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한국의 보수 우파 정치, 이렇게 다르다

이종태 기자 2024. 4. 18.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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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리쓰메이칸 대학 이강국 교수를 만났다. 그는 “아베 전 총리는 일본을 장기 불황에서 끌어내겠다는 단호한 선언과 일관된 정책으로 일본 시민들에게 희망을 줬다”라고 평가했다.

지난 3월19일 일본은행(일본의 중앙은행)이 21세기 들어 최근까지 줄곧 유지해온 초저금리 정책을 폐지했다. 앞으로 글로벌 경제 전반을 강타할 극히 중요한 사건이다. 그 함의를 물어보기 위해 일본 리쓰메이칸 대학 이강국 교수를 만났다.

이강국 리쓰메이칸 대학 교수가 3월26일 〈시사IN〉 편집국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일본은행이 3월19일 드디어 ‘마이너스 금리’와 ‘수익률곡선통제(YCC)’를 폐지했다.

일본은행은 1999년 기준금리를 0%로 내렸고 2001년부터 양적완화를 시행했다. 2007년엔 기준금리를 0.5%로 올렸다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다시 인하했다. 2016년엔 기준금리를 마이너스 영역으로 내려 올해 3월까지 이어왔다. 일본 경제가 디플레이션과 장기 불황 상태에 머물러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일본은행은 ‘임금인상으로 소비가 확대되며 물가가 올라가는 시스템이 정착되었다’고 판단을 바꿨다. 기준금리를 17년 만에 처음으로 인상하면서 플러스 영역으로 올린 것은 커다란 전환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인플레이션이 정착되었다는 증거가 있나.

글쎄다. 임금이 계속 오를지, 인플레이션이 2% 이상으로 유지될지 아무도 확언할 수 없다. 고령화 등 인구구조 문제도 여전하고 성장률이 가까운 시일 내에 크게 올라가기도 어렵다. 그래서 일본은행 역시 금리를 올리지만 통화정책 기조는 완화적으로 유지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지난 30년 동안 일본 경제의 상황’을 저성장·저물가·저출산·고령화 등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일본만의 현상이 아니다. 한국 등 다른 선진국이 일본을 답습한다는 지적도 많다.

‘일본화(Japanification)’라고 부른다. 그래서 ‘일본 정부가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가느냐’는 선진국들에겐 초미의 관심사였다. 평가는 엇갈린다. 다만 일본 정부가 당면 과제들을 심각하게 고민하면서 정책 수단들을 입안해 적극적으로 시행한 것만은 주목해야 한다. 예컨대 ‘비전통적 통화정책’인 양적완화를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초 시행(2001년)한 나라가 일본이다. 소규모 양적완화로 5년 만에 종료해버렸지만.

미국의 연방준비제도(Fed)가 이어받았다.

미국 연준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맞선 무기가 바로 대규모 양적완화였다. 일본은행은 이를 재수입해 2013년부터 마치 ‘바주카포를 쏘는’ 듯한 기세로 대규모 양적·질적 완화를 지속적으로 시행했다. 이른바 ‘비전통적 통화정책’으로 디플레이션을 극복하려는 실험이었다. 세계가 주시했다. 나는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로 평가한다.

‘절반의 실패’라는 이유는?

