댐과 보가 흰수마자 서식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의 연구진(김근식·허문성 등)은 지난해 12월 발표한 논문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 흰수마자의 모래 선택과 잠입 행동에 관한 연구’에서 “댐이나 보는 하천의 자연 흐름을 변형시킴으로써 모래의 퇴적에 영향을 미친다”며 “금강은 4대강 사업으로 보가 건설되며 정수 환경의 변화로 흰수마자 분포가 급격히 감소했다가 이후 2018년 보를 개방하며 흰수마자 분포 지역이 보 구간을 따라 지속해 확대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2021년 한국수자원공사 용역으로 순천향대 산학협력단이 작성한 ‘댐 유역 하천의 멸종위기 어류 정밀 모니터링 및 복원방안 연구 용역’ 보고서에서도 세종보 등 금강의 보 수문을 막으면 흰수마자와 미호종개 서식에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라 지적했다.

지난 11일 김성중 대전충남녹색연합 국장이 세종보가 재가동되면 합강의 수위가 얼마나 올라갈지 설명하고 있다. 오윤주 기자

세종보 수문을 닫으면 합강 습지를 찾는 조류 역시 급감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11일 조사에서는 1시간30분 동안 합강 일대에서 총 18종 108마리의 새가 관찰됐다. 그중엔 천연기념물이나 멸종위기종인 참매도 있었다. 금강 일대의 조류 생태를 꾸준히 모니터링하는 이경호 대전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합강 일대는 세종보가 개방된 2018년부터 확인되는 조류의 수가 가파르게 늘고 있다”고 했다. 그는 “큰고니의 경우 2018년 9마리 관찰됐지만, 2022년엔 42마리, 지난해엔 62마리까지 확인됐다”며 “큰고니 등 대부분 철새는 수심이 낮아야 걸어 다니며 먹이 활동을 하는데, 세종보 수문이 닫혀 수위가 올라가면 더 이상 이곳을 찾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1일 합강 모래톱 모습. 아직 과거에 쌓였던 펄층이 남아 논바닥처럼 갈라져 있다. 최예린 기자

‘합강습지보호 지역시민네트워크’는 보존 가치가 큰 합강습지를 보호구역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합강 모니터링 역시 합강의 생태적 가치를 입증해 보호구역 지정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진행됐다.

박창재 세종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합강이 이대로 다시 망가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어 절박한 마음으로 지역시민네트워크를 꾸렸다”며 “합강 생태계를 지키기 위해선 세종보 재가동 추진을 멈춰야 한다. 금강을 유원지와 공원으로 만들겠다며 멸종위기종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만들려는 말도 안 되는 계획을 당장 접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윤주 최예린 기자 floy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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