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국 100여곳에 ‘비밀경찰서’… 中의 ‘국경없는 감시감옥’[Global Window]

박세희 기자 2024. 4. 1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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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lobal Window - 中 떠나도… 공산당 억압 시달리는 ‘중국 밖 중국인’
당국, 비밀경찰서 등 활용해
‘톈왕’‘여우사냥’작전 벌여
반체제 인사 등 체포·송환
채팅앱인 위챗 검열 강화도
유학생엔 연구내용 등 요구
거부땐 중국내 가족 불이익
중국 출신 불법 이민자들이 멕시코를 통해 미국 캘리포니아로 들어온 뒤 미국·멕시코 국경에 설치된 국경장벽을 따라 줄을 이어 이동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중국 곳곳에 봉쇄령이 내려졌을 때 중국에는 ‘윤학(潤學)’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삶을 윤택하게 하는 학문이라는 뜻 같지만 실제로는 중국에서 도망치는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뜻이다. ‘윤(潤)’의 중국어 병음은 ‘룬’(run)으로, 달아난다는 뜻의 영어 ‘런’(run)과 철자가 같다.

중국이 급속도로 경제 발전을 이룬 이후부터 중국인들의 중국 탈출 러시는 점차 확대됐으며 특히 팬데믹을 계기로 많은 중국의 엘리트들이 해외로 떠났다. 현재 중국에서 태어난 중국인 1050만 명이 중국 밖에서 산다. 이들보다 더 큰 이민자 집단은 인도인과 러시아인, 멕시코인뿐이다.

중국인 이민자의 4분의 1은 미국에 살고 다른 4분의 1은 홍콩에 거주한다. 그 뒤를 일본과 캐나다가 잇는다. 전체적으로 해외에 있는 중국인의 거의 절반이 서구에 살고 있는 셈이다. 이들은 각자 원대한 포부를 안고 해외로 향하지만 나라를 떠난다고 해서 중국공산당의 굴레로부터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중국을 떠나도 정권의 굴레는 여전 = 최근 이코노미스트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체제하에서 중국을 떠난 이들이 전에 없이 철저한 조사를 받고 있다”며 중국 밖 중국인들에 대한 중국공산당의 억압 유형에 대해 전했다. 먼저, 주로 반(反)체제 인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당의 직접적 위협이다.

해외로 도피한 부패 사범을 체포, 송환하는 ‘톈왕(天網)’, 해외 거주 범죄 도피자를 본국으로 송환하는 ‘여우사냥’ 등이 여기에 속한다. 해외 곳곳에 설치돼 있는 중국의 ‘비밀경찰서’가 이러한 일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제인권단체인 세이프가드 디펜더스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중국은 해당 국가의 허가 없이 총 53개국 100개 이상의 비밀경찰서를 설치했다. 촘촘한 당의 감시는 해외 거주 중국인들의 휴대폰으로도 뻗어 있다. 중국 내 거주인뿐만 아니라 해외에 사는 중국인들도 주로 사용하는 채팅앱 위챗에 대한 검열이 그 예다.

유학생에 대한 감시는 더욱 억압적이다. 중국인 유학생들이 전 세계의 ‘풀뿌리 대사’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한 시 주석은 국가 장학금을 받는 유학생 6만5000명에 대한 규정을 한층 강화했다. 중국 당국은 때때로 그들이 연구하고 있는 내용의 세부 사항을 요구하는데 유학생이 이를 거부하면 국익을 해치는 행위로 간주한다. 이 경우 유학생의 가족은 받은 장학금을 다시 토해내야 한다.

전 세계 대학 캠퍼스에 설치돼 있는 중국학생학자연합회(CSSA)가 유학생 감시 역할 등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2022년 베이징(北京)동계올림픽이 열리기 전, CSSA 조지워싱턴대 지부는 신장(新疆), 홍콩에서의 인권 유린을 비난하는 포스터를 붙인 사람들에 대한 처벌을 직접 대학에 요청하기도 했다.

해외에 거주하는 중국인의 입장에서 이러한 당의 감시가 두려운 이유는 자칫 중국에 살고 있는 가족이 괴롭힘 등 불이익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22년 11월 중국에서 ‘백지시위’가 잠시 촉발됐을 때 해외에 있는 유학생 상당수가 이에 동조했고, 중국 당국은 동조한 사람들의 중국 내 가족을 괴롭히는 식으로 유학생들의 움직임을 통제했다고 국제인권단체 프리덤하우스는 밝혔다.

게티이미지뱅크

◇기업·정부, 중국인 채용 꺼려…중국인에 대한 차별, 낙인되기도 = 이러한 중국공산당의 움직임은 해외에 거주하는 중국인들의 운신의 폭을 좁힌다. 외국인 사업가의 입장에선 중국공산당과 연결돼 감시를 받는 사람을 채용하기 꺼려지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인도 출신 이민자와 중국 출신 이민자를 비교하며 “두 국가 출신 이민자 모두 부유하고 고등 교육을 받았다는 점에서 비슷하나, 비즈니스와 정치 분야에서 중국 출신은 인도 출신보다 현저히 덜 성공적”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구글의 모회사인 알파벳, 마이크로소프트 등 거대 기업들을 이끄는 이들 중 인도 출신은 다수인 반면 중국 출신은 소수다. 네덜란드 레이던대의 프랭크 피에케 교수는 “실리콘밸리 회사들의 경우 중국 출신보다는 인도 출신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정치 분야에서도 인도계인 리시 수낵 총리가 영국을 이끌고 있고 인도계 어머니를 둔 카멀라 해리스가 미국의 부통령으로 재임하는 등 인도 출신의 활약은 두드러지나 중국 출신은 그러지 못하고 있다.

이는 나아가 중국인을 향한 차별로 작용하기도 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 행정부가 내놓은 ‘차이나 이니셔티브’가 대표적이다. 조 바이든 행정부 들어 이는 공식 종료됐지만, 이로 인해 2018∼2022년 사이 150명 이상의 중국 학자들이 기소됐고 결국 많은 중국계 연구자들은 이를 계기로 미국을 떠났다. 지식인들조차도 중국 출신이라는 이유로 미국 등 서구의 주류 사회로 편입하지 못하는 것이다.

최근 호주에서는 중국공산당과의 관계로 의심을 사 징역형까지 받는 사례가 나왔다. 호주 빅토리아주 지방법원은 지난 2월 중국계 호주인 디 산 즈엉(68)에 대해 중국 공산당이 호주 정치권에 영향력을 행사하길 계획했다며 징역 2년 9개월을 선고했다. 2018년 호주가 ‘내정간섭 금지법’(foreign interference law)을 도입한 이후 이 법으로 유죄 선고가 내려진 첫 사례다.

법원은 즈엉이 앨런 터지 당시 다문화부 장관에게 일부러 접근해 지역 병원에 기부금을 전달하며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고 판결했다. 이에 즈엉의 변호인은 “즈엉은 단순히 영향력 있는 사람들과의 인맥을 과장하는 것을 좋아했다. 또 즈엉과 같은 사업가에겐 중국 정부 관계자들과의 관계는 필수”라며 “만약 즈엉이 이탈리아 사람이었다면 그가 이런 의혹을 받았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박세희 기자 saysa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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