코로나19 팬데믹 직전인 2019년까지도 ‘2% 인플레이션’을 달성하지 못했잖은가. 이후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공급망 교란으로 식량·에너지·중간재 등의 국제가격이 올랐다. 2022년부터는 서구 각국이 인플레를 잡기 위해 금리를 급속히 올렸다. 일본만 불황 우려 때문에 초저금리(-0.1%)를 유지했다. 일본과 다른 선진국 간 금리 격차가 벌어지면서 엔화 가치가 폭락했다. 어떤 나라의 통화가치 하락은 그 나라가 수입하는 물품의 국내 가격이 오른다는 의미다. 실제로 2022년 4월부터 일본의 물가가 확 올라간다. 국내 경기가 좋아져서가 아니라 외부 충격으로 발생한 ‘건강하지 않은 인플레이션’이었다. 이렇게 물가가 오르는데도 임금은 인상되지 않았다. 실질임금 성장률이 마이너스 영역으로 내려갔다. 점잖은 일본 시민들도 화를 내게 되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임금인상률을 높이자’는 사회적 합의가 확산되었다. 어떻게 보면, 운 좋게도(?) 외부 쇼크로 인플레가 먼저 발생하고 이에 발맞춰 임금이 오르며, 오른 임금이 다시 인플레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미국이나 유럽연합(EU) 중앙은행들은 양적완화를 종료할 때 ‘사후 처리’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보통이다. 위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이상한(?)’ 통화정책을 구사했지만, 위기를 극복했으나 금융시장을 다시 정상화하겠다는 의미다. 그런데 일본은행의 이번 조치는 좀 달랐다. 수익률곡선통제는 중단하지만 국채 매입(양적완화)은 계속하겠다고 했다.

그렇다. ‘양적완화=국채 매입’이라면, 일본은행은 양적완화를 끝낸 것이 아니다. 더욱이 10년 만기 국채수익률(장기 차입 비용을 의미)이 갑자기 오르거나 하면 더 많은 국채를 기동적으로 매입해서 차입비용을 억누르겠다고 선언했다. 일본은행이 계속 시장에 개입해 차입비용을 ‘관리’하겠다는 의미다. 다만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기준금리를 올렸다지만 0~0.1%에 불과하다. 중앙은행들이 경기 악화에 대처하는 주된 방법은 기준금리 인하다. 기준금리가 0~0.1%라면, 많이 내려봤자 0.1%포인트인데, 이 정도로는 경기를 개선할 수 없다. 즉, 마이너스 금리 폐지 자체는 상징적으로 굉장히 큰 사건이지만, 금융시장에 미치는 효과가 미미하다. 그래서 국채 매입으로 차입비용을 조절할 여지를 남겨둔 것이다.

3월19일 일본 도쿄의 일본은행 본점 건물 앞을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AFP PHOTO

일본은행은 지난 십수 년 동안 비전통적 통화정책 때문에 서방국가 전문가나 언론들로부터 엄청난 비난과 비웃음을 당해왔다.

나는 마이너스 금리, 수익률곡선통제 등이 통화정책의 진화를 보여주는 사례였다고 생각한다. 미국이나 유럽도 저금리 상황에서 불황 국면이 닥치면 전통적 통화정책(기준금리 인하)을 포기하고 전면적 양적완화를 채택했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이단적’이라고 비판을 퍼부었지만, 불가피한 상황에선 정책 담당자가 가만히 앉아 있기보다는 뭐라도 하는 것이 옳다. 미국 양적완화에 대한 연구들이 꽤 나왔는데 ‘안 한 것보다는 나았다’라는 평가가 다수다. 마이너스 기준금리 역시 유럽이 먼저 시행했다. 일본은 마이너스 기준금리 상태를 가장 오래 지속했다. 이에 대해서도 부작용이 있었지만 긍정적 효과도 컸다는 연구가 많다.

3월18일 일본 도쿄에서 닛케이225 지수가 나타나는 전광판 앞을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EPA

그러나 일본은행의 ‘질적완화’는 지나치게 과감하지 않았나.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은 금리 조절을 통해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수단이다. 민간경제의 특정 부문에 자금을 공급하는 것은 재정정책의 몫이다. 그러나 일본은행은 질적완화로 상장지수펀드(ETF)와 부동산투자신탁(REITs)에 자금을 퍼부어 해당 부분의 경기를 부양했다.

