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윤정의 식물 이야기] 진달래가 숲을 망가뜨린다고요?

차윤정 산림생태학자 2024. 4. 18.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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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의 영어식 이름은 ‘코리안 로도덴드론Korean rhododendron’
국가대표 토종꽃 이야기
진달래는 제주도에서 백두산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모습, 하나의 이름으로 피어나는 우리 봄의 전령사다. 위로 살짝 치켜 올린 10개의 수술은 미인의 긴 속눈썹처럼 아름답다.

마을 뒷산에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어나면 보자기를 접어 허리에 두르고 꽃을 따러 다녔다. 잎도 없이 꽃만 피어 있어, 보지도 않고 손바닥으로 훑어 담았다. 어린 아이 얼굴에 부딪히는 진달래 꽃잎은 보드랍고 차가웠다. 마른 산을 다니느라 목이 마르면 진달래 꽃잎을 먹었다. 차갑고 쌉쌀한 꽃잎에 입안이 시원했다.

집으로 가져와 마당에 풀어놓으면 짓이겨진 꽃잎에선 김이 났다. 꽃잎을 고루 펼쳐 꽃술을 털어내고, 봄볕에 말려 술을 담갔다. 우리 할매는 술꾼 남편과 술꾼 아들로 평생 고생했지만, 꽃으로 술을 담글 때면 얼굴에 수줍은 미소가 피었다. 뻐꾸기의 첫 여름 인사가 울릴 때쯤, 산에서는 이미 지고 없는 진달래가 술독에서 다시 피어났다.

진달래는 제주도에서 백두산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전 산야에서 거의 한결같은 꽃색과 한결같은 모양, 하나의 이름으로 피어난다. 참꽃이 진달래와 같든 다르든, 어쨌거나 진달래는 진달래다. 봄이 오면 천지로 진달래가 피어났고, 진달래로 인해 우리는 봄을 어여쁜 처녀로 인식한다. 잎이 피기 전에 꽃부터 피는, 마음부터 앞서는 설렘. 그렇게 봄 처녀는 분홍치마를 입고 산을 넘어 우리 곁에 온다.

잎이 피기 전, 핑크빛 꽃부터 피어나는 진달래는 우리의 봄을 아름다운 처녀로 인식하게 한다. 우리에게 봄은 분홍치마를 입고 산을 넘어 온다.

음력 3월 3일(삼월삼짇날, 올해는 4월 11일이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고, 양의 기운이 겹치며, 만물이 소생하여 기운이 흥하는 날, 온 동네, 아니 온 나라 사람들이 남녀노소 불문하고 들로 나가 진달래꽃으로 화전을 부치며 봄을 맞이했다. 산과 들에 흐드러진 진달래 하나로도 봄의 서정을 충분히 누렸다.

중국에서 진달래는 '두견화'라 불린다. 기원전 1000년경, 중국 촉나라 황제 두우가 위나라에 패한 후, 두견새로 변해 밤마다 조국을 그리워하며 울다 피를 토하고 죽어, 그 핏빛으로 물든 꽃이라 하여 두견화가 되었다. 진달래꽃으로 담근 술은 두견주라 한다.

진달래Rhododendron mucronulatum는 진달래 속의 낙엽활엽관목으로 전국의 얕은 산지에 분포한다. 흔히 잎이 나기 전에 분홍의 통꽃들이 가지 끝에 2~5개씩 무리지어 피어 일대를 붉게 물들인다. 10개의 긴 수술은 속눈썹처럼 치켜 올라 멋스럽다.

여러 겹의 비늘조직으로 싸여있는 진달래 꽃눈은 가지 끝에 2~5개씩 달린다. 일시에 꽃이 피면 흐드러진 꽃무리가 연출된다.

진달래 속屬 식물들은 세계적으로 1,000여 종 이상이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진달래, 철쭉, 만병초 등 10~12종이 자생한다. 진달래 속 식물들이 진화하면서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그 과정에 우리나라도 함께했다는 사실이 당연하지만 신기하다.

