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편히 쉴 곳 없어요”… 휴식권 박탈당한 경비원 [현장, 그곳&]

김은진 기자 2024. 4. 18.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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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팡이 끼고 냉난방기 없어 열악...작년 도내 설치율 고작 14.9%뿐
휴게시설 설치 의무화 유명무실, 민간 영역에 지자체 개입 어려워
道 “관리사무소장에 교육·홍보”
17일 오후 군포의 한 아파트에 휴게시설이 없는 탓에 경비원이 경비실에서 쉬고 있다. 박소민기자

 

“우리가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곳은 없습니다.”

17일 오전 10시께 수원특례시 장안구의 한 아파트. 이곳 아파트엔 지난해 경비원 휴게실이 만들어졌지만 사용할 수 없었다. 휴게실이 경비실과 멀찍이 떨어진 12층 높이 옥상에 있을 뿐더러 과거 창고로 쓰였기 때문이다. 이를 방증하듯 내부 벽지는 곰팡이가 쓸고 너덜너덜하게 떨어져 있었으며 바닥, 창틀 곳곳엔 거미줄과 먼지가 뿌옇게 쌓여 있었다. 경비원 신모씨(70)는 “이렇게 먼지가 많고 좁아 곰팡이가 가득한데, 어떻게 여기서 마음 편히 쉴 수 있겠냐”며 “우리가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곳은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같은 날 오후 군포시 금당로의 한 아파트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곳엔 휴게실이 따로 없어 경비실이 곧 휴게실이었다. 하지만 침상 바닥이 딱딱해 장판을 여러 겹 덧대야만 겨우 몸을 뉘일 수 있었다. 추운 겨울을 버티기 위한 난방용품은 전기장판 하나가 전부었으며 에어컨도 없어 여름에는 작은 선풍기 하나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아파트 등 공동주택에 경비 노동자를 위한 휴게시설 설치가 의무화됐지만 여전히 경기지역 내 아파트 경비원들은 제대로 된 휴식공간 없이 열악한 처우를 겪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날 경기도 등에 따르면 지난 2022년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시행으로 아파트 경비원 휴게시설 설치가 의무화됐다. 관련 법에 따라 휴게시설은 이용이 편리하고 가까운 곳에 설치돼야 하며 소음, 분진 및 유해 물질 장소에서 떨어져야 설치돼야 한다. 또한 일정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 냉·난방 기기가 구비돼 있어야 하며 물품 보관 등 휴게시설 목적 외에 사용이 금지돼야 한다.

이러한 규정에도 여전히 도내 현장에선 휴게시설이 멀리 떨어져 있어 이용하기 불편하거나 냉·난방기기가 없는 등 잘 지켜지지 않는다는 목소리다.

특히 도내 아파트 중 경비원 휴게시설이 마련된 곳은 지난해 기준 14.9%에 불과했다. 도내 아파트 단지 수는 7천78곳으로 이중 휴게시설이 설치된 곳은 1천61곳에 그쳤다. 관련 규정이 있지만 민간 영역이기 때문에 지자체에서 적극 개입이 어렵기 때문이다.

기호운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부장은 “휴게시설이 별도로 마련돼 있지 않으면 입주민들이 계속 찾아와 업무를 지속할 수밖에 없어 사실상 쉬는 시간이 보장되지 않는다”며 “지자체가 관리사무소나 입주자 대표회의 등의 방법을 통해 경비원 휴게시설 마련에 힘써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에 대해 도 관계자는 “아파트는 민간 영역이기 때문에 휴게시설 설치를 강제할 수는 없으며 신청하는 곳에 대해선 설치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며 “관리사무소장 등을 교육하는 방식으로 적극적인 홍보를 통해 휴게시설이 마련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전했다.

김은진 기자 kimej@kyeonggi.com
박소민 기자 som@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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