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차별 대신 배려가 일상… 높은 업무성과로 이어져” [심층기획]

권이선 2024. 4. 18. 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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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 날’ 앞두고 에스원CRM 가보니
임직원 241명 중 103명 장애인 근로자
모기업 고객 상담·사무 지원 위탁 처리
자동문 설치 등 ‘배리어프리’ 공간 조성
보행 불편 감안해 재택근무 적극 병행
13년 연속 ‘능률협회 우수콜센터’ 선정
“회사가 직원 최대한 배려 피부로 느껴”

헤드셋을 낀 상담원들의 나긋한 목소리가 사무실을 가득 채웠다. 밀려드는 상담 전화에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길은 분주했지만 고객을 응대하는 직원들의 표정은 흔들림 없이 평온했다. 제44회 ‘장애인의 날’(4월20일)을 닷새 앞둔 지난 15일 수원에 위치한 에스원CRM 본사 풍경은 여느 콜센터와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곳곳에 놓인 휠체어나 특수 의자 같은 보조장비와 벽에 부착된 점자 안내문들이 이곳의 특별함을 짐작하게 했다.

에스원CRM은 삼성그룹 계열사 최초의 자회사형 장애인 표준사업장이다. 임직원 241명 중 약 43%에 달하는 103명이 장애인 근로자다. 회사는 모기업인 에스원의 고객상담 서비스와 사무지원 업무 등을 위탁받아 처리하고 있다.
지난 15일 수원시 인계동에 위치한 에스원CRM에서 장애인 직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에스원CRM은 2011년 6월 한국장애인고용공단으로부터 '자회사형 장애인표준사업장'으로 인증받았다. 수원=최상수 기자
이날 찾은 기술상담그룹의 직원 56명 중 54명이 장애를 갖고 있었다. 왜소증, 하반신 마비 등 신체적 불편함은 조금씩 달랐지만 모두 숙련된 솜씨로 고객을 유선으로 만나고 있었다. 16개월 쌍둥이 아빠이자 2년 차 상담원으로 일하고 있는 권혁선씨도 마찬가지다. 장애등급 1급인 권씨는 의자 대신 휠체어에 앉아 고객 어려움을 해결했고, 두 발 대신 바퀴를 굴리며 직원들과 어울렸다. 권씨는 “그동안 마땅한 바깥 활동을 하지 않았다”며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환기가 되고 정신건강도 크게 좋아지는 것을 느낀다. 특히 아이들에게 출근하는 아빠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참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차별’ 대신 ‘배려’

“다른 점이요? 다른 직장과 똑같아요. 일하고, 사회적 관계를 이어 나가는 곳이죠. 다만 회식을 한다거나 외근을 나갈 때 누군가를 배려하는 행위가 당연하게 여겨지는 곳이에요. 엘리베이터가 있는지, 휠체어가 지날 수 있는 경사로가 있는지, 누군가는 불편할 수 있는 것들을 배려하고 살피죠.” 권씨는 자신의 직장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에스원CRM이 차별 대신 배려를 지닌 곳이라고 자부한다.

그의 말처럼 에스원CRM은 장애를 가진 직원들이 업무와 휴식에 어려움이 없도록 ‘배리어 프리’(barrier free) 공간으로 조성됐다. 건물 입구부터 휴게실까지 모두 자동문으로 돼 있고, 문턱도 없다. 출입문에 부착된 안면인식기기 역시 휠체어에서도 이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각도로 조절이 가능하다. 각 층에는 화재 등 긴급 상황 발생에 대비해 거동이 어려운 직원들을 위한 피난용 계단 이송 기구도 마련돼 있다.
장시간 업무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는 특성을 고려해 임직원 건강관리와 스트레스 감소를 위한 다양한 복지도 제공하고 있다. 직원들은 업무 중에도 사내 안마사들에게 건강관리를 받거나 네일아트사에게 손톱관리를 받을 수 있다. 특히 안마사들과 네일아트사들 역시 각각 시각·청각 장애가 있는 직원들로, 에스원CRM은 직원 복지와 장애인 추가 고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는 평가다.

재택근무와 선택근무제가 가능한 점도 이동이 자유롭지 않은 장애인 직원에게는 큰 장점이다. 현재 상담사 180명 중 73명(40.6%)이 집에서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 장애등급 2급인 기술상담그룹 김무송 상황팀장은 “보행이 불편한 이들은 집에서 근무가 가능하다. 소속감이나 업무 밸런스를 위해 집과 회사 근무를 병행하도록 체계가 갖춰져 있다”며 “장애가 있는 이들은 보호자가 있는 집에 있는 게 심적으로 안정된다”고 설명했다.

에스원CRM에서는 특히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 급여나 진급에서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다. 실적에 대한 인센티브도 똑같이 지급하고 있다. 장애인 관리자도 4명이 있다. 장애 여부와 상관없이 동등한 업무를 하며 능력에 따라 직책을 부여받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고객만족도 상승 비결은

애초 에스원은 보안업체 특성상 장애인 고용은 불가능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회사는 사내 실무추진팀을 구성해 장애인 적합업무를 발굴했다. 고객의 보안기기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원격으로 시스템 문제를 처리하는 기술상담직과 고객 불편사항을 접수·처리하는 고객상담직, 사무직 등을 적합업무로 선정했다.

장애인고용을 위해 각종 시설과 근무 환경도 알맞게 고쳤다. 장애인 직원이 업무를 익히고 익숙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교육시설과 프로그램 개발에도 공을 들였다.
이러한 배려와 노력은 채용된 장애인들의 업무 배치 후 즉각적인 성과로 나타났다. 에스원CRM 설립 이후 고객 불편사항이 전문 상담사에 의해 신속하게 처리되자 고객들의 대기 시간이 줄어들고 고객만족도가 눈에 띄게 높아졌다. 장애에도 불구하고 팀원 전원이 동일한 조건에서 진행하는 평가에서 비장애인보다 뛰어난 성적을 보였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에스원CRM은 한국능률협회컨설팅(KMAC)으로부터 13년 연속으로 우수 콜센터에 선정되기도 했다.

10년 넘게 에스원CRM에서 보안상담 업무를 맡아온 이성진씨는 “회사에서 구성원들의 불편을 최대한 개선해 주고 배려해 주려 한다는 것을 모두가 피부로 느끼고 있다”며 “서로 믿고 편하게 일할 수 있고 이것이 높은 성과로 이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수원=권이선 기자 2s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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