흔히 진달래는 척박한 산성 토양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물론 진달래는 다른 식물에 비해 척박한 산성 토양에서 잘 자란다. 하지만 진달래는 양지 바른 곳, 비옥한 곳, 적절하게 습한 땅에서도 잘 자란다. 그러니 '진달래는 척박한 산성토양에서도 잘 자란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대부분의 육지 식물 뿌리는 토양 속 특정한 균(곰팡이균이나 버섯균)과 공생하고 있다. 보통의 세균이나 균들이 토양 속의 죽은 생물체(유기물)를 분해해서 영양분을 얻고 살아가는 데 비해, 공생균들은 살아 있는 식물 뿌리와 협동해서 도움을 주고받는다. 식물은 광합성을 통해 생산한 탄수화물을 균에게 주고, 균은 광대한 균사를 이용해서 토양 속의 양분을 흡수해서 식물뿌리에 전달한다.

여기에, 진달래 과科 식물들과 공생하는 균들은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산성화된 토양에서는 낙엽물질로부터 질소를 분해하는 세균들의 활동이 약하고, 식물들은 질소 부족에 시달리게 된다. 진달래형 균근은 질소분해효소를 직접 분비해 토양유기물로부터 질소를 분해한다. 이런 공생균 덕분에 진달래는 산성화된 척박한 토양에서도 비교적 잘 살 수 있다.

연한 핑크빛으로 피어나는 철쭉은 단박에 유럽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로얄 아잘리아로 불리며, 다양한 재배 품종의 원종이 된 자랑스런 우리 식물이다.

진달래, 나쁜 식물 아냐

한편 사람들은 진달래가 숲을 망가뜨린다고도 말한다. 소나무 숲에 진달래가 피어나면, 토양이 척박해지고 숲이 망가진다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진달래가 들어오면, 생강나무도, 노린재나무도 들어온다.

소나무 뿌리나 낙엽 속에는 다른 식물의 발아와 성장을 억제하는 화학물질이 존재한다. 이런 물질을 타감물질他感物質이라 한다. 소나무 숲 아래 다른 식물들이 잘 자라지 않는 것이 바로 이 타감물질 때문이다. 진달래는 이런 독성 물질을 견디며, 소나무 숲에서도 자라기 시작한다. 그런데 약간의 아쉬운 반전이 있으니, 진달래 잎이나 뿌리 역시 이런 타감물질을 다른 식물들에 비해 많이 가지고 있다.

진달래속 식물을 사랑하는 원예가들은 여전히 '아잘리아'라는 명칭을 사용하며, 다양한 아잘리아 품종을 만들어낸다(사진은 철쭉의 재배품종).

비록 진달래 낙엽의 영양 상태가 낮고 고약할지라도, 소나무 낙엽보다는 상황이 낫다. 오랜 시간 진달래 낙엽이 쌓이고, 비록 더디지만 분해가 진행되고, 그러다 어느 시점에 도달하면 토양에 전에 없던 양분이 쌓여 있다. 여전히 토양은 독하지만 다른 식물들이 서서히 이주해 오면서 진달래만의 하층 숲이 아닌 다양한 식물들의 하층 숲이 만들어진다.

뿐만 아니라, 소나무 숲이 다양한 낙엽활엽수 숲으로 바뀌면서, 과거 거의 진달래로만 채워졌던 숲 하층이 지금은 진달래가 아쉬울 정도로 자라는 면적이 줄어들었다. 진달래, 걱정 말고 맘껏 사랑해도 된다.

진달래 이야기엔 반드시 철쭉이 동반된다. 철쭉은 진달래에 비해 비교적 높은 산에서 자란다. 진달래는 꽃이 먼저 피고, 철쭉은 잎이 먼저 나고 꽃이 핀다. 진달래에 비해 꽃색이 연하고, 꽃잎이 크며, 은근한 향기가 있다.

