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존의 窓] 박물관을 찾는 공대생
한국에 오래 머물면서 다양한 사회적 발전과 변화를 목격할 수 있었다. 어떤 것은 지속되고, 어떤 것은 다행히 사라지고, 어떤 것은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하고 적응한다. 예를 들어 초보 운전자가 숙련 운전자보다 많았던 1980년대에 비해 지금은 사람들의 운전 실력이 크게 향상됐다. 또한 외국인 셰프들이 한국으로 건너와 한식당을 여는 것은 흥미로운 현상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한국에서 관찰되는 새로운 점 또 하나는 젊은 부부가 유모차에 아기 대신 강아지를 태우고 동네를 산책하는 모습인데, 이 점은 조금 실망스럽다. 물론 나도 강아지를 좋아하지만, 유모차에 강아지보다는 아기를 태우는 비율이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한 가지 감탄할 만한 추세도 있다. 바로 한국 문화를 창의적이고 새로운 방식으로 보존하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전통 공예, 미술, 음악 등 한국의 전통문화를 새로운 물리적 형태로 전시하는 박물관을 예로 들 수 있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는 현대 기술을 창의적으로 활용해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고구려 왕조의 유물을 디지털 영상 기술로 복원해 보여주는 흥미로운 전시가 열리고 있다. 안타깝게도 한반도의 분단으로 고구려 유적 대부분은 한국에 남아있지 않지만, 국립중앙박물관이 광개토대왕릉을 최첨단 기술로 생생하게 재현했다. 급격하게 발전하는 기술이 사회에 수많은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지만, 이 전시는 기술의 힘을 빌려 역사를 볼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한국이 오랫동안 STEM(과학, 기술, 공학, 수학) 교육 강화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과 이러한 헌신이 실제 공학 인재 배출과 혁신적 제품 개발로 이어지고 있다는 데서 여전히 큰 감명을 받는다. 현재 몸담은 회사가 최근 몇 년 동안 한국에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도 세계적 수준의 공학 인재다. 한국의 엔지니어들은 각 분야에서 최고 수준이고 역동적이며, 협업에 적극적이고, 서로 문화를 이해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젊은 학생들은 여전히 공학을 전공하는 데 흥미를 느끼며, 이는 한국이 세계 경제 선두 주자로 입지를 공고히 할 수 있도록 기여한다. STEM 분야는 점차 양극화되고 있는 정치계에서도 초당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는 신선한 영역이기도 하다. 기술과 역사를 결합한 국립중앙박물관의 고구려 관련 디지털 전시뿐 아니라 올해 미국 전미경제연구소(NBER)에서 발표한 한 연구에서도 기술과 인문학의 결합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연구팀은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을 이중 전공한 학생들이 단일 전공 학생들보다 향후 커리어 전반에 걸쳐 성공할 준비가 더 잘 돼 있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 이들은 서로 다른 분야에서 창의적 방식으로 시너지를 발휘하며 혁신을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잘 알려진 예가 애플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다. 잡스는 리드 칼리지(Reed College) 서예 수업에서 얻은 영감을 토대로 이전에는 가정용 컴퓨터에서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던 글꼴에 디자인 요소를 반영했다. 이를 통해 기능성뿐 아니라 미학과 직관적 우수성을 갖춘 매킨토시를 만들었다.
그렇다고 모든 이공계 학생이 이중 전공을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공학 공부는 절대 녹록하지 않다. 하지만 학생들뿐 아니라 젊은 전문가들도 읽고 공부하는 범위를 넓히고 전공 분야를 넘어 세상에 대한 강렬한 호기심을 갖는 일은 스스로에게 유용할 것이다. 한국에서는 대학에 입학하는 순간 엄격한 교육 시스템 때문에 새로운 책을 읽고 싶은 욕구가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미술과 음악을 공부하고, 한국의 훌륭한 박물관을 자주 찾는 것은 생각의 전환을 위해 가치 있으며 부담스러워할 필요가 없는 일이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전공과는 거리가 먼 분야의 책을 읽음으로써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다. 또는 오후에 스마트폰을 잠시 내려놓고 산책을 즐기며 사색에 잠기기만 해도 훌륭한 경험이 될 수 있다. 물론 반려견을 유모차에 태워 함께 산책하는 것도 도움이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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