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개 향(香)으로 떠올리는 한국…베네치아비엔날레 한국관 전시

황희경 2024. 4. 1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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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거리 대신 향으로 채워… 구정아 작가 "조용하게 사색하는 공간 만들고 싶어"

(베네치아=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공중목욕탕, 수산시장, 할아버지·할머니의 집, 장독대…. 누구나 이런 사물과 장소와 관련된 냄새(향)에서 자신만의 기억을 소환할 수 있다. 향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공간과 이야기를 기억하게 하는 힘을 갖고 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17일(현지시간) 개막한 제60회 베네치아(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전시는 이처럼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강력한 힘을 지닌 향으로 채워졌다.

전시 제목 '오도라마 시티'(Odorama City)의 '오도라마'는 영어로 냄새를 뜻하는 '오도'(odor)와 '드라마'(drama)를 합쳐 만든 단어다. 올해 한국관 작가인 구정아는 이번 전시에서 향을 이용해 관객의 기억과 이야기를 소환한다.

(베네치아=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17일(현지시간) 개막한 제60회 베네치아비엔날레 한국관 전시 '오도라마 시티'에 전시된 구정아 작가의 'KANGSE Spst'와 구정아 작가. 2024.4.18. zitrone@yna.co.kr

활동 초기인 1986년 프랑스 파리 스튜디오의 작은 옥상에 좀약을 배치한 설치 작품 '스웨터의 옷장' 이후 향은 구정아 작가의 주된 주제 중 하나였다.

구 작가는 이번 전시를 위해 지난해 6∼9월 한국인은 물론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 외국인, 입양아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외국에서 사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한국에 얽힌 '향기 메모리'에 대한 사연을 받았다.

이 가운데 25명의 기억을 선정한 뒤 다양한 국적의 전문 조향사들과 협업해 17개 향을 개발했다. 접수된 사연은 한국관 홈페이지에 모두 소개된다.

16개 향은 전시장 곳곳에 잘 보이지 않게 배치된 하얀 돌 모양의 디퓨저에서 분사돼 공간을 채운다. 이 중 1개 향은 관객이 접근할 수 없는 공간에서 분사돼 관객에게 어떤 향일지 상상하게 만든다. 구정아 작가는 "들어갈 수 없어 매력적인 공간"이라면서 "관람객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요소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나머지 1개의 향은 '오도라마 시티'라는 이름의 향수로 제작돼 판매된다. 전시장에서는 공중부양하는 듯한 캐릭터의 코에서 2분마다 '오도라마 시티'의 향이 분사된다. '오도라마 시티'를 분사하는 캐릭터는 작가가 2017년 제작한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우스'(OUSSS)다. 성별도, 나이도 없는 중성적인 캐릭터인 '우스'는 이번 전시에서 처음으로 3차원 조각 형상으로 구현됐다.

(베네치아=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17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개막한 제60회 베네치아비엔날레 한국관 전시장에서 야콥 파브리시우스(오른쪽)와 이설희 공동예술감독이 전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24.4.18. zitrone@yna.co.kr

향 하나하나는 특정한 키워드에서 출발했지만, 여러 곳에서 분사되는 향이 뒤섞이면서 관람객이 직접적으로 구체적인 향을 인지하기는 쉽지 않다. 습도 등의 영향을 받아 전시가 진행되는 기간의 날씨에 따라 향의 농도도 달라진다. 이설희 한국관 공동 예술감독은 "이 공간에서 특정한 냄새를 직접적으로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것에 대해 강박을 갖진 않았다"고 설명했다.

'향'을 컨셉트로 한 공간인 만큼 대부분의 전시 공간은 비어 있고 눈에 들어오는 볼거리는 많지 않다. 디퓨저 역할을 하는 '우스' 형상의 조각 외에 작가의 작업에 자주 등장하는 뫼비우스 띠 모양의 2개의 나무 조각과 이번 전시를 위해 새로 설치된 전시장 나무 바닥에 새겨진 무한대 기호 등이 눈으로 보이는 것의 전부지만 이 역시 단순한 제스처로 공간에 개입해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을 감각적으로 체험하게 하는 작가의 작업 방식과 맞닿아 있다.

(베네치아=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17일(현지시간) 개막한 제60회 베네치아비엔날레 한국관 전시 '오도라마 시티'에 전시된 구정아 작가의 뫼비우스 띠 모양 나무 조각. 바닥에는 무한대 기호가 새겨져 있다. 2024.4.18. zitrone@yna.co.kr

화려한 볼거리는 없지만 관람객들은 오히려 너무 많은 시각적 자극이 넘쳐나는 비엔날레에서 한국관을 찾은 뒤 차분해지는 느낌을 받았다고 평했다. 한 관람객은 "한국관은 쉬어가는 곳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구정아 작가는 "(전시를 계획할 때) 처음부터 한국관은 사색하는 공간으로 방향을 잡았다"고 말했다.

그는 "볼 전시가 너무 많은 비엔날레에서 한국관은 조용하게 사색하고 사람들과 만나 교감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야콥 파브리시우스 한국관 공동 예술감독은 "이번 전시를 구성하면서 장소 특정적인 공간 변형에 가장 큰 중점을 뒀다"면서 "한국관 전시장에서만 가질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창출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베네치아=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제60회 베네치아비엔날레 한국관 모습. 2024.4.18. zitrone@yna.co.kr

zitron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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