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경기 무려 31골을 내준 골키퍼 심정은 어떨까

김세훈 기자 2024. 4. 17.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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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키 살라푸가 2001년 4월11일 호주에게 31골을 내주며 패한 뒤 슬퍼하고 있다. 게티이미지



골키퍼로서 한 경기에서 한 골만 내줘도 기분이 좋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만일 한 경기에서 31골을 내줬다면 심정이 어떨까. 그것도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예선에서 말이다.

아메리칸 사모아(미국령 사모아)는 2001년 4월 11일 호주에서 열린 2002년 한일월드컵 오세아니아 예선전에서 0-31로 패했다. 지금까지 세계축구 A매치 최다 점수차 패배다. 당시 아메리칸 사모아 골키퍼는 니키 살라푸(44·판사 이스트)다. BBC는 최근 “직장에서 최악의 하루를 상상한 후에 31을 곱해보라”며 “아마 2001년 4월 11일 살라푸가 겪은 일과 비슷할 것”이라며 살라푸와 인터뷰했다.

살라푸에 따르면, 당시 아메리칸 사모아는 10대 청소년들로 급조한 팀을 꾸려 호주 원정을 갔다. 당시 아메리칸 사모아 인구는 호주(약 1900만 명)에 비해 턱없이 적은 5만 8000명에 불과했다. 아메리칸 사모아는 불과 3년 전에야 FIFA 회원국으로 등록했다. FIFA는 2002년 월드컵 예선을 앞두고 미국 여권을 소지한 선수만 태평양 섬나라 대표로 출전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당시 대표선수 20명 중 살라푸만이 자격을 갖추고 있었다. 살라푸는 “2주 안에 선수를 찾아야 했다”며 “고등학교 학생들을 선발했다”고 말했다. 15세 3명 등 평균 연령 18세. 당시 21세인 살라푸는 ‘베테랑’이었다.

초짜들로 구성된 대표팀은 예선전에서 피지에게 0-13으로 패한 데 이어 사모아에게도 0-8로 졌다. 조별리그 3차전에서 통가에게 0-5로 완패했다. 이어진 호주전 0-31 대패. 살라푸는 “경기가 끝날 때까지 모든 감정을 참으려고 애썼다”며 “나도 눈물을 감춰야했다”고 회고했다.

1998년 월드컵 본선 진출이 아쉽게 좌절된 호주는 통가를 22-0으로 완파한 뒤 미국령 사모아와의 조별리그 최종전에 나서다. 살라푸 목표는 “0-22 이상으로 지지 않는 것”이었다. 호주의 첫 골은 10분만에 나왔다. 2분 후 추가골이 터진 뒤 골이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호주 공격수 아키 톰슨은 10골을 넣었고 데이비드 즈드릴리치는 8골을 몰아쳤다. 전반 종료 스코어 0-16. 아메리칸 사모아의 유일한 공격은 후반 종료 직전 한차례 슈팅을 날린 게 전부였다. 살라푸는 “호주는 비신사적이었다”며 “더 많은 골을 넣은 게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라고 반문했다. 그는 “내가 만일 호주 감독이었다면 20골을 넣었을 때 ‘경기가 끝날 때까지 소유권을 유지하라’로 지시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무렵 아메리칸 사모아는 38연패를 당했고 골득실도 마이너스 217골 차라는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이후 네덜란드 출신 토마스 론겐을 감독으로 선임한 아메리칸 사모아는 수비 강화에 주력했다. 2011년 11월 23일 아메리칸 사모아는 2014년 월드컵 예선 1차전에서 통가를 2-1로 꺾었다. 공식 대회 첫 승이었고 당시 수문장은 살라푸였다. 살라푸는 “2001년 호주에게 대패해 울어본 뒤 다시 울어본 게 10년 만이었다”고 회고했다.

살라푸는 여전히 자국 팀에서 선수로 뛰고 있다. 아들 딜런은 17세 이하 대표팀 미드필더다.

김세훈 기자 sh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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