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외국어 공부 필요 없다? [로버트 파우저, 사회의 언어]

한겨레 2024. 4. 17.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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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 과목을 필수로 채택하던 미국의 많은 대학이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이를 선택 과목으로 바꿔달라는 요구에 직면하고 있고, 일본도 많은 대학에서 제2외국어를 선택 과목으로 바꾸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로버트 파우저 | 언어학자

2022년 4월 이 지면에서 인공지능과 외국어 학습에 관한 글을 썼다. 그후 어느덧 인공지능은 일상 속으로 깊이 들어왔다. 인공지능이 화두로 떠오를 때만 해도 그것으로 인한 미래 변화를 전망하던 여론은 이제 그 존재를 기정사실로 하고 이를 어떻게 응용할까를 논한다.

외국어 학습에서 인공지능의 활용 범위를 바라보는 인식 역시 매우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기술 발전 속도가 워낙 빨라서 앞으로 상황을 쉽게 예측할 수는 없지만, 일단 크게 세 가지 입장으로 정리해볼 수 있다.

하나는 외국어 학습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견해다. 외국어 학습은 일부의 취미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전망의 발신자는 주로 스마트폰에 익숙한 학생들이다. 한국뿐만 아니라 거의 많은 나라 학교의 외국어 학습은 주로 문법, 어휘, 독해 등 텍스트 비중이 크다. 그런데 텍스트야말로 스마트폰과 인공지능의 활용도가 가장 높고, 그렇다 보니 기술 발전도 가장 빠른 편이다. 학생들은 외국어 텍스트 독해는 인공지능으로 해결하고 대신 세분되는 전문 분야 학습에 집중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실제로 외국어 과목을 필수로 채택하던 미국의 많은 대학은 이를 선택 과목으로 바꿔달라는 요구에 직면하고 있고, 일본의 많은 대학에서는 학생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필수 과목이던 제2외국어를 선택 과목으로 바꾸고 있다.

반대 견해도 있다. 언어 습득은 인간의 특별한 영역이라는 전제로 인공지능을 학습 도구로 활용할 수는 있으나 사람을 통한 소통을 대체할 수 없다는 여기는 이들은 외국어 학습을 중단해서는 안 된다고 여긴다. 갈수록 작아지는 지구촌에서 공존과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세계 시민 육성이 필요하고, 이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요소가 언어라는 입장의 일환이다. 외국어 교육은 ‘교양인’이 갖춰야 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여기는 전통적인 교육 전문가들의 교육 철학을 반영한 측면이 크다. 이러한 입장은 20세기 말 유행한 글로벌화의 일환으로 많은 나라가 영어 교육을 강화해온 역사의 연장선상에서 사회적 공감대가 비교적 견고한 편이다.

이 두 가지 주장을 절충한 입장도 있다. 외국어 학습의 내용과 학습자의 반응을 통해 그 성과와 응용의 가능성을 파악하려는 시도로서, 이에 관한 연구가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일단 지금까지의 결론은 학습자는 다른 언어권의 사람들과 소통하고 세계관을 넓히기 위해 외국어를 배우고 싶어 하며, 이를 위해 도구로 여기던 인공지능을 이제는 학습의 동반자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주로 영어 학습자들을 대상으로 연구가 진행되고 있어, 역설적으로 글로벌 언어로서의 영어의 위상을 체감하게 한다.

그런데 인공지능은 자국어 교육에도 동일한 영향을 미친다.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고 싶은데 이를 기계가 대신해준다고 생각해보자. 글쓰기를 따로 배울 필요성을 점점 덜 느끼게 될 것이다. 쓰기에만 해당할까. 인공지능을 통해 원하는 텍스트를 요약하고 설명하는 것이 지금보다 간단해진다면 언젠가 문학 작품을 온전히 다 읽을 필요를 느끼지 않는 세상이 올 것이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쓰기나 읽기의 난이도가 높아지게 마련인데 인공지능이 다 해주는 세상이 된다면 고학년들에게는 과연 어떤 교육을 시켜야 할까. 오늘날의 인공지능은 새로운 지식을 생산하기보다 언어 처리를 통해 존재하는 정보를 재정리하는 도구다. 이런 특징은 모든 언어 교육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학교 교육과 사회 현장의 괴리감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인공지능을 통해 습득하는 수많은 말들을 판단하는 것은 결국 인간이 해야 하는 일이다. 그런 시민을 육성하기 위해서라도 언어 교육의 의미와 가치는 더욱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니 이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을 개발하고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시도하는 것이야말로 언어 교육이 설정해야 할 시급하고 올바른 방향이 아닐까. 외국어 학습을 인공지능에만 맡겨둔다면 장차 읽거나 쓰기의 기본적인 능력도 갖추지 못하는 세상을 살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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