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TN 구성원들이 회사 앞서 돗자리 펴고 도시락 먹은 이유

김고은 기자 2024. 4. 17.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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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김백야유회' 이색 투쟁 눈길]
김백 사장 취임 후 대혼란... 내부 불만 고조
사과방송에 인사·개편까지 일방적 강행
YTN지부 '김백 퇴진 투쟁' 돌입

전국언론노동조합 YTN지부가 이끄는 김백 사장 퇴진 투쟁이 17일 ‘김백야유회’라는 발랄한 기획으로 시작을 알렸다. 봄볕 아래 돗자리에 앉아 ‘돼지불백’ 도시락으로 점심을 함께한 YTN 구성원들은 ‘팔뚝질’ 대신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향하고, 구호를 외치면 ‘투쟁!’ 대신 ‘우~’라고 화답하며 김백 사장 체제의 각종 부당한 조치에 저항 의사를 표했다.

업무 고려 없는 평사원 인사… 개인·집단 성명 이어져

김백 사장 취임 이후 단 2주 만에 YTN 안에선 많은 일이 일어났다. 지난해 8년 만의 영업적자에도 불구하고 본부장직이 7개나 신설·확대됐고, 총선이 열흘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보도국 수장이 교체됐다. 임명동의를 거치지 않은 일방 임명이었다. 또 김백 사장은 지난 2022년 대선 전후 YTN 보도가 불공정했다며 대국민 사과방송을 강행했으며, 총선에 미칠 영향을 이유로 ‘돌발영상’이 불방되는 일도 있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YTN지부가 17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YTN뉴스퀘어 앞에서 김백 사장 퇴진 투쟁 1차 집회를 열고 사장 퇴진 운동 돌입을 알렸다. /김고은 기자

YTN지부 집행부 출신, 소속 조합원을 주요 보직에서 배제하는 인사도 잇따랐다. 여기까진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범위의 일이었다. 논란을 키운 건 그 이후 이뤄진 평사원 인사발령과 프로그램 개편 등의 조치였다. 지난 12일 발표, 15일부터 시행된 인사 조처는 이른바 ‘파업 세대’가 아닌 젊은 구성원들까지 부글부글 끓게 했다. YTN 사내 게시판엔 기자 개인, 직군별, 기수별 성명이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갑작스러운 인사이동에 “최소한의 설명도, 존중과 배려도 없었다”고 성토하며 동료가 겪는 부당함에 “침묵하지 않겠다”고 목소리를 냈다.

시사프로 폐지 수순에 시사PD 7명 중 5명이 업무 무관 직군 발령

이날 야유회에서 마이크를 잡은 구성원들도 저마다 혼란한 심경을 토로했다. 2022년 보도제작국 시사 PD로 입사한 민대홍 PD는 “몇 달 전까지 ‘탐사보고서 기록’이란 프로그램을 하면서 일주일씩 밤을 새우고 집에 못 들어가도 어렵지 않았는데, 불과 며칠 전부터 정말 어려워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민 PD는 지난 12일 뉴스 진행 PD로 발령 났다. 그가 “PD저널리즘 실현”이란 목표를 갖고 입사한 뒤 해온 일과는 전혀 다른 업무를 맡게 된 것이다.

이번 인사에서 시사 PD 7명 중 5명이 이처럼 기존 업무와 상관없는 직군으로 발령이 났다. 이들이 만들었던 돌발영상은 지난 3일 불방 사태를 겪은 뒤 PD들이 뿔뿔이 흩어지며 개편 대상이 됐고, 월간 탐사보도프로그램 ‘탐사보고서 기록’은 13일 방송을 끝으로 폐지됐다. 시사 PD들은 지난 14일 성명에서 “새로 부임한 보도제작국장이 했던 개별 면담에서 시사 PD들이 한목소리로 외친 제작 프로그램 강화와 제작 일선에서 일하고 싶다는 요구는 반영되지 않았다”면서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한 형식적인 면담이었는지 묻고 싶은 대목”이라고 했다.

'김백야유회'란 이름으로 열린 이날 집회는 야유회 형식으로 YTN 앞에서 돗자리를 펴고 도시락을 먹으면서 진행됐다. /김고은 기자

6년차 송재인 기자도 시사 PD 인사 등 일련의 조치들을 보면서 “혼란스럽다”고 토로했다. 송 기자는 “현재 YTN 상황에 대한 생각은 다양할 수 있지만, 자연인이 아니라 언론인으로서 그리고 공적 자원인 방송과 관련한 사안에 대해서는 다양한 생각들이 모두 존중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운을 뗐다. 이어 “이 말도 맞고 저 말도 맞고 여기도 너무 했고 저기도 너무 했고 이렇게 느슨한 상대주의를 지향하는 집단이 저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우리 사회에는 상식이라는 게 있고 그 상식에 뒤처지는 언론인은 사회의 부끄러움이 된다”고 말했다.

