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선과 악의 경계선에서

신인철 한국침례신학대학교 신학과 부교수 2024. 4. 18. 07:00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전 세계를 강타한 것은 1980-1990년이다.

하나님을 제외하고 이 세상은 완전히 선한 것도, 완전히 악한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인간의 죄를 용서하는 것은 신의 영역이지만, 선을 추구하기 위해 악과 싸우는 것은 인간의 영역임을 암시한다.

선을 지향하는 자는 자기의 연약함을 인정하지만, 악을 추구하는 자는 자신의 약점을 숨기기에 급급하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신인철 한국침례신학대학교 신학과 부교수

포스트모더니즘이 전 세계를 강타한 것은 1980-1990년이다. 획일화되고 경직된 이성주의에 반감을 품은 자들이 체계화된 틀에서 벗어나 세상을 자유롭게 보고자 하는 열망이 만든 결과다. 이는 윤리적 기준도 흔들어 놓았다. 개인주의 가치관에 날개를 달아주었고 선과 악의 구분도 모호하게 했다. 선과 악은 하나의 독립 계체가 아니라 서로 공존 상태였다. 하나님을 제외하고 이 세상은 완전히 선한 것도, 완전히 악한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더욱이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므로 그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측면도 있다. 선과 악은 항상 대립적이며, 그것이 부딪혀 유발한 갈등은 평행을 달린다. 때론 선이 악에 의해 무력화되거나 선이 악을 이기기도 한다. 따라서 선과 악의 정의는 한 개인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명확해진다.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예스프스키는 선과 악의 경계를 나름대로 정의하려 했다. 그의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등장인물의 선함을 차등화 시킨다. 재산과 여인을 두고 다투는 비열한 모습에서 최고의 선과 차선이 묘사되고, 최고의 악과 차악의 인물이 등장한다. 그들은 윤리적 삶을 포기한 인물로 묘사되나 아이러니하게도 무신론자가 아니다. "신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그가 창조한 세계를, 신의 세계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 받아들이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믿음의 대상인 신을 따르는 것과 신이 창조한 세계에서 인간이 욕망을 추구하는 것은 다르다는 주장이다. 이는 인간의 죄를 용서하는 것은 신의 영역이지만, 선을 추구하기 위해 악과 싸우는 것은 인간의 영역임을 암시한다.

그렇다면 신의 존재를 믿는 우리는 이 세상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최소 세 가지 방법으로 악에 대항하고 선을 추구할 수 있다.

첫째, 악에 대항하려는 용기가 필요하다. 현대 사회는 선을 선으로 인정하지 않고 도리어 선을 악으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다. 진실이 왜곡되고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실을 숨기고 유익을 추구하는 자들이 늘어난다. 혹자가 개인의 유익을 위해 진실을 밝히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선을 추구하려는 의지가 없는 것이다. 진실을 밝히려는 용기는 악을 대항하는 중요한 무기이다.

둘째, 자기의 연약함을 숨기지 말아야 한다. 선을 지향하는 자는 자기의 연약함을 인정하지만, 악을 추구하는 자는 자신의 약점을 숨기기에 급급하다. 자기 잘못과 연약함을 숨기면 더 많은 악이 합쳐져 결국 그 사람을 파멸로 몰아간다. 그러므로 연약함을 숨기지 말고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 연약함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수용성 결핍이며, 자애(自愛) 훈련이 부족하다는 증거다. 즉, 자신의 결핍과 연약함을 극복하면 선을 실천할 수 있다.

셋째, 선의 실천은 공동체 존중에서 시작된다. 고대 사회는 개인 보다 공동체의 유익을 더 중시했기에 다수를 위한 개인의 희생을 미덕으로 여겼다. 반면에 현대 사회는 공동체보다 개인을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개인의 유익을 위해 공동체의 안위와 유익을 파괴하는 것은 선한 행동이 될 수 없다. 공동체는 개인의 삶을 지탱하는 뿌리이기 때문에 공동의 유익을 우리 삶의 기조로 삼아야 한다.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시대적 사명은 도덕성의 회복과 실천이다. 밝고 좋은 사회를 만들려면 선을 행하는 사람이 더욱 많아져야 한다. 밤거리 빛나는 십자가가 밝은 만큼 선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자가 더욱 많아지길 기도한다. 신인철 한국침례신학대학교 신학과 부교수

Copyright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