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공백 두달] ②달라진 대형병원…수백억 적자에 구조조정까지
수련병원 수입 4천200억↓…무급휴가·희망퇴직 '허리띠 졸라매기'
(서울=연합뉴스) 사건·복지팀 =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이 두 달째를 맞으면서 1년 내내 환자로 북새통을 이루던 대형병원들의 풍경도 달라지고 있다.
이른바 '빅5'를 비롯한 대형병원이 중증·응급환자 치료 위주로 재편되고 경증환자들은 병·의원급으로 옮겨가면서 병동을 오가는 환자와 보호자, 의료진은 전공의 이탈 전에 비해 확연히 줄었다.
이 때문에 겉으로는 초기의 혼란이 줄어든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좀처럼 사태 해결의 실마리가 잡히지 않는 가운데 환자들의 불안과 남은 의료진의 피로감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환자 수 감소로 수입이 크게 줄어든 수련병원들은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하고 무급휴가와 희망퇴직, 병동 통폐합 등 여러 방식으로 손실을 줄이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북새통은 옛말…외래 병동 대기석 곳곳 비고 응급실 앞 한산
외래 환자와 보호자들로 1년 내내 북적이던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1층 외래치료실 대기석은 17일 오전 곳곳이 비어 있었다. 늘 상당한 긴장감 속에 화급을 다투는 환자로 조용할 날이 없던 응급실 앞도 비교적 한산했다.
아이의 소아과 통원 치료를 위해 반년 넘게 이 병원을 찾고 있다는 40대 부부는 "확실히 전보다 외래 환자와 보호자들이 줄어든 것 같다"며 "보호자들이 앉을 곳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붐볐는데 지금은 빈 좌석도 많지 않느냐"고 말했다.
수술 병동 앞에서 만난 한 교수는 업무 부담 정도를 묻자 "검사와 수술이 많이 줄어서 (의료공백) 초기보다는 크게 부담이 없다"며 "수익은 확실히 줄어들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 다른 '빅5' 병원 중 한 곳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풍경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전날 이 병원에 입원해 팔꿈치 수술을 받았다는 이모(61)씨는 "이 병원에 다른 가족이 입원했을 때는 병동이 꽉 찼다"며 "어제 입원하고 병동을 돌아보니 병실이 엄청나게 비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원래 2월 27일에 수술 날짜가 잡혔는데 두달 정도 밀린 것"이라며 "교수가 수술장이 30개면 지금은 15개만 연다고 말하더라"고 덧붙였다.
이 병원에서 만난 한 전문의는 "대학병원에서 중환자를 보고 경증 환자는 로컬(지역) 병원에서 보는 게 맞다"며 "중증 환자나 (일정을) 미루기 어려운 수술들은 다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두달이나 계속된 파행으로 수술이나 항암 치료 등 일정에 차질이 생긴 환자와 보호자들의 불안감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산부인과에서 항암 치료를 받고 있다는 장모(57)씨는 "원래 3주마다 치료를 받았는데 이번에는 4주 만에 받게 됐다"며 "사태가 길어질까 봐 걱정"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20대 아들의 투석 치료를 위해 일주일에 세 번씩 병원을 찾는다는 한 60대 보호자는 "투석 환자의 경우 주치의가 소소한 것들까지 알고 있어야 하는데 전공의 파업 이후로는 매번 다른 교수들이 와서 내가 세세한 내용을 다시 설명해줘야 한다"며 고충을 털어놨다.
현장에 남은 의료진 대부분의 피로감도 극심한 상황이다.
삼성서울병원의 한 산부인과 전문의는 컨디션을 묻자 "버티고 있다"며 허탈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는 "수술도 많이 들어가야 하고, 봐야 하는 외래 환자 수도 늘어서 1인 2∼3역을 하고 있다. 퇴근만 제시간에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병원을 찾는 이들이 크게 줄면서 병원 인근의 식당과 약국, 상점들도 큰 타격을 입었다.