철쭉꽃에서는 끈적이는 물질이 분비되는데, 여기엔 곤충의 공격을 막기 위한 독이 들어 있다. 이런 독성 물질 때문에, 진달래는 먹을 수 있는 참꽃, 철쭉은 먹지 못하는 개꽃이라 불렀다. 다행히 꽃을 먹고 못 먹는 것으로 식물을 구분하는 시대는 끝나고, 철쭉은 진달래와 또 다른 매력으로 사랑받는다.

진달래와 철쭉이 산과 들에 자연적으로 피어나는 것과 달리, 사람들에 의해 심어진 영산홍 무리는 도시 곳곳을 화려하게 장식한다. 영산홍은 일본에서 들여온 재배 혹은 원예품종의 대표명이다. 한때 영산홍을 일본에서 들여온 철쭉, 왜철쭉이라 불렀다. 최근엔 영산홍 대신 우리의 토종 진달래를 심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백두산의 좀참꽃나무는 높은 산의 춥고 바람 부는 날씨 탓에 10cm의 작은 키로 자라는 진달래속 식물이다. 여전히 진달래의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있다.

진달래·철쭉 숙명의 라이벌

1753년, 현대 식물분류학 체계를 만든 린네Carl von Linné는 진달래 속명屬名을 정할 때, 일본 원산의 영산홍을 기본종 중의 하나로 삼고 아잘리아 인디카Azalea indica(현재 Rhododendron indicum)로 발표했다. 즉, 진달래 속명을 아잘리아로 명명한 것이다. 아잘리아 속의 여러 특징 중의 하나는 5개의 수술이다. 진달래와 철쭉은 10개의 수술을, 영산홍은 5개의 수술을 가지고 있다.

1800년경, 식물분류학자들은 아잘리아 속의 식물들을 단 한 종을 제외하고는 모두 현재의 진달래 속명인 로도덴드론으로 병합했다. 장미와 더불어 세계적인 관상수 그룹을 형성하는 아잘리아였기에, 많은 정원사나 원예가, 식물 재배가들이 강렬하게 반발했다. 그래서 여전히 아잘리아라는 명칭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들은 한눈에 로도덴드론과 아잘리아를 구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진달래와 철쭉에 익숙한 우리 역시 진달래와 영산홍을 감각적으로 구분한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다.

영산홍은 일본 철쭉을 기본종으로 하는 다양한 재배품종의 대표명이다. 다채로운 색과 모양으로 세계적인 사랑을 받으며, 도시의 화려한 봄을 장식한다.

흥미로운 점은 10개의 수술을 가진 철쭉은 로도덴드론이어야 하는데, 철쭉의 영어식 이름은 로얄 아잘리아Royal Azalea다. 철쭉은 1854년 러시아 해군 장교 슈리펜바흐Schlippenbach가 우리나라 동해 해안가에서 채집한 철쭉을 유럽에 소개하면서, 정식 학명인 로드덴드론 슈리펜바히Rhododendron schlippenbachii가 정해졌다.

영국의 세계적인 식물 수집가 윌슨Ernest Henry Wilson은 1917~1918년에 우리나라에서 철쭉 씨앗을 직접 채집해 영국에서 재배하기 시작했다. 철쭉의 아름다움에 매혹된 식물 재배가들은 철쭉의 다양한 재배품종을 만들어냈다. 그러니 '로도덴드론이'냐 '아잘리아'냐의 논란은 아름다운 것에 대한 일종의 찬사 배틀인 셈이다.

진달래의 영어식 이름은 '코리안 로도덴드론Korean rhododendron'이다. 1,000여 종 이상의 진달래 속 식물 중에 명실상부한 우리나라 대표선수다. 서구 사회에 내어준 철쭉이 살짝 아깝기는 해도, 의젓한 진달래가 있으니, 쿨하게 넘길 수 있다. 진달래 역시 다채로운 꽃모양과 꽃색의 재배품종이 개발되어 세계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우리에겐 진달래에 대한 오랜 순정이 있다. 화려한 영산홍 무리가 지천으로 만개해도, 뒷산의 진달래 꽃잎이 녹아내리면, 우리 마음 깊은 곳에서 실연의 탄식이 흘러나온다. 봄날이 간다.

월간산 4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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