놀라운 일 맞다.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내 부동산시장과 주식시장에 간접투자를 한 것이니까! 그 규모도 컸다. 일본은행의 ETF 매입 규모가 일본 공적연금(GPIF)의 그것보다 더 많을 정도다. 그 추세대로 계속 사들이면 10년 뒤엔 일본은행이 이 나라 거의 모든 주요 기업의 대주주가 된다는 말까지 떠돌았다. 그러나 유럽중앙은행(ECB)도 회사채를 매입했다. 중앙은행이 ETF 등 위험자산을 매입하는 행위가 이단적으로 여겨지긴 하지만 심각한 불황이나 경제위기, 재난 등의 특수한 상황에서는 충분히 고려할 만한 아이디어라고 본다. 다만 일본은행이 너무 오래 위험자산 매입을 지속했다는 비판은 가능하다.

일본 정부(아베 신조와 기시다 후미오)는 급진적 통화정책 이외에도 디플레이션을 극복하기 위한 여러 정책 패키지를 구상하고 실행해왔다. 그에 대한 평가도 듣고 싶다.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아베노믹스와 기시다 후미오 현 총리의 ‘새로운 자본주의’는 연속선상에 있는 정책이라고 본다. 아베노믹스 1단계(2013~2015년)에서는 양적완화로 통화량을 크게 늘려 경제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으려 했다. (통화량이 늘어나니) 엔화 가치가 50% 정도 절하되면서 수출 대기업들의 이윤이 크게 증가했다. 아베는 대기업들의 이윤이 다른 부문으로 흘러넘칠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투자가 약간 늘긴 했지만 임금과 소비는 계속 정체되었다. 아베노믹스 2단계(2016~2020년)에서는 진보적 색채가 상당히 강해진다. ‘1억 총활약’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일하는 방식’의 개혁을 추진했다. ‘동일노동-동일임금’의 법제화로 비정규직 차별 완화, 노동시간 단축,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보육정책 등을 펼치고, 노인 요양 같은 복지 부문에서 정부의 역할을 크게 확대하는 정책들을 시행했다.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EPA

아베노믹스 1단계는 ‘보수(공급 측면)’, 2단계는 ‘진보(수요 측면)’라고 보면 되나.

2016년에 나온 ‘1억 총활약’ 계획 문건을 보면 출산율에 대해 꽤 깊은 고민을 하고 있다. 예컨대 ‘노동 공급’을 늘려야 국내총생산(GDP)을 높일 수 있는데 당시 출산율이 1.2명 정도로 너무 낮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1.8명을 목표로 잡고, 저출산율 이유를 청년층의 빈곤에서 찾는다. 청년층의 생활을 개선하려면 비정규직 차별을 없애야 하니까 동일노동-동일임금을 법제화했다. 보육에서 정부의 책임을 강화해 결혼과 출산을 늘리려 했다. 이에 따라 여성들의 노동 공급이 증가했다. 임금인상으로 분배를 개선해야 총수요 증가로 인플레를 실현시킬 수 있다는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 같은 표현도 이때 나온다. 이렇게 ‘공급 측면’과 ‘수요 측면’을 함께 자극해서 1억명 인구를 총활약(노동 공급)시키겠다는 이 계획을 ‘궁극의 성장전략’으로 표현했다.

주류 경제학에 따르면, 노동 공급 증가는 ‘임금수준을 높이는 규제’를 폐지해야 가능하다. 상당수 학자들이 아베 전 총리를 신자유주의자로 규정하던데 그렇게만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아까 기시다 총리의 ‘새로운 자본주의’ 구상을 아베노믹스의 연속선상에 있다고 말했는데.

아베노믹스를 신자유주의로 보는 주장에 어폐가 있다. 아베는 법인세 인하, 통화팽창 및 엔저로 수출 대기업의 이윤을 크게 늘렸으나 정부 역할을 축소하거나 시장의 지배를 확대하려고 시도하지는 않았다. 일본 정부가 임금인상을 전면에 내세운 것은 2021년 말에 출범한 기시다 정부의 ‘새로운 자본주의’ 구상부터다. 아베노믹스로 대기업은 살쪘는데, 실질임금은 2013~2019년에 단 두 해만 올랐다. 2021년에도 기업 이윤은 치솟았으나 실질임금은 정체되고 있어서 시민들 사이에 불만이 높았다. 이런 분위기였기 때문에 게이단렌(일본경제단체연합회)도 임금인상을 ‘사회적 책무’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한국의 ‘시장주의 보수’라면 ‘임금을 올리면 기업들의 고용이 줄고 이에 따라 경기침체가 더 악화될 뿐’이라고 할 터이다. 일본 정부는 임금인상, 즉 유효수요 증가가 GDP 성장률을 높일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은데, 그야말로 ‘이단적 경제학’에 물들어버린 것 아닌가(웃음)?