삼성서울병원 인근 한 의료기 업체 관계자는 "전공의 이탈 직후에 매출이 절반 정도 줄어서 지금까지도 그대로다"라며 "임대료는 같은 상황에서 손해가 큰 상황"이라고 울상을 지었다.
서울성모병원 지하 1층에 입주한 상점의 직원 역시 "평일에는 3분의 1에서 절반 정도, 주말에는 3분의 2 정도 환자들이 줄어든 것 같고 매출도 그만큼 줄었다. 환자들도 나름대로 타격이 크지만 관련 업체들의 타격도 크다"며 "대책 없이, 느닷없이 벌어진 상황인 데다 앞으로 대책도 안 보인다"며 답답함을 드러냈다.
병원들 수입 4천200억원↓…희망퇴직·무급휴가로 일반직원에 책임 전가
전공의 이탈로 수용할 수 있는 환자가 줄어 큰 손실을 본 수련병원들은 저마다 허리끈을 졸라매고 있다.
대한병원협회에 따르면 전공의 사직 사태 발생 직후인 올해 2월 마지막 2주부터 지난달까지 500병상 이상 수련병원 50곳의 전체 수입은 지난해 2조6천645억원에서 올해 2조2천407억원으로, 약 4천238억3천만원(15.9%) 줄었다. 환자가 줄어든 영향으로, 병원당 평균 84억8천만원가량 수입이 감소했다.
병원들은 비상경영체제 돌입, 직원 무급휴가·희망퇴직, 병동 통폐합, 마이너스 통장 활용 등 다양한 방식으로 손실을 줄이려 부심하고 있다.
의료 공백 상황이 길어지면서 '빅5' 병원 가운데 서울아산병원, 세브란스병원(연세의료원), 서울대병원은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한 상태다.
서울의 한 상급종합병원 관계자는 "상황이 이대로 지속되면 병원 경영에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며 "비상경영을 선포하지 않은 병원도 경영 효율성을 높여서 비상경영체제를 운용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전했다.
서울대병원에서는 기존의 7일 무급휴가를 이달 12일부터 1∼30일 범위로 기간을 선택할 수 있게 확대했다.
세브란스병원도 의사를 제외한 전 부서 직원을 대상으로 사실상 무급휴가인 직원 안식 휴가를 7일 단위로 시행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에서도 직원들이 무급휴가를 쓰는 중인데, 이 병원의 노조 관계자는 "무급휴가 사용 인원이 지난 금요일(12일) 기준 3천명을 넘었다"고 말했다.
서울아산병원은 또 의사를 제외한 일반직 직원들을 대상으로 이달 19일까지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관계자는 "기존 대비 병상은 60∼70%, 수술은 50% 아래로 진행 중"이라며 "하루 손실은 10억원 언저리고, 전체적으로 병원 수입은 20∼30% 줄었다"고 말했다.
병원들은 앞으로 경영이 더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되자 보건복지부에 환자 진료에 따른 건강보험 급여를 미리 지급해 달라고 요청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현재 검토 중"이라며 "선지급은 법적인 근거가 있지는 않지만,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병원이 어려워지자 적극 행정 차원에서 집행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코로나19 때는 정부가 진료를 제한한 점을 고려했지만, 전공의들이 이탈한 현재 상황은 그때와 다르므로 선지급 결정에 고려해야 할 것들이 많다"고 덧붙였다.
시민사회단체들은 병원들이 정부나 건강보험 재정에 손을 벌리기보다 그동안 쌓아온 막대한 규모의 고유목적사업준비금을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고유목적사업준비금은 시설 투자 등 비영리 법인의 고유목적사업을 위해 적립하는 돈이다.
이에 대해 서울아산병원 노조 관계자는 "(인건비 등을 위해) 고유목적사업준비금의 사용처를 변경해달라고 노조가 당장 요구할 생각은 없다"면서도 "정말 심각한 상황이 되면 주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성서호 이미령 오진송 이율립 권지현 기자)
alread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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