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썰] 첫 단체행동 나선 삼성전자 노조…집회 장소엔 꽃밭이?

박현주 기자 2024. 4. 1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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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17일) 낮 12시, 경기 화성시에 있는 삼성전자DSR 타워 앞은 'NSEU'라고 적힌 검은색 반팔을 입은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햇살 내리쬐는 오후, 점심 먹으러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이곳에 자리 잡은 노동자들. 한 손엔 '노조 탄압 중단하라'는 팻말을 들었습니다.

어제(17일) 낮 12시쯤 첫 단체행동에 나선 삼성전자 노조. [이학진 기자]

NSEU(The National Samsung Electronics Union). 전국삼성전자노조(전삼노)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2만 명 이상의 조합원을 보유한 삼성의 최대 노조 조직이기도 합니다. "문을 열어 달라". 굳게 닫힌 출입문을 앞에 두고 1,500명 가까이 되는 노동자들이 한소리로 외쳤습니다. 이들은 왜 거리로 나오게 된 걸까요.

첫 집단행동 나선 '삼성전자 노조'


어제 이곳에선 전삼노의 집회가 열렸습니다. 지난 8일 회사와 임금협상이 결렬되자 조합원 찬반투표를 통해 쟁의 행위를 결의하고 집회를 열기로 했습니다. 1969년 창사 이래 삼성전자에서 노조가 집단행동에 나선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임금협상이 발단이 됐습니다. 노사는 지난해 9월부터 2023년과 2024년 임금협상을 합쳐 10여 차례 교섭을 벌였습니다. 사측은 5.1% 임금 인상을 제안했지만 노조는 6.5%를 요구했습니다. 성과급 제도 개선과 재충전 휴가도 요구했지만 입장 차이는 좁혀지지 않았습니다.

자물쇠 걸어 잠그고 꽃밭 설치?


삼성전자 DSR 사옥에 설치된 화단 모습. [독자 제공]

결국 집회를 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집회 장소였던 DSR 타워 1층 로비 곳곳에 대규모 화분이 설치됐습니다. 로비가 내려다보이는 난간에도 빈 곳이 보이지 않도록 화분을 놨습니다.

행사를 준비하던 길, 보안요원들이 회사 출입을 막았습니다. 일부 출입문엔 자물쇠가 잠기고 철제 바리케이드가 설치됐습니다. 한 노조 관계자에 따르면 "화장실을 들어가려고 했는데 인사 직원이 같이 가는 조건으로 문 안에 겨우 들어갔다"고 말합니다.

삼성 DSR 사옥 앞에 바리케이드가 쳐진 모습. [독자 제공]

문화 시위를 기획한 노조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기존 집회와는 다르게 재밌는 공연으로 평화 시위를 기획해보자는 게 우리의 철학이었는데, 이렇게 부술 것처럼 대응하는 사측을 보고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사측은 "안전상 불가피한 조치"라고 설명했습니다. 좁은 로비 안에서 집회가 열리면 사람들이 다칠 수 있어 출입을 제한했다는 겁니다. '봄맞이 화단'에 대해선 "봄을 맞아 사업장 분위기 조성을 위해 설치해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파업 답 아냐…"소리 들어달라"


단체행동은 다음 달에도 이어집니다. 노조 측은 "앞으로도 평화적으로 목소리를 들어달라고 요구하겠다"면서도 "그런데도 변화가 없다면 우리를 파업으로 내모는 거나 다름 없다"고 했습니다. 노조는 다음 달 24일 삼성 서초 사옥 앞에서 집회를 엽니다.

어제(17일) 낮 12시쯤 첫 단체행동에 나선 삼성전자 노조. [이학진 기자]


"파업하면 사측 뿐만 아니라 노측도 같이 타격 입는 거예요. 무작정 파업하자는 게 아닙니다. 행사를 기획한 건 우리 목소리를 듣고 모두가 만족하지 못하더라도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방안에 합의해보자는 의미입니다."

행사를 마치고 이현국 전삼노 노조부사무장이 한 말입니다. "경쟁사인 SK하이닉스에 고대역폭메모리(HBM) 주도권을 빼앗긴 회사의 경영 실패와 불투명한 임금 산정 방식에 대해 노사가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취지입니다.

집회 장소에 대규모 실내 꽃밭이 생기고 출입문이 잠기는 걸 본 노조로선 이런 상황이 반갑지만은 않았을 겁니다. 실망도 했지만, 대화의 길은 열어 놓았습니다. 평화 집회를 열고 '파업이 답이 아니다'라 했습니다. 열린 소통 채널을 만들어 달라고 했습니다. 노조의 물음에 이젠 회사가 답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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