기시다 정부 역시 유효수요나 분배만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디지털 전환’이나 ‘그린 전환’ 등 공급 측면의 성장전략도 있다. 첨단산업 육성에 대규모 공공투자, 노동 공급과 생산성 상승을 촉진하기 위한 사람에 대한 투자(노동자 재훈련, 육아 지원을 통한 여성의 경제활동 촉진) 등도 공급 측면 정책이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진보적 공급 측면 경제학’과 가깝다. 미국의 진보주의자들도 지난 몇 년 동안 ‘공급 측면’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바이든 행정부 역시 고압경제(high pressure economy, 확장적 재정정책으로 수요가 공급보다 많은 상태를 유지해 고용과 성장을 촉진)로 수요를 확장하는 동시에 공급 측면에서도 강력한 산업정책을 펼치고 있다. 기시다의 ‘새로운 자본주의’에도, 수요 측면과 공급 측면을 통합적으로 커버해야 한다는 생각이 녹아 들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몹시 ‘이단적’이다. 정통파(?) 경제학에서 수요와 공급은 독립적이다. 수요 측면을 변동시킨다고 공급 측면의 생산함수가 바뀌지는 않는다.

공급 측면이 수요 측면에 큰 영향을 미치지만, 수요 측면 역시 공급 측면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고 봐야 한다. 이력효과(hysteresis effect, 저성장이 오래 지속되면 경제 주체들이 그 상황에 익숙해지면서 미래의 경제 성과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학설) 관련 최근 연구들에 따르면, 수요 측면에 큰 쇼크가 가해졌는데 이를 방치하는(소비와 투자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데,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지 않기 위해 손 놓고 있는) 경우, 실업이 장기화할 뿐 아니라 기업들의 신기술 투자 정체로 경제의 생산성과 잠재 GDP가 훼손된다. 그래서 최근엔 위기 상황에선 정부가 공공지출을 적극적으로 늘리는 쪽이 미래의 성장률이나 생산성에 이롭다는 주장이 거시경제학계에도 폭넓게 수용되고 있다. 주류 경제학자들이 이런 이단적(?) 사고방식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실제 정책에 활용하기 때문에 ‘바이드노믹스(바이든 경제학)’ 같은 정책 기조가 가능해진 것이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EPA

기시다 정부를 보수파라고 하지만 ‘국가의 역할’을 크게 강조하는 등 한국의 보수 정부와는 매우 다른 것 같다. 다만 ‘새로운 자본주의’ 역시 첨단산업 육성 등에 큰 규모의 정부지출이 필요할 텐데,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이 글로벌 1위인 일본이 감당할 수 있을까?

아베가 재정 측면에서 그나마 잘한 일이 있다.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이 아베가 집권한 2013년에 약 230%였다. 코로나19 팬데믹 직전인 2019년엔 약 236%였다. 많이 높아지지 않았다. 금리인하 덕분이다. 이자 부담이 줄어들면서 정부부채 비율의 상승이 억제된 것이다. 올리비에 블랑샤르 교수는 2019년 논문에서 ‘명목 GDP 성장률이 명목 국채금리(수익률)보다 높으면 정부부채 비율의 상승을 크게 우려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일본에서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2013년 이후 명목 GDP 성장률이 국채의 명목수익률(금리)보다 높아진 것이다. 물론 2020년부터 팬데믹 때문에 정부부채 비율이 255%(2023년)로 다시 상승했다. 그러나 이는 일본뿐 아니라 유럽과 미국도 함께 겪은 일이다. 정부부채 비율은 그 수준 자체보다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 단기적으론 재정확장에 따른 수요 확충으로 인플레와 명목 GDP 성장률을 높이고, 공급 측면에선 공공투자로 생산성 상승을 촉진하면 잠재 GDP와 세수의 상승으로 정부부채 비율을 개선할 수 있다.

