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혼 “미, 한반도 긴장 해소 위해 ‘위험감소’ 논의할 다자 협의체 고려해야”[인터뷰]

김유진 기자 2024. 4. 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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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아인혼 전 미 국무부 비확산·군축담당 특보
비핵화 최종 목표지만 지금의 위험 줄일 조치 필요
북·러 군사협력 진전 막는 것이 중국 이익에도 부합
한국, 핵연료 재처리보다 확장억제 발언권 강화 최선
로버트 아인혼 전 미국 국무부 비확산·군축담당 특보가 워싱턴 브루킹스연구소의 사무실에서 경향신문 기자와 북핵 문제와 한반도 긴장 해소를 위한 미국의 대북정책 방향 등을 주제로 인터뷰하고 있다. 워싱턴|김유진 특파원

대북제재 이행을 감시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산하 전문가 패널의 임기 연장이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무산되면서 국제사회가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에 제동을 걸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러시아와의 군사협력을 심화하고 있는 북한은 남북을 적대적 두 국가관계로 규정하며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최근 중국 공식 서열 3위 자오러지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의 방북에서 보듯이 북한과 중국의 결속도 강화하는 등 한·미·일 대 북·중·러의 ‘신냉전’ 기류가 짙어지는 양상이다.

로버트 아인혼 전 국무부 비확산·군축담당 특보(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는 이달 초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비핵화는 최종적 목표로 추구해야 한다”면서도 미국이 한반도 무력충돌 발발 가능성에 대비해 ‘위험 감소’를 논의하는 다자적 협의체 마련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대이란·북한제재조정관을 지내며 ‘대북 저승사자’로 불렸던 그는 “당장의 전쟁과 불안정의 위험을 미사일 시험발사·핵실험 금지, 신뢰 구축, 위험 감소 조치 등 ‘중간 단계’를 통해 다루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중국을 설득해 북한을 대화로 끌어낼 것을 제안했다. 미·중 간 북한 문제 협력이 매우 어려워졌지만 한·미의 미사일방어 강화로 이어질 수 있는 러시아의 대북 민감 기술 지원은 “중국 역시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라면서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할 경우 북·미 협상 전망에 대해선 “트럼프의 대북정책을 추측하는 건 의미 없는 일”이라면서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미국과의 관여를 포기하고 핵·미사일 역량 진전은 물론 중·러와 정책 동조화에 나서는 전략적 전환을 했다”면서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한국도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등 ‘잠재적 핵개발 역량’ 확보를 추진해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일본의 재처리 시설은 실제로 운영되지 않고 있다”면서 “미국 확장억제 공약의 계획·실행 과정에서 한국이 더 많은 발언권을 갖도록 하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전문가 패널 임기 연장이 무산됐다.

“유감스러운 일이다. 제재 자체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겠지만 제재 모니터링의 효과성이 이전보다 약화할 것이다. 패널의 이점은 제재 이행을 감시하는 국제기구로서 정당성과 신뢰성을 갖췄다는 점이다. 과거 중·러는 우리와 대북 압박을 공조하는 파트너였다. 6자회담 시기 중국은 우리와 긴밀하게 협력했고, 러시아와 중국은 2016~2017년 강력한 대북제재를 지지했다. 그러나 이제는 북한의 제재 회피를 돕는 것은 물론 어떤 유형의 추가 제재 채택도 막고 있다.”

-미국이 대북 위험 감소를 위한 외교를 펼칠 것을 제안했다.

“가장 시급한 우려인 오판에 의한 무력 충돌, 핵 위기 고조 가능성을 해결하기 위해 당분간 비핵화를 뒤로 제쳐두고 북한과 위험 감소를 주제로 대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미국이 뉴욕 채널 등으로 북한에 이를 제안해도 북한은 관심이 없다고 할 것이다. 좀 더 가능성이 큰 방법은 중국을 접촉해 ‘한반도 무력 충돌 위험 감소에 관심있지 않나, 핵전쟁 위험을 줄이기 위한 지역 대화체를 고려해보자’고 설득하는 것이다. 북한에만 위험감소나 신뢰구축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모든 참여국이 동등한 의무와 약속을 지게 하고, 법적 구속력을 지닌 합의가 아닌 비공식 조치여도 된다. 실제 작동할지는 모르지만 시도해 볼 가치는 있다고 생각한다.”

-미·중이 북한 문제에서 협력할 여지가 남아있나.

“조 바이든 정부의 협력 제안에 중국은 미국이 신장 위구르, 홍콩, 대만 등 중국의 국가이익을 진지하게 고려한다면 가능하다고 반응했다. 미국이 중국에 호의를 베풀어야 한다는 것인데, 예전과는 매우 달라진 태도이다. 그런데 러시아가 북한에 핵·미사일 역량에 관한 민감한 지원을 제공한다면 어떨까. 한반도에 중국이 원치 않는 불안정을 야기할 것이다. 미국과 한국은 억제력 강화, 특히 중국이 그다지 좋아하지 않을 미사일방어 역량 강화로 대응할 수 있다. 러시아의 민감한 대북 군사 지원을 막는 것에 중국도 이해관계가 있고, (미·중) 협력 영역이 될 수 있다.”

