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정보원이 취업 도와줘? 의심 들어 바로 신고했죠"[인터뷰]

고홍주 기자 2024. 4. 18.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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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권하나씨, 고용정보원 사칭 보이스피싱 제보
"정부취업지원 프로그램 있다고 해…등본 등 요구"
고용정보원, 감사장 전달…홈페이지로 피해 주의 안내
[서울=뉴시스] 고승민 기자 = 권하나(인하대 금융투자학과 3) 씨가 지난 16일 서울 한국고용정보원에서 열린 대국민 보이스피싱 피해 확산예방 감사장 수여식에서 김영중 한국고용정보원장에게 보이스 피싱 제보 관련 감사장을 받고 있다. 2024.04.18. kkssmm99@newsis.com


[서울=뉴시스] 고홍주 기자 = "한국고용정보원 직원입니다. 고용노동부랑 연계해서 취업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있어서 연락드렸어요."

인하대학교 금융투자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권하나(27)씨는 지난 3월 말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자신을 고용정보원 직원이라고 소개한 사람은 1500명 정원의 정부 취업지원 프로그램이 있으니 지원하라고 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이는 모두 거짓이었다. 고용정보원은 취업을 직접 연계해주는 기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뉴시스는 지난 16일 고용정보원을 사칭하고 개인정보를 요구한 피싱범을 제보한 권씨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뜻밖에 전화를 받은 권씨도 처음에는 덜컥 믿었다. 취업을 지원해준다는 말에 혹했다. 아직 대학을 졸업한 것은 아니지만, 취업이 점차 현실로 다가오는 나이이기 때문이다.

"제가 전에 직장생활을 한 적이 있거든요. 실업급여도 받은 적이 있고, 워크넷 같은 사이트에 제 정보가 등록돼 있어서 그걸 보고 연락을 줬다고 생각했어요."

권씨에게 전화를 건 고용정보원 직원은 그가 대학생임을 인지하자, 대학일자리플러스센터로 연계해주겠다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학일자리플러스센터 담당자라고 주장하는 유모씨에게 카카오톡 메시지가 왔다. 그는 당일 발급된 주민등록등본과 이력서, 신분증 앞·뒷면 사진, 재학증명서를 요구했다.

여기서 권씨는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특히 이력서를 요구하면서도 자기소개서는 필요 없다고 하는 점이 통상적이지 않았다고 한다.

권씨는 "취업이라는 게 쉽지 않은 일이다 보니 준비를 하는데 뭔가 이상했다"며 "취업을 했을 때나 그런 서류가 필요한 거지 아직 취업을 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 다양한 서류를 요구하기도 하나 싶었다"고 했다.

이후 그는 금융사기 피해 방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인 '더치트'에 사기 피해사례를 검색했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지만, 카카오톡으로 계속해서 서류를 재촉하는 게 아무래도 이상했던 권씨는 고용노동부 콜센터와 인하대 대학일자리플러스센터에 차례로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고용부에 전화해서 '대학일자리플러스사업'이라는 게 있던데 어떻게 진행되는 거냐고 물었더니 작년에 이미 선정돼서 대학별로 진행 중이라고 하더라고요. 이후에 인천고용센터에 연락을 했더니 새로운 피싱 사례인 것 같다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학교 일자리플러스센터에서도 그런 사업은 없다고 하더라고요."

피싱사기임을 확신한 권씨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고용정보원 콜센터로 전화를 걸었다. 사례를 알려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함이었다.

권씨는 "요즘 우체국에서 근로장학생으로 일하고 있는데, 노인 분 중에 보이스피싱 때문에 찾아오시는 분들이 많다"며 "피싱범들은 아무런 죄책감 없이 돈을 벌기 위해 하는데 당하는 사람은 세상이 무너지는 일 아니겠나. 그래서 괘씸함에 더 찾아봤던 것 같다"고 말했다.

고용정보원도 발 빠르게 대응했다. 권씨의 전화를 받은 콜센터 직원은 곧바로 전화 내용을 위에 보고했고, 김영중 고용정보원장에까지 전해졌다.

[서울=뉴시스] 고승민 기자 = 김영중 한국고용정보원장이 지난 16일 서울 한국고용정보원에서 뉴시스, 권하나 씨와 대화를 하고 있다. 2024.04.18. kkssmm99@newsis.com

김 원장은 "대학생들이 아직 사회 경험이 없다 보니 잘 모르고, 또 자세한 얘기를 하니까 의심하기 쉽지가 않았을 것 같아 자칫하면 많은 학생들이 피해를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바로 워크넷이나 고용24 홈페이지 등에 보이스피싱 주의 안내 팝업창을 띄웠다"고 설명했다. 다행히 현재까지 추가 피해는 보고되지 않았다.

이 같은 발 빠른 대응은 지난해 겪었던 대규모 해킹 사건의 '뼈 아픈' 교훈이기도 하다. 지난해 6월 고용정보원이 관리하는 구인·구직 포털 워크넷에서는 23만여명의 성명·성별·주소·전화번호·학력사항·경력사항 등이 담긴 이력서 정보가 유출됐다.

당시 조사에 따르면, 개인정보 유출은 워크넷 자체 해킹을 통한 것이 아닌 다른 곳에서 수집한 사용자의 아이디와 암호를 대입해 로그인을 시도하는 이른바 '크리덴셜 스터핑(Credential Stuffing)' 수법이 사용된 것으로 추정됐다. 고용정보원 측은 사과문을 발표하는 한편, 로그인 시 별도로 인증서 인증을 거쳐야 접속이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전면 개편했다.

"제가 부임한 지 한 달만에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났는데, 우리를 믿고 개인정보를 제공해주는 건데 쉽게 유출하면 안 된다는 걸 실감하게 됐죠. 그래서 이번 보이스피싱에도 더 빨리 대응하고 추가 피해를 막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측면도 있어요." 김 원장의 말이다.

김 원장은 16일 오후 적극적으로 피해 사실을 알려준 권씨를 직접 만나 감사장을 전달했다. 김 원장은 "권하나 학생이 이런 일이 있었다는 걸 알려줬기 때문에 우리도 대응을 할 수 있었던 것"이라며 "이렇게 여러 군데 알아보고 제보까지 하기는 쉽지 않은 것들인데 우리로서는 너무나도 고맙다"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김 원장은 마지막으로 고용정보원은 절대로 취업을 알선하지도, 개인정보가 담긴 서류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고용정보원은 국민들이 원하는 일자리에 빨리 갈 수 있도록 하는 '내비게이션' 역할을 해요. 크게 워크넷이나 고용24, 직업훈련포털(HRD-Net), 고용보험 전산망 등등을 관리하는 정보화 업무와 고용정책이나 노동시장을 연구하는 업무 두 가지를 담당하고 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직접 취업을 시켜주는 기관은 아닙니다. 이름만 봐서는 헷갈릴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는 점을 꼭 명심해주세요."

☞공감언론 뉴시스 adelante@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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