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이코노미스트] 물가 상승의 정치경제학

2024. 4. 17.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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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이 여당의 패배로 끝났다.

코로나19 기간에 전 세계적으로 풀린 유동성으로 인한 물가 상승 압력은 아직도 남아 있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각종 외국발 요인까지 고려하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2022년 5.1%에 달했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현재 3% 수준이고, 농산물과 원자재를 제외한 근원물가는 2% 중반까지 낮아졌다.

그래서 물가 상승을 어느 정도 용인하는 편이 사회적 고통 분담 차원에서는 더 나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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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패배 원인 된 물가관리
국내외 통제불능 변수 영향
대중은 임금과 괴리에 분노
"무조건 막겠다"는 비현실적
어려운 상황 솔직히 설명하고
이해·협력 구해야 옳은 접근

총선이 여당의 패배로 끝났다. 선거가 끝나면 늘 그렇듯 다양한 분석이 제시되지만, 빠지지 않는 원인은 물가 관리의 실패다. 대파가 상징물처럼 떠올랐지만 생활물가 급등으로 민생은 어려워졌는데 미봉책으로 이를 덮으려는 듯한 인상을 줌으로써 민심을 차갑게 만들었다고 볼 것이다.

정부 입장에선 억울할 것이다. 코로나19 기간에 전 세계적으로 풀린 유동성으로 인한 물가 상승 압력은 아직도 남아 있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각종 외국발 요인까지 고려하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정부는 집권 초부터 경제가 비상 상황임을 선포하며 적극적으로 매달렸고, 작년 하반기부터는 각 부처 차관에게 주요 품목 가격을 직접 챙기도록 하여 통제경제를 부활하려고 하느냐는 비판까지 받았다. 2022년 5.1%에 달했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현재 3% 수준이고, 농산물과 원자재를 제외한 근원물가는 2% 중반까지 낮아졌다. 그러면서도 고용률은 역대 최고를 달성하는 등 지표상으로는 선방한 셈이다.

문제는 농산물이었다. 특히 신선식품지수는 2월 기준 전년 대비 20%, 과일은 40% 이상 올랐다. 원래 농산물 가격은 추석이 지나면 떨어졌다가 연초가 되면 오른다. 그러나 올해는 유독 상승폭이 컸는데, 작년의 이상저온과 폭우 등으로 인한 흉작이 원인이었다. 비가 안 와도 임금의 탓이 되는 왕조시대도 아닌데 이걸로 성적표가 정해지는 건 너무하다는 기분도 들 법하다.

물가가 오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이론적으로는 모든 가격이 다 오른다면 숫자 말고 바뀌는 것이 없다. 인건비도 가격이기에 같이 오르면 구매력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물론 개인별로 임금의 상승폭이나 시차가 다를 수는 있지만 큰 틀에서는 결국 모두가 영향을 받는다. 오히려 지나친 물가 억제는 경기 침체와 실업으로 이어질 수 있고, 실업은 겪는 이에게 훨씬 큰 고통을 준다. 그래서 물가 상승을 어느 정도 용인하는 편이 사회적 고통 분담 차원에서는 더 나을 수도 있다.

대중의 생각은 다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실러는 어느 나라에나 임금 상승이 물가 상승을 따라잡지 못한다는 믿음이 퍼져 있음을 발견했다. 내 월급만 빼고 모든 가격이 오르는 느낌을 받는 게 인류 공통인 셈이다. 최신 연구에 따르면 그 이유는 사람들은 물가가 올라도 기업이 임금을 억제해서 이윤을 높일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물가 상승은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저소득층과 임금노동자를 중심으로 불공정성에 대한 불만을 키운다. 흥미로운 사실은 대부분 사람은 물가 상승을 경제 악화의 증상으로 생각할 뿐, 이를 너무 억제하면 경기 침체와 실업의 대가를 치를 수도 있다는 점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대중의 분노가 기업의 탐욕과, 이를 막지 못한 정부로 향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

이런 사실로 대중을 탓하거나 정부·여당의 정책 실패를 면죄받을 수는 없다. 사람들이 물가 상승의 고통을 더 크게 느낀다면 이는 물가 억제에 그만큼 공을 들여야 하는 이유가 된다. 정부는 법인세와 부동산 소득세의 감소를 감내하면서 사실상의 확장 재정 정책을 써왔는데, 이것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결과적으로 물가 압력을 높이고 계층 간 불공정성의 우려를 심화시켰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무슨 수를 쓰든 가격 상승은 막았어야 한다는 식의 반성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보다는 국민에게 어려운 상황을 진솔하게 설명하고, 이해와 협력을 구하는 정치력의 발휘가 더 옳은 접근이라고 생각한다.

[권남훈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경제사회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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