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주차장으로 변하는 '어린이 놀이터'의 슬픈 자화상 [추적+]

최아름 기자 2024. 4. 17.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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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점점 줄어드는 어린이 수
놀이터 입지도 위협받아
주차장 전환 면적 기준 늘어
최근에는 공원놀이터보다
키즈카페 놀이터 더 늘어나

어린이의 숫자가 줄자 아파트 내 놀이터가 주차장으로 바뀌고 있다. 저출산 시대를 맞이한 우리가 받아들여야할 어쩔 수 없는 흐름일 지 모른다. 하지만 놀이터가 필요한 어린이는 여전히 많다. 저소득 가구의 어린이일수록 특히 그렇다. 문제는 새로 생기는 놀이터 중 '돈을 내야 갈 수 있는 곳'의 비중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놀이터 대신 주차장을 만드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사진=뉴시스]

초등학교에 가기 전 자주 놀았던 놀이터를 떠올려보자. 생각나는 놀이터는 몇개인가. 아파트에 살았다면 아파트 놀이터일 거다. 빌라나 단독주택에 살았다면 근처 공원이나 학교 운동장의 놀이터가 떠오를 것이다.

수년 전만 해도 아이들은 공원 놀이터에선 어떤 놀이를 하면 재미있는지, 학교 놀이터에선 무엇을 타고 놀아야 가장 재미있는지, 골목 놀이터로 가려면 가장 빠른 길이 어느 쪽인지를 바로 답할 수 있었다. 어린이의 시간에서 놀이터가 그만큼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는 방증이다.

이런 놀이터의 입지가 최근 들어 좁아지고 있다. 경기도 일대에선 놀이터를 주차장으로 만드는 사업을 심심찮게 진행 중이다. 국토교통부는 2023년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개정해 아파트 내 놀이터 등 면적의 75%까지 주차장으로 바꿀 수 있도록 했다.

공동주택관리법을 제정한 2015년엔 놀이터 등의 면적 50%까지만 주차장으로 전환할 수 있었다. 그마저도 1994년 12월 30일 이전에 지은 건물에 한정했다. 지하주차장이 부족한 구형 아파트 단지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였다.

한편에선 "아이들이 줄었으니 놀이터의 공간을 축소하는 건 옳은 방향"이라고 주장한다. 일견 설득력이 없지 않다. 한해에 60만명씩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보던 시절도 있었지만 수험생 수는 이제 3분의 1로 줄었다.

서울에 살고 있는 유아·어린이(0~12세)를 다 합쳐봐야 71만명이다. '주요 고객'이 감소세를 띠고 있으니, 놀이터를 줄이는 건 당연한 방향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생각해봐야 할 게 있다. 과연 놀이터의 감소는 '모든 어린이'에게 똑같이 해당하는 일일까.

[사진=연합뉴스]
[자료 | 행정안전부, 참고 | 2024년 기준]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있는 놀이터는 올 3월 현재 8만1987개다. 이들 중 절반 이상(53.3%)이 주택단지에 있다. 이는 아파트 안에 있는 놀이터여서 아파트 주민만 이용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주택단지 내 놀이터 다음으로 많은 건 도시공원 내 놀이터로 14.4%다. 아파트 놀이터와 비교하면 그 수가 훨씬 적다. 아파트에 살지 않는 어린이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놀이터가 많지 않다는 거다.

문제는 2020년 이후 모든 어린이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도시공원 내 놀이터보다 주택단지 내 놀이터가 훨씬 더 가파르게 늘고 있다는 점이다. 행전안전부의 자료를 보면, 2020~2024년 도시공원 내 놀이터는 140개 늘어난 반면, 주택단지 내 놀이터는 502개 증가했다. 아파트에 살지 않는 미취학 아동이 절반 이상이란 점을 감안하면 공론화가 필요한 문제다.

서울시 아동가구 주거실태조사(2020년 기준)에 따르면, 만 18세 미만 아동이 있는 서울 내 가구는 83만8696가구다. 이중 37.1%는 첫째 아이가 '미취학 시기'일 때, 51.9%는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때 아파트에서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취학 아동이 있는 가정 10곳 중 6곳, 초등학생 큰아이가 있는 가정 중 절반이 아파트가 아닌 곳에 산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은 유엔아동권리협약 31조에서 규정하는 모든 아동이 적절하고 균등하게 누려야 할 놀이권을 침해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지난해 11월 논문 '놀이권 보장 측면에서 본 국내외 어린이놀이터 관련 법제 비교 연구'을 발표한 송윤정 건축공간연구원 연구원은 "아동 놀이권을 보장하기 위해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면서 "놀이터는 아동 놀이권 보장을 위한 공간으로 역할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어린이 놀이터 통계에서 주목할 건 또 있다. '유료 놀이터'의 증가세가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올 3월 기준 서울시 내 주택단지 놀이터는 6331개, 도시공원 놀이터는 1695개, '키즈카페'로 대표되는 놀이제공영업소(유료 놀이터)는 137곳이다. 놀이제공영업소의 비중이 1.7%로 가장 적다.

[사진=뉴시스]
[자료 | 행정안전부, 참고 | 2024년 3월 기준]

하지만 2020년 이후로 기준점을 바꾸면 유료 놀이터의 증가세가 눈에 띈다. 행안부에 따르면, 놀이제공영업소 137개 중 64.2%인 88개가 2020년 이후에 문을 열었다. 물론 유료로 이용하는 놀이터가 빠르게 늘어났다는 건 시설이 고급화하고 어린이를 위한 환경이 좀 더 개선됐음을 의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어린이가 유료 인프라를 누릴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게 문제다.

그럼에도 누구나 갈 수 있는 어린이 놀이터는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한다. 서울시의회의 한 전문위원은 "어린이 놀이터 사업의 지난해 예산은 21억5200만원이었지만 집행률은 13.3%로 저조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아파트에 살지 않고 유료 놀이터를 이용하기 어려운 어린이가 맘 놓고 뛰놀 수 있는 공간은 계속 만들어질 수 있을까.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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