“한쪽은 전쟁터, 다른 한쪽은 지옥… 이게 능력주의 인사인가”

디지털전략팀 이하영 조합원도 “한 선배가 ‘내가 있는 층은 전쟁터인데 이 층은 지옥’이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면서 편치 않은 마음을 드러냈다. 그는 “제가 크게 불이익을 당한 것 같지는 않지만, 주변에서 너무 눈에 띄게 벌어지는 일들이 보여서 마음이 참 아프고 솔직히 말하면 아침에 회사 나오는 것도 그렇게 내키지 않는 경우들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기술국의 정승기 조합원은 충분한 인수인계 기간 없이 인력이 전면 교체되면서 현장의 혼란이 크다며 “과연 이게 능력주의 인사인가” 물었다. 그는 “부조정실에서 진행 PD와 기자 그리고 방송기술직 모두 급작스럽게 부서 이동을 하게 되면서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정말 큰 혼란을 야기했고, 이 때문에 방송사고도 많아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한 “방송을 진행하는 방송기술 직무 역시 많은 인원 교체로 인해서 지금 혼란이 있는 상태며, 방송사고의 대처나 대비 또한 이전보다 어려워질 수가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 YTN은 기존의 다양한 뉴스 프로그램을 ‘YTN 24’란 타이틀로 통합하고, 5월1일 개편에 맞춰 새 프로그램으로 바꿀 준비를 하고 있는데, 관련 업무를 떠맡은 디자인센터에서도 아우성이 나온다. 디자인센터 이재호 조합원은 “그동안 저희가 노력해서 만든 그래픽들이 한순간에 사라졌고, 이후에 갑자기 10개가 넘는 신규 프로그램을 만들자고 하면서 저희는 매일 야근을 하고 있고 휴일 근무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면서 “저희 구성원들이 지금 상당히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워하고 있는데, 이 개편이 무엇을 위한 개편인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백 사장 “사과방송해야 새출발 가능, 기업체에 광고 달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일선 현장에서 업무상·정신적 고충과 부당함에 대한 호소가 이어지는데, 김백 사장은 귀담아듣지 않고 있다. 김 사장은 최근 회의 석상에서 사내 직군별, 기수별 성명 등이 쏟아지는 것을 두고 “공허하고 공감하기 어렵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기반성이 없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말이다.

김 사장은 또 지난 3일 대국민 사과방송에 대해서도 “YTN 경영을 책임지고 있는 최고경영자의 결단에 따른 경영행위”라며 “그래야 우리가 새 출발을 할 수 있고 또 기업체에 광고를 달라고 할 수 있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YTN지부, 김백 체제 불공정행위 대응 ‘백신센터’ 출범

고한석 YTN지부장은 “김백이 자기반성 얘기하는데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YTN 구성원들이 요즘 많이 힘들고 고통스럽다는 거 잘 알고 있다”면서 “반드시 원래대로 돌려놓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백신센터(김백체제 불공정행위 신고센터) 출범 소식을 알렸다. YTN지부는 김백 사장 체제에서 이뤄지는 불공정행위들을 제보받아 노조 차원에서 대응할 방침이다. 고 지부장은 “보도 과정에서 겪은 불공정행위들, 여러 가지 부당한 지시와 과중한 업무 등 어떤 것도 좋으니 백신센터에 신고하면 조합에서 대응하겠다”고 발혔다.

'김백야유회'란 이름으로 열린 이날 집회는 야유회 형식으로 YTN 앞에서 돗자리를 펴고 도시락을 먹으면서 진행됐다. /김고은 기자

연대 발언에 나선 윤창현 언론노조 위원장은 “우리가 요구하는 게 거창한 게 아니라, 조직이 좀 상식적이었으면 좋겠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것만큼 우리가 보도했으면 좋겠다, 이런 소박한 직업윤리라고 저는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금 KBS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들이 그대로 YTN에서 지금 복사해 붙인 듯이 벌어지고 있는데, KBS의 상황은 보도의 방향이 극우적으로 바뀌었다, 이런 걸 떠나 시쳇말로 콘텐츠의 질 자체가 그냥 후져졌다는 게 문제”라며 “보수라서 문제고 진보라서 문제가 아니라 그냥 이 시대에 맞는 합리적 상식과 논지를 담아낼 만한 실력을 담을 그릇들이 아닌 거다. 권력의 뒷배가 아니면 언론사에서 정당한 역할을 부여받지 못할 사람들인 거다”라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다시는 그런 자들이 이런 식으로 언론계에 복귀하지 못하도록 더 단단한 대비책과 예방책들을 언론노조가 고민하고 싸워서 만들어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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