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울리는 '장애우' [달곰한 우리말]

노경아 2024. 4. 1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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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욕설과 외계어가 날뛰는 세상.

장애우가 그렇다.

그런데 장애우는 결코 장애인을 위하는 말이 아니다.

게다가 장애우엔 비주체적 사람의 뜻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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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욕설과 외계어가 날뛰는 세상. 두런두런 이야기하듯 곱고 바른 우리말을 알리려 합니다. 우리말 이야기에서 따뜻한 위로를 받는 행복한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점자블록. 시각장애인 보행동선의 분기점, 대기점, 목적점 등의 위치를 표시하는 점자블록은 미끄럼 방지 등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철저히 관리돼야 한다.

헌부. 어릴 적 친구 이름이다. 그런데 성씨는 물론 실명인지도 알 수 없다. 몸집이 크고 지능이 좀 낮은 그 아이를 동네에선 애나 어른이나 “헌부야” 하고 불렀다. 형이랑 둘이 살면서 학교에 다니지 않았던 헌부는 이 집 저 집 다니며 마당도 쓸고 닭 모이도 주는 등 허드렛일을 도왔다.

헌부와 친구가 된 건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봄 무렵이다. 학교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 남자애들한테 둘러싸여 놀림당하는 헌부를 우리 집으로 데려갔다. 그러곤 큰오빠 작은오빠 언니 동생 다섯 남매가 그곳으로 가서 놀려대던 아이들을 혼내줬다.

그날 이후 나보다 대여섯 살은 더 먹었을 헌부는 내 친구들하고 놀았다. 무거운 몸을 띄워 고무줄놀이를 했고, 몸을 반 이상 내놓아 금세 걸리는 숨바꼭질도 함께했다. 제대로 숨으라는 내 호통에 눈을 끔뻑거리며 환하게 웃던 헌부의 얼굴이 선하다.

새로 지어진 학교로 전학 가면서 그 아이를 더 이상 보지 못했다.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눠도 70여 명이 복작대던 ‘콩나물 교실’을 떠난 기쁨에 취해 있었다. 새 학교 새 교실에서 새 친구들과 노는 데 팔려 헌부는 까맣게 잊었다.

40년도 훨씬 더 지나 헌부가 떠오른 건 이달 초 강원 산골에서 발생한 지적장애인 성폭행 사건의 항소심 선고 기사 때문이었다. 지방의 작은 마을에선 여전히 장애인을 함부로 대하는 분위기가 느껴져 한숨이 나왔다. 반편이 귀머거리 벙어리 봉사 절름발이 등 가슴에 대못이 될 만한 말들이 날아다녔던 시절을 헌부는 어떻게 살아냈을까.

말은 중요하다. 무심코 쓰는 말에 누군가는 상처를 받을 수 있다. 장애우가 그렇다. 장애가 있는 사람이 아닌 ‘친근한 벗’으로 생각하자는 뜻에서 한때 이 말은 널리 쓰였다. 그런데 장애우는 결코 장애인을 위하는 말이 아니다.

장애우는 말 그대로 ‘장애가 있는 친구’다. 열 살 초등학생이 장애를 가진 80대 어르신에게 “친구야” 하고 부를 수도 있는 셈이다. 이보다 더 버릇없는 일이 있을까. 예의에 크게 벗어난 말이다.

게다가 장애우엔 비주체적 사람의 뜻이 담겨 있다. 집단을 칭하는 말은 1·2·3인칭 모두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여자·남자·사회인·노동자처럼. 그런데 장애우는 타인이 지칭할 때에만 쓸 수 있다. 내가 나를 “친구”라고 말할 순 없기 때문이다.

장애를 가진 사람은 장애인, 장애인과 대립하는 말은 비장애인이다. 모레인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포용하는 분위기는 말에서 시작된다. 하루 법석을 떤다고 될 일이 아니다.

노경아 교열팀장 jsjys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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