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 효력 일주일 앞…'번아웃·우울증 호소' 의대 교수들 정말 떠날까

천선휴 기자 2024. 4. 18. 05: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정부, 의료 공백에 대체 인력 투입…현장선 "조금도 도움 안돼"
사직 실행에 옮길지 예측 힘들어…"환자 밟혀 다 떠나진 않을 것"
16일 서울 소재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들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2024.4.16/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 여당의 총선 참패 이후에도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의지를 꺾지 않고 있는 정부가 시니어 의사, PA간호사, 군의관·공중보건의를 전공의 대체 인력으로 활용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하지만 의료 현장을 지키고 있는 교수들은 정부의 지원이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피로와 우울감을 호소하고 있다. 의대 교수들이 본격적으로 사직서를 제출한 지도 벌써 한 달째가 다 돼 간다. 이 상태로라면 피로 누적 등을 이유로 병원을 떠나는 교수들이 적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6일 오후 국립중앙의료원에 '시니어 의사 지원센터'를 개소했다. 이 센터는 대학병원 등을 퇴직했거나 퇴직 예정인 의사가 현재 인력 부족 상황을 겪고 있는 의료기관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연결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 센터의 탄생 배경엔 의료 공백 사태가 있다. 의료 정책에 반발해 전공의들이 병원 현장을 떠나게 되면서 나타난 의료 공백을 막기 위해 이미 은퇴했거나 은퇴를 앞둔 의사들을 활용하겠다는 취지다.

정부는 같은 이유로 진료지원(PA)간호사도 더 투입한다. 지난달 말 기준 상급종합병원 47곳과 종합병원 328곳에 근무하는 PA간호사는 8982명으로, 정부는 여기에 2715명을 더 늘릴 예정이다.

상급종합병원 등에 1차로 파견된 군의관, 공중보건의 154명은 지난 7일 파견 기간이 종료돼 이미 110명이 근무 기간을 한 달 연장한 바 있다. 지난달 25일 2차 파견된 군의관 100명과 공보의 147명에 대한 파견 기간 연장을 위해 현재 수요조사가 진행 중이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17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 제34차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제공) 2024.4.17/뉴스1

정부는 중수본 및 중대본 회의 때마다 "비상진료체계를 철저하게 운영하고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강조한다. 조 장관은 17일 오전 열린 중수본 회의에서도 "현장의 의사·간호사 등 의료진이 지치지 않도록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장의 상황은 조 장관의 바람처럼 흘러가지 않고 있다. 전공의들이 떠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교수들은 정부의 대책은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며 극심한 피로감과 우울감까지 호소하고 있다.

서울대의대-서울대병원 비상대책위원회에 따르면 4개 병원(서울·분당·보라매·강남) 교수 522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91.7%가 여전히 주 52시간 이상의 근무를 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중 40.6%는 주 80시간 이상 근무를 하고 있었고, 주 100시간 이상도 16%에 달했다.

우울증 검사 결과는 더욱 심각했다. 우울증 진단검사 도구로 우울증을 선별한 결과 응답자의 89.2%에서 우울증이 의심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배우경 서울의대 비대위 교수는 "정부가 미봉책들만 열심히 나열하고 있다"며 "각 병원의 진료량과 적자폭을 보면 정부의 미봉책들이 얼마나 도움을 못 주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빅5 병원 관계자는 "정부의 비상진료체계가 얼마나 도움이 되느냐"는 질문에 "말해봤자 입만 아프다"며 한숨을 내뱉기도 했다.

더 큰 문제는 무너져가는 병원을 떠받치고 있는 교수들마저 현장을 떠날 날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는 점이다. 교수들이 집단 사직서를 제출한 날은 지난달 25일부터로 현행 민법상 사직의 효력이 생기는 1개월 뒤, 이달 25일이 되면 교수들이 병원을 떠나도 법적으로 문제 될 게 없다.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도 이를 경고한 바 있다. 이들은 지난 12일 총회를 열고 "교수들의 정신적·육체적 한계와 25일부터 예정된 대규모 사직이 초래할 수 있는 의료 대란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다"고 했다.

고범석 전의비 공보담당 교수(서울아산병원)는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내놓았다면 사직서 회수 생각도 하고 있었는데 이런 상황이 돼버렸다"며 "어제 교수 총회에서도 그냥 사직서 제출 상태를 유지하자는 이야기를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교수들이 25일에 맞춰 우르르 현장을 떠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남겨진 환자와 병원 경영 악화 등이 교수들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고 교수는 "어떤 선생님은 예약 환자들까지는 다 해결하고 사직하겠다고 하기도 하고 일정이 약간씩은 차이가 있을 것"이라며 "속내를 다 파악할 수는 없지만 이 상황에 실망해 그냥 나가겠다는 교수님들도 계시고, 그냥 벗어나고 싶다는 분도 계시고 우리도 예측하긴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 빅5 병원 관계자는 "한 달이 되면 벗어날 수 있긴 하지만 교수들까지 빠지면 병원은 정말 무너지기 때문에 솔직히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서울의대 교수도 "근무시간을 주 52시간 이하로 줄이라고 했지만 못 줄이지 않나"면서 "일부는 나가는 분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곧바로 환자를 떠나진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가톨릭 의대(서울성모병원) 교수도 "아직 떠난 교수는 없지만 다들 힘들어 한다"면서 "시간이 지나면서 떠나는 교수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제는 교수들이 다 떠나기 전에 병원이 먼저 문닫게 될 것 같다"며 "무엇보다 환자가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실제로 현재 정부의 대응만 봐선 떠나고 싶다고 말하는 교수들이 많지만 남겨진 환자들 걱정에 쉬이 발길을 떼지 못한다고 토로하는 교수들이 많다.

지방의 한 대학병원 교수는 "너무 우울하고 분노가 차올라 다 던져놓고 나가고 싶지만 내가 손을 놓으면 치료받을 곳을 찾아 헤매야 하는 환자들 때문에 버틴다"며 "하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암울하다"고 토로했다.

빅5 병원의 한 교수도 "60세 이하는 일주일에 2~3번, 61세 이상은 일주일에 한 번 당직을 서고 있는데 9주차에 접어들면서 인간의 물리적인 한계를 뛰어넘고 있다"며 "정말 심각한 상황이다. 정부가 눈가리고 아웅 식이 아니라 제발 현장을 보고 진짜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sssunhue@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