앞으로 일본 경제와 관련해서 주목해야 할 변수를 하나만 꼽는다면?

역시 임금인상률이다. 30여 년 동안 정체된 인상률이 앞으로 계속 높아질 수 있을까? 그리고 명목임금이 매년 2~3% 오른다고 해도 인플레이션율이 그보다 높게 나오면 실질임금은 오히려 감소한다. 실질임금이 조금이라도 높아지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기업의 이윤이 비대한 나머지 나타나는 과잉 저축이란 거시경제 불균형이 개선될 수 있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노동자들의 협상력 상승과 투쟁이 필요하다. 또한 ‘새로운 자본주의’는 생산성 상승도 장기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과제로 꼽고 있는데, 고령화 등 인구문제 대응, 기업 조직 문화 변화, 디지털 전환 등을 어떻게 실현하는지에 따라 성패가 갈릴 것이다.

2017년 12월8일 일본 나고야 인근 도요타 공장에서 직원이 차량을 조립하고 있다. ⓒEPA

아베노믹스와 기시다의 ‘새로운 자본주의’ 노선을 총평해달라.

성공과 실패가 겹쳐 있다. 아베노믹스의 경우, 일자리를 많이 창출해 고용률을 높이고 정부부채 비율도 안정시켰다. 그러나 임금을 올리는 데 실패하고, 경제회복도 너무 지지부진했다. 투자가 조금 늘어나긴 했으나 소비는 정체되었다. 물가도 올리지 못했다. 다만 아베는 대중적 지지를 받는 정치인으로서 일본을 장기 불황과 디플레이션에서 끌어내겠다고 단호히 선언하고, 일관된 정책을 적극 추진했다는 측면에서 미래를 어둡게 전망하던 일본 시민들에게 희망을 줬다. 기시다 정부는 출범한 지 이제 2년 반 정도 됐으니 평가하기가 쉽지 않다. 방향 자체는 옳고 바람직하다. 그러나 인플레, 실질임금 정체, 세금 인상 등으로 정치적 지지율이 매우 낮다. 아직 일본의 경제성장이 회복 국면에 들어섰다고 보기는 힘들다. 기시다 정부가 추진해온 공공투자나 임금인상 등 분배 개선 노선은 단기간 내에 성과가 나오는 정책이 아니므로 계속 지켜봐야 한다.

일본 경제를 지켜봐온 사람으로서 한국에 대해 할 말이 있다면?

인구구조 문제만 봐도 한국은 일본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이다. 지난해 출산율이 일본은 약 1.2명이었는데 한국은 0.7명에 불과하다. 일본보다 훨씬 더 발등에 불이 붙은 격인데 한국 정부는 너무 한가하다. 한국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기존 정책을 폐기하거나 바꾸는데, 출산율 같은 문제는 1~2년 바짝 노력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역대 정부가 출산율 문제 해결에 수백조 원을 사용했다지만 상당 부분은 출산율과 직접 관련이 없는 용도에 사용되었다. 절반 정도가 주거지원 관련 지출이다. 요즘은 한국 정부가 거의 ‘출산율에 대한 회의주의에 빠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데, 이 문제에 손 놓고 있으면 정말 큰일 난다. 한국 정부도 예컨대 수년 내에 출산율을 1.2명 정도로 높인다는 확고한 목표를 세우고 ‘5000만명 대활약’ 같은 이야기라도 해줬으면 좋겠다. 한국이 일본의 경험에서 참조할 점이 있다면, 정부의 일관된 노력이다. 아베 신조만 해도 초기엔 경기회복을 위해, 후기엔 출산율과 노동 공급을 늘리기 위해 정책을 세워 일관되게 적극적으로 추진해왔다. 그 노력이 기시다로 이어져 계속되고 있다.

이종태 기자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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