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질환 예산은 깎고 청년 탈모 치료는 지원? 기묘한 발상

홍승주 기자 2024. 4. 17.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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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부천시 청년 탈모 지원 조례안
부천 청년에게 연 20만원 지원
다만 부천시 곳간 넉넉치 않아
희귀질환자 지원 3억원 삭감해
탈모 지원, 포퓰리즘 오명 벗을까

최근 부천시의회가 청년층의 탈모 치료를 지원하는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이를 근거로 부천시는 연간 8000만원을 투입해 '청년 탈모 치료비 지원 사업'을 추진할 방침이다. 탈모 탓에 스트레스를 받는 청년이야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논란거리가 있다. 부천시가 예산 부족을 이유로 희귀질환자 지원예산을 대폭 삭감했기 때문이다. 탈모 치료비 지원책, 옳은 방향일까.

청년 탈모 치료비 지원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지난 3월 22일, 부천시의회가 논란을 불러일으킬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이른바 '부천시 청년 탈모 (치료비) 지원 조례안(이하 청년 탈모 조례안)'. 여기엔 부천에서 2년 이상 거주 중인 만19~39세 청년에게 연 20만원 상당의 탈모 치료비를 지원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조례를 근거로 부천시는 내년부터 8000만원의 예산을 편성해 청년 탈모인 400명에게 치료비를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한방병원이나 종합병원 등에서 탈모 진단을 받은 뒤 신청하면 치료비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부천시가 파악한 청년 탈모인은 1520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안案을 발의한 손준기 부천시의원은 "탈모는 엄연한 사회적 질병이고, 유전일 경우엔 불치병"이라며 "그런데도 탈모 환자들은 사회에서 불이익을 받고 위축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청년 탈모 조례안'은 논란의 소지가 없다. 청년 탈모는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다. 국내 탈모 환자 수는 2018년 22만4840명에서 2022년 24만7915명으로 10.3% 증가했다. 전체 탈모인의 44%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2030 탈모 환자도 늘어나는 추세다. 이중엔 우울증과 치료비 부담이란 이중고에 시달리는 청년도 적지 않다.

'청년 탈모 치료비 지원책(이하 청년 탈모 지원책)'이 생뚱맞은 정책인 것도 아니다. 20대 대선 당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청년선대위가 제시한 '탈모약 건강보험 적용'을 공약으로 내세워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다. 서울 성동구, 경기 오산시, 충남 보령시 등 지자체 3곳은 청년 탈모 관련 조례를 제정해 지원사업을 펼치고 있다.

문제는 '청년 탈모 지원책'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희귀병 질환자를 지원할 세금도 부족한 상황에서 치명적인 질병이 아닌 탈모를 지원하는 게 옳은 정책이냐는 거다.

[사진=뉴시스]

'청년 탈모 조례안'이 통과된 부천시의회 본회의에서도 같은 맥락의 의견이 나왔다. 이학환 부천시의원은 반대토론에서 "청년 탈모 관련 조례안이 희귀질환자 의료비 지원사업보다 먼저 예산을 투입해야 할 만큼 시급하고 중요한 정책인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부천시의 곳간은 넉넉하지 않다. 올해에만 800억원의 지방채를 발행할 예정이다. 재정자립도는 28.5%에 불과하다. 경기도의 평균 재정자립도(60.5%)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이 때문에 부천시가 추진하던 사업 중 예산을 삭감한 것도 적지 않다.

그중엔 암환자를 지원하고 건강관리사업을 펼치는 '건강증진 관련 예산'도 있다. 구체적으로 심뇌혈관질환 예방관리비 사업 5700만원, 희귀질환자 의료비 지원 3억원, 100세 건강관리 사업 7776만원 등 총 4억2476만원이 전년보다 줄었다.

이런 상황에서 부천시가 탈모 지원책을 시행하면 사업기간 5년(목표) 동안 최소 4억원(연간 8000만원)을 지출해야 한다. 쉽게 말해, 치명적인 질병 관련 예산은 줄이고 '청년 탈모 지원' 예산을 집어넣은 셈이다.

부천시 건강증진과 관계자는 "지난해에 비해 부천시 전체적으로 예산을 삭감했다"며 "희귀질환자 의료비 지원의 경우 차후 추가경정예산에 일부 반영할 예정"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비판의 수위는 상당히 높다.

김성주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 회장은 "질환 관련 예산들은 위급성, 절박성, 긴급성을 따진 후 순서에 따라 집행해야 한다"며 "중증 질환자를 좀 더 지원해 주진 못할망정 예산을 삭감하고 탈모 치료에 예산을 투입하는 게 말이 되는가"라고 꼬집었다.

게다가 부천시가 '청년 탈모 지원책'을 순조롭게 시행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지자체가 사회보장제도를 신설하거나 변경하기 위해선 의무적으로 보건복지부와의 협의를 거쳐야 한다.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청년 탈모 지원책'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부산 사하구의 사례를 살펴보자. 부산 사하구는 올해 청년 탈모 지원을 추진했지만, 보건복지부와 협의에 실패해 사업을 접었다.

당시 보건복지부는 부산 사하구에 이렇게 답변했다. "탈모는 치유가 어려운 증상으로, 탈모약은 평생 필요하다. 그런데 청년 연령만 지원하는 것은 사업의 타당성이 떨어지며 엄격한 객관적인 자료가 없으므로 공공 재원 투입 필요성이 낮다."

다른 지자체의 상황도 비슷하다. 청년 탈모 치료비 지원 조례가 있는 곳은 부산 사하구를 포함해 6곳이지만, 실제로 지원하고 있는 곳은 언급했듯 서울 성동구, 경기 오산시, 충남 보령시 등 3곳에 불과하다. [※참고: 보령시는 조례에 청년이라는 명칭을 빼고 49세 이하 주민에게 탈모 치료비를 지원하고 있다.]

박승희 성균관대(사회복지학) 교수는 "예산은 한정돼 있기 때문에 사회보장 원칙에서 보면 미용의 영역인 탈모를 지원하는 건 따져봐야 한다"며 "생존ㆍ생계에 관련한 영역을 지원하기에 앞서 탈모를 지원하는 게 옳은 방향인지 생각해 볼 문제"라고 지적했다. 시행 전부터 비판의 도마에 오른 '부천시 청년 탈모 지원사업'. 이 정책은 '포퓰리즘'이란 오명을 떨칠 수 있을까.

홍승주 더스쿠프 기자
hongsam@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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