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금융위기, 레고사태 : 환율 1400원의 의미 [마켓톡톡]
세차례 위기 상황서
환율 1400원선 돌파
중동 지역 분쟁 심화
네번째 위기 될지 촉각
역사적으로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를 넘어서면 경제위기가 왔다.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 2022년 레고사태 당시에 모두 환율은 1400원대를 돌파했다. 그래서 16일 장중 1400원을 돌파한 현재 국면은 살펴봐야 할 게 많다. 지금의 환율 상승세를 어떻게 봐야 할지 알아봤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17일(현지시간) 출장차 방문 중인 워싱턴DC에서 미국 CNBC 방송과 인터뷰를 갖고 "환율 변동성이 이어질 경우 시장안정화 조치에 나설 준비가 돼 있고, 충분한 수단을 갖추고 있다"며 구두개입에 나섰다. 원·달러 환율이 전날 장중 1400원을 돌파했기 때문이다.
이창용 총재는 인터뷰에서 "주변국의 엔화‧위안화 약세가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금리 인하 신호를 아직 보내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이날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스즈키 슌이치 일본 재무장관과 세계은행을 찾은 자리에서도 양국 통화 가치하락을 우려한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한은 총재가 직접 여러 차례 구두개입에 나선 이유는 환율 1400원선이 가진 의미가 작지 않아서다.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넘어선 것은 역사상 3번에 불과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1962.5원까지 치솟았다. 다만, 1997년 1월 23일 한보철강 부도 이후 우리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과 구제금융 양해각서를 체결한 12월 3일까지 평균 환율은 달러당 1179.5원이었다.
2008년 금융위기 때도 환율은 1400원을 넘었다. 금융위기는 2008년 9월 미국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시작했고, 우리 정부는 2008년 10월부터 2009년 2월까지 기준금리를 여섯차례 인하했다. 그 여파로 원·달러 환율은 2009년 3월 1570.7원까지 치솟았다. 이 기간 평균 환율은 1178.2원이었다.
2022년 레고랜드 사태 때도 마찬가지다. 김진태 강원도지사(당시)가 2022년 9월 28일 레고랜드 테마파크 시행사인 강원중도개발공사의 회생 절차를 신청하겠다고 밝히자 환율은 달러당 1439.9원을 기록했다. 김진태 지사가 당선인 시절에 '레고랜드 불공정계약' 문제를 지적한 2022년 6월 30일 이후 9월 말까지 평균 환율은 1223.4원이었다.
지난 16일 환율이 장중 1400원대를 돌파한 것은 강달러와 지정학적 위기의 심화가 얽히면서 벌어진 일이다. 현재 달러 가치는 20년 만에 최고 수준이다. 17일 현재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 인덱스는 106.29로 지난 1월 9일 114.78에서 소폭 내려온 상태지만, 2001년 닷컴버블 이후 가장 높은 상태다.
이번 1400원대 돌파가 돌발상황일지 경제위기로 번질지는 이란과 이스라엘에 달렸다. 지난 14일 이란이 미사일과 드론으로 이스라엘을 공격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이 여전한 가운데 양국의 분쟁은 중동지역 확전으로 치달을 수 있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회장은 지난 8일 "두 개의 전쟁이 더 악화할 수 있고, 이런 불안정한 세계는 경제에 불확실성을 가져온다"며 "인플레이션 압력이 지속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지정학적 위기는 달러·금 등 안전자산 선호로 이어진다.
원·달러 환율이 쉽게 내려오기 어려운 덴 강달러, 지정학적 위기 심화 외에도 다른 이유가 있다. 첫째, 강달러가 더 강해질 수 있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의장은 매파적(통화긴축 선호)으로 입장을 바꿨다.
그는 16일 "최근 경제 지표는 확실히 (금리인하에) 더 큰 확신을 주지 못하고 있다"며 "오히려 그런 확신에 이르기까지는 우리 기대보다 더 오래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 경제 지표가 생각보다 과열됐고, 현재 고금리 상태가 시장의 기대보다 더 오래 지속할 것이라는 경고다.
둘째, 원화 가치는 다른 나라보다 더 하락했다. 올해 들어서 주요 신흥시장 국가들 중에서 달러 대비 원화 가치는 6.3% 하락해 태국의 밧화(-6.7%), 칠레의 페소화(-8.0%)에 이어 가장 많이 떨어졌다.
지난 3월 우리 수출은 6개월 연속 플러스를 기록했다. 무역수지도 10개월 연속 흑자였다. 하지만 흑자 기간 절반은 수출 감소보다 수입 감소가 더 많았던 불황형 흑자였다. 우리 무역수지는 2022년 3월부터 2023년 6월까지 15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한 바 있다. 무역적자가 지속하면 국내로 들어오는 달러보다 국외로 지급되는 달러가 더 많아지면서 원화 가치의 추가 하락을 불러온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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