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종로서적: 내 기억 속 선명한 랜드마크 [리터러시+]

이민우 기자 2024. 4. 17.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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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리터러시+
최초의 근대식 서점 종로서적
1963년부터 2002년까지
그 시절 만남의 광장 역할
같은 이름의 서점 생겼지만
종로서적만 있는 진짜 추억들
공평도시유적전시관 기획전시실에서 종로서적을 추억하는 전시가 열렸다.[사진=더스쿠프 리터러시팀]

시대를 떠오르게 하는 공간이 있다. 홍대입구역 맥도날드, 신촌역 잠망경처럼…. 2002년 전에는 종로서적이 그랬다. 가장 긴 출판 역사를 품었던 서점은 이제 명맥이 끊겼지만, 그곳에서 사람을 만나고 책을 읽었던 사람들의 기억은 여전히 선명하다. 같은 이름의 서점들이 줄줄이 생겼지만, 그 무엇도 종로서적을 대신할 수 없다. 공유할 추억이 없어서다.

홍대에서 약속을 잡으면 으레 홍대입구역 9번 출구 맥도날드 앞을 '만남의 장소'로 삼곤 했습니다. 이동통신기술이 몰라보게 발전한 지금은 '만남의 장소'가 과거보다 덜 중요해졌지만 아직도 어느 도시나 사람들이 모이는 '닻'의 역할을 하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랜드마크입니다. 수십년 전 서울의 종로서적처럼 말이죠.

종로서적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이었습니다. 1907년 예수교서회로 시작해 1948년 장하구ㆍ장하린 형제가 '종로서관'으로 이름을 바꿔 운영했습니다. 1963년에 와서는 최초의 근대서점 '종로서적'이란 이름으로 운영했습니다. 인터넷 서점이 등장하며 오프라인 서점의 입지가 좁아지던 2002년 부도가 났으니 종로서적은 90여년간 출판 역사를 대표하는 곳이었던 셈입니다.

사람들이 종로서적을 애틋하게 생각하고 기억하는 것은 단순히 가장 오래된 서점, 긴 출판의 역사란 점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개인의 만남이 이곳에서 이뤄졌기에 우리는 종로서적을 통해 옛 인연과의 추억을 떠올리곤 합니다. 김연수 작가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을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토요일 저녁의 종로서적 입구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빼곡했다. 그들은 어디선가 자신의 이름이 들려오기를, 혹은 자신도 누군가의 이름을 외칠 수 있기를 소망하며 인파로 가득한 종로 거리를 좌우로 두리번거렸다.

기다리던 사람이 누구든, 친구이든, 애인이든, 가족이든, 그들이 나타나면 사람들은 환한 표정으로 웃으며 층계를 내려갔다. 종로서적 입구에 서서 목을 빼고 늦게 오는 친구를 기다려본 사람은 그렇게 친구나 애인을 먼저 만나는 사람이 얼마나 부러운지 알 것이다.

공평도시유적전시관 기획전시실에서 떠나간 종로서적을 추억하는 전시가 열렸다.[사진=더스쿠프 리터러시팀]

그렇게 사라졌던 종로서적이 2023년 7월부터 2024년 3월 17일까지 우리 곁으로 돌아왔었습니다. 공평도시유적전시관 기획전시실에서 전시 '우리가 만나던 그곳, 종로서적'이 열렸습니다. 시민들에게 공모해 종로서적 관련 자료를 모으고 인터뷰를 모아 종로서적을 재현했습니다.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은 종로구 공평1ㆍ2ㆍ4지구 도심 재개발 과정에서 출토된 조선시대 16세기 건물 터와 길을 그대로 보존해 전시한 도시박물관입니다. 조선시대 견평방(한양의 중심) 위에 유리를 깔아 그 시대의 길을 그대로 걸어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이곳은 잊힌 과거를 발굴하고 재현하는 공간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 '종로서적'이 돌아왔다는 것은 썩 잘 어울리는 조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전시에선 종로서적의 역사와 인터뷰 영상, 각종 자료를 보여줬습니다. 당시 나왔던 책들, 유니폼, 그리고 일했던 직원들의 이야기까지 종로서적을 기억하는 이들의 사연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종로서적에 가보지 못한 이들은 지금의 교보문고와는 달랐던 분위기와 이야기들을 낯설어하면서도 새롭게 즐겼을 겁니다.

물론 최근에도 종로서적이란 이름을 가진 서점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서점들은 2002년 문 닫은 종로서적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종로서적'은 특허청에 상표권 등록을 하지 않았습니다.

[사진 | 더스쿠프 포토]

그래서 종로서적이라는 이름을 관계없는 서점들이 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이름만 박제한 서점에서 종로서적의 추억을 찾지 못하는 건 단순히 상표권 때문은 아닙니다. 종로서적과 사람들이 맺었던 관계를 정서적으로 계승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추억과 공감은 장소에서 나옵니다.

잠시 우리 곁을 찾아왔던 '우리가 만나던 그곳, 종로서적' 전시는 끝났습니다. 하지만 종로서적은 그곳을 경험하고 추억을 나눈 이들이 남아 있다면 잊히지 않고 우리 곁에 있을 것입니다. 기억 속 랜드마크로 말이죠.

이민우 더스쿠프 기자
lmw@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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