지난 30여년 미 행정부의 북핵 대응에 깊숙이 관여한 그는 김정은 체제하의 북한이 “미국과 비핵화는 물론 비핵화로 나아가는 제한된 조치를 논의하는 데도 관심이 없고, 현재의 핵·미사일 역량에 어떤 제한이라도 가하는 방안도 수용하지 않으려 한다”고 지적했다. 이는 “미국 등 서방과의 관여가 북한의 이익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본” 김정일과도 극명하게 대비되는 지점이다. 그럼에도 비핵화라는 목표를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한 그는 “완전한 비핵화는 하룻밤 사이에 이뤄지지 않으며 점진적으로 다뤄야 한다”고 말했다.

-미 고위당국자들의 잇단 ‘중간단계’ 언급이 의미하는 바는.

“트럼프 행정부의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스톡홀름에서 마지막으로 북측과 대화했을 때 비핵화는 장기적 절차이므로 가까운 시일 내의 제한에 대해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이것이 중간단계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극적인 기조 전환이 아니라 트럼프 행정부를 포함해 오랫동안 유지되어온 정책이다.

리비아 모델은 북한과 같이 진전된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이야기할 때는 완전히 비실용적이다. 비핵화 과정을 시작하려면 초기 조치, 중간단계, 제한된 조치 등 명칭이 무엇이든 필요하다. 비핵화는 최종적 목표로 남아야 한다. 다만 지금 전쟁과 불안정의 위험이라는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인정해 중간단계를 통해 다뤄야 한다. 내용 면에서는 미사일 시험발사나 핵실험 금지, 신뢰 구축 및 위험 감소 조치가 가능하다. 달리기 위해서는 먼저 걸어야 하는 것과 같다.”

-사실상 무효화된 남북군사합의(CMA)의 일부 요소를 위험감소 조치로 활용할 수 있다고 했는데.

“CMA에는 되살리면 유용할 만한 요소가 있다. 하지만 김정은이 남한을 적으로 규정하고 대화에 관심이 없다고 한 상황이니 한동안은 복원을 기대하기 어렵다. 또한 한국 정부의 일부 효력 정지 결정이 바람직했는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그래서 다자적·지역적 맥락의 신뢰구축 조치 확립을 제안하는 것이다.”

로버트 아인혼 전 미국 국무부 비확산·군축담당 특보는 워싱턴 브루킹스연구소의 사무실에서 가진 경향신문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재집권 시 대북정책과 관련해 “트럼프에 대해 추측하는 것은 의미없는 일”이라며 “한국의 기자들이 많은 미국의 북한 전문가들을 접촉해 온갖 종류의 추측을 이끌어냈지만, 어떤 것도 믿을 필요가 없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 워싱턴|김유진 특파원

-트럼프가 재선될 경우 북·미 대화 전망은.

“트럼프의 대북정책에 대해 추측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누가 핵심 참모인지도, 실제로 트럼프에 영향력이 있는지도 우리는 모른다. 다만 김정은과 트럼프가 다시 관여하거나 실제적인 방안을 고려할 가능성에 대해선 회의하는 편이다. 트럼프는 언제나 우크라이나 전쟁을 당장 끝내겠다 등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자신한다. 하지만 트럼프가 북핵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믿더라도 김정은의 관여 의지가 적을 수 있다. 트럼프는 재임 시절 북한이 핵무기를 폐기하면 멋진 호텔과 골프장이 있는 지상 낙원으로 만들어주겠다고 제안했지만, 김정은은 정권의 생존에 핵심적인 역량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트럼프가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노이에서 김정은은 제한된 거래를 할 준비가 되어 있었는데, 이는 북한에만 유리한 내용이었다. 트럼프가 거절한 것은 잘한 일이었다.”

-당신의 표현대로 ‘거래적 동맹관’을 지닌 트럼프 전 대통령이 귀환한다면 한·미관계 영향은.

“이 역시 추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지난 행적을 보면 긍정적이진 않다. 1기 트럼프 행정부는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한국 정부에 터무니없는 요구를 했다. 2기 때 어떤 요구를 할지, 주한미군 철수를 다시 위협할지 알 수 없다. (한·미 정상의 확장억제 강화 의지를 담은) 워싱턴선언은 중요한 결과물이며, 성과가 버려져서는 안 된다. 양국 정부가 제도화 노력을 기울이는 핵협의그룹(NCG)을 비롯해 미 전략자산의 정기 배치 등 일정한 루틴을 만드는 게 도움이 될 수 있다.”

-핵무장에 대한 찬성 여론이 높은 한국 내에서 미국 확장억제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방안은.

“일본은 우라늄 농축 기술이 있지만 상업화하지 않았다. 이는 일본의 기술이 러시아, 프랑스 기술보다 효율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 롯카쇼 핵재처리시설도 운영되지 않고 있다. 영국 등은 낮은 경제성을 이유로 재처리를 포기했다. 따라서 한국이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역량 확보를 추진하는 것이 최선인지 의문이다. 그보다는 미국 확장억제 공약의 계획·실행 시 한국이 좀 더 책임 있는 역할을 하도록 보장하는 것이 최선이다. 물론 핵무기를 사용할지 말지에 대한 최종적 결정권은 미국 대통령에게 있지만 한국도 중요한 발언권을 가져야 한다. (NCG에서) 사상 처음으로 그런 기회가 주어지고 있다. 이것이 한국 국민의 확장억제 신뢰를 높이고 한국과 한미동맹 보호를 위해 효과적이다.”

English version


☞ “Pursuing a risk-reduction dialogue with DPRK and China is worth a try”
     https://www.khan.co.kr/world/america/article/202404180600001

워싱턴 | 김유진 특파원 y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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