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고 가렵고…갈수록 견디기 힘든 봄, 기후변화 때문이라고요?
온난화에 따른 환경변화로 면역체계 교란돼
지역적 극한 기상과 달리 모두가 잠재 피해자
기후변화로 고온 현상과 폭염, 집중호우 등의 극한 기상 현상이 갈수록 잦아지고 있지만, 그 영향은 대개 지역적으로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기후변화가 유발한 현상으로 극심한 피해에 시달리는 지역이 있는 반면, 영향을 덜받거나 아예 영향을 받지 않는 곳도 있습니다. 기후변화의 영향을 이야기할 때면 빠지지 않는 해수면 상승이 대표적입니다. 해안가 저지대에 살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은 ‘나와는 상관 없는 얘기’라며 간단히 넘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집중호우가 아무리 내려도 침수되지는 않을 고지대나 해수면 상승을 전혀 걱정할 일 없는 내륙에 사는 사람들도 예외 없이 피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기후변화가 심해질수록 잦아지는 병치레로 힘들어 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지난해 3월 승인한 제6차 기후변화 평가보고서(AR6) 종합보고서에서 기후변화의 영향에 대해 “사람들의 신체 건강과 정신 건강에 전지구적으로 악영향을 미쳤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미래 얘기가 아니라 이미 그렇다는 겁니다.
현재까지 관측된 영향만 살펴봐도, 모든 지역에서 극심한 더위 현상의 증가로 사망률과 유병률이 상승했고, 기후 관련 식중독과 수인성 감염병 발생이 늘었다고 합니다. 또 말라리아·뎅기열처럼 매개체를 통한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고요. 인수공통감염병 등의 질병이 새로운 지역에서 나타나고, 기온 상승과 극한 기상에서 기인한 외상은 물론 정신 건강 문제도 일부 나타나고 있다는 평가도 내렸지요. 그러면서 이런 영향은 지구온난화와 더불어 심화될 것이라 했습니다.
지구온난화는 어떻게 사람들의 건강에 악영향을 끼치는 걸까요? 우선 기온이 올라가면서 병원균과 모기 같은 질병 매개체의 서식 범위가 확장되고 번식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점을 쉽게 생각해볼 수 있을 겁니다. 그 영향으로 일부 지역의 풍토병처럼 여겨지던 말라리아나 뎅기열 등은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뎅기열 바이러스를 옮기는 흰줄숲모기는 그간 주로 아시아와 남태평양,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대륙의 열대지방과 아열대지방에서 서식했습니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기후변화로 겨울 기온이 오르면서 이 모기가 최근 유럽에서도 토착화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최근 외신을 보면, 독일 질병청 로베르트코흐연구소(RKI)에서는 현재 유럽연합(EU) 회원국 가운데 독일을 비롯한 13개국에 이 모기가 사는 것으로 파악했다고 합니다.
과학자들은 특히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인체가 환경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진화시켜 온 면역체계의 교란이 이뤄지고 있다는 데 주목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에 따른 환경 변화가 인체의 면역체계를 약화시키거나 과민 반응하게 만든다는 것이죠. 면역체계가 과민 반응으로 조절 장애를 일으키면 외부 침입자가 아닌 인체 내부를 공격할 수 있습니다. 이런 면역체계 교란은 몸 안에서 벌어져 폭염과 집중호우와 달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이런 극한기상 현상 못지 않게 인간을 위협한다는 것이 과학자들의 설명입니다.
카리 네이도 미국 하버드대 공중보건대학원 교수를 중심으로 한 16개국 20여명의 과학자들이 이달 초 과학저널 ‘프론티어스 인 사이언스’에 공동 발표한 ‘기후변화와 관련된 환경 위험으로 유발된 면역매개성 질환’이라는 논문에서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뤘습니다. 이들은 환경 노출과 면역매개성 질환 사이의 연관성을 검토해 기후에서 오는 스트레스 요인이 이 질환을 증가시킬 정도의 면역 조절 장애를 유발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지요. 물론 기후변화가 유일한 원인인 것은 아니지만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죠.
면역매개성 질환은 인체의 면역체계와 관련된 질환으로 류마티스관절염, 강직성 척추염, 크론병과 궤양성 대장염 같은 염증성 장 질환, 유육종증, 포도막염, 건선, 루푸스, 아토피, 알러지, 천식, 다발성 경화증 등 다양한 질환이 포함됩니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이런 질병들이 지난 수십년간 꾸준히 늘어왔다고 해요. 어린이들의 코 알러지는 2012년 이후 10년 동안에 2배 이상 증가했고, 류마티스 관절염의 전 세계 유병률도 1990년 이후 14%나 증가했다고 하죠.
기후변화는 어떻게 면역 건강 문제를 전 세계 인류 모두의 문제로 확산시킬까요? 기후변화는 대기오염을 일으키는 산불, 열 스트레스를 주는 폭염과 홍수를 일으키는 집중호우 같은 극한 기상을 증가시키고 있습니다. 봄 기온이 올라가는 것은 식물들이 꽃가루와 같은 알러지 원인 물질도 더 많이 만들게 하고요. 그러면서 광범위한 생태계 변화를 일으켜 인간이 다양한 미생물과 동식물종에 노출되면서 면역체계를 발달시킬 기회를 줄이고 있지요.
과학자들은 기후변화로 인체가 면역체계를 발달 유지시키는데 필요한 영양가 있는 식단에 접근하는 것도 점점 어려워진다는 점도 지적합니다. 지구 온난화가 밀과 옥수수, 쌀 같은 인간의 식량 작물의 생산성 뿐 아니라 영양소까지 떨어뜨린다는 것이죠.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증가할수록 작물 속에 축적되는 영양분이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섬세한 균형을 이뤄야 하는 면역체계를 교란시키는 이런 환경 변화는 극한 기상처럼 지역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모두가 잠재적 피해자일 수밖에 없는 위협이라는 얘기입니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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