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 목마’처럼… 암세포에 침투해 항암제 쏜다

김철중 기자 2024. 4. 18.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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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치성 암 치료의 희망 ‘항체 약물 접합체’ 연구

지난 5일부터 10일까지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미국암연구학회(AACR)에 전 세계 암 연구 과학자, 암 전문의, 암협회 임원 등 2만여 명이 운집했다. AACR은 최대 규모 암학회로, 특히 암 치료 기초 연구와 초기 임상시험 결과 발표가 많아서 5~10년 후 암 치료 패턴과 항암제 개발 트렌드를 미리 볼 수 있는 자리로 꼽힌다.

암 연구 전문가들은 이번 AACR의 최대 화두는 <항체-약물-접합체>라는 데 입을 모았다. 항체 약물 접합체(Antibody-Drug-Conjugate, ADC)를 이용해 난치성으로 꼽히는 재발 불응성 다발성 골수종, 특정 유전자 변이 대장암, 위식도 접합부 암 치료 등에서 생존 연장, 절반에서 종양 소실 등 희망적인 데이터 발표가 이어져 큰 관심을 끌었다.

그래픽=양인성

◇트로이 목마 같은 항암 치료

항체 약물 접합체를 통한 치료 원리는 고대 그리스 전쟁 신화 ‘트로이 목마’와 유사하다. 그리스 군인을 거대한 목마 안에 숨겨서 트로이성 안으로 진입시킨 뒤, 목마에서 나온 군인들이 결국 난공불락의 트로이를 정복한 방식이 암 치료에 적용된 것이다.

암세포는 특정 항원을 발현시킨다. 그곳과 맞물릴 수 있는 단일 항체를 만들 수 있는데, 여기에 암세포를 파괴시키는 항암제를 탑재시킨다. 이를 체내에 주입하면 항체가 암세포에 달라붙는다. 암세포는 항체 안에 항암제가 있는 줄도 모르고 항체를 받아들인다. 암세포 안으로 들어간 항체는 세포가 외부 물질을 처리하는 리소좀으로 들어가 항암제를 투하한다. 암세포는 항암제 독성으로 손상되어 사멸하게 된다. 항암제가 트로이 목마 속 그리스 군인인 셈이다. 항체는 암세포에만 달라붙도록 설계돼 있기에, 정상 세포 손상은 없다.

그래픽=양인성

◇항체 약물 접합체 돌풍

항체 약물 접합체(ADC)는 가장 먼저 유방암 치료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엔허투(Enhertu)라는 이름의 ADC는 유방암이 다른 곳으로 전이된 말기 암 환자의 수명을 늘려주고 있다. 이들 유방암은 대개 호르몬 수용체인 허투(HER2) 양성이다. 유방암 세포는 호르몬 수용체가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나뉘는데, 전체 유방암 환자의 70% 정도가 호르몬 수용체 양성이다. 이 경우 여성호르몬이 암세포 증식을 촉진한다.

암을 키우는 해당 수용체를 차단해야 암을 잡을 수 있다. 엔허투는 HER2 수용체를 타깃으로 한 항체-약물 접합체이다. 구조상 한쪽 팔에는 타깃에 달라붙는 항체, 한쪽 팔에는 타깃을 공격할 폭탄을 쥐고 있다. 전쟁 무기로 치면, 타격 목표를 향해 암암리에 날아가는 드론에 폭탄을 장착한 꼴이다.

최근 글로벌 제약사들은 항체-약물 결합체 약물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임상시험 중인 것만 해도 80여 종에 이른다. 악성 림프종, 백혈병, 방광암, HER2 양성 위암, 재발 불음성 다발성 골수종 등에서 치료 효과를 승인받았거나, 임상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을 보이고 있다.

다만 췌장암, 폐암 등 암 형태가 덩어리로 된 고형암에서는 아직 뚜렷한 치료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고형암은 발현되는 암세포 항원이 많고 다양해서, 특정 항원에만 달라붙은 항체 약물 접합체로는 공략이 어렵기 때문이다. 대한암학회 김태유(서울대병원 종양내과) 이사장은 “고형암은 자라면서 발현되는 항원이 다양해지고, 초기에는 항원이 몇 개 안 되고, 단일 모양새”라며 “향후 초기에 발견된 난치성 고형암을 대상으로 한 항체-약물-접합체 치료가 이뤄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미국 암연구학회=김철중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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