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의 영광은 선수만?…여자 심판으로 참가하는 김유정 주심[올림픽 D-100]

황민국 기자 2024. 4. 1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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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 심판이 지난 12일 전주시 전북 유나이티드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나 파리 올림픽을 향한 포부를 밝히고 있다. 그가 끼고 있는 축구공은 2022년 한국-파라과이전의 사인볼. 전주 | 황민국 기자



“아직 실감이 안 나요.”

김유정 심판(35)은 처음 ‘휘슬’을 잡을 때부터 꿈꾸던 무대에 초대 받았다. 오는 7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올림픽이다.

김 심판은 지난 3일 국제축구연맹(FIFA)이 발표한 파리 올림픽 축구 종목의 심판 89명(주심 21명·부심 42명·비디오판독(VAR) 심판 20명·보조 심판 6명) 가운데 주심으로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한국 심판이 이번 올림픽에 참가하는 것은 그와 박미숙 부심이 유이하다.

김 심판은 지난 12일 전주시 전북 유나이티드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나 “올림픽 개막이 100일 앞으로 다가왔다는 게 아직 실감이 안 난다”면서 “호주에 살고 있는 (박)미숙 언니와 함께 한국을 대표해 매끄러운 판정을 보여주겠다는 각오로 몸을 만들고 있다”고 활짝 웃었다.

참가국이 적은 만큼 초대받는 심판 숫자도 월드컵(129명)보다 40명 적다. 한국이 올림픽 축구 심판을 배출한 것은 2012년 런던 올림픽의 홍은아 심판 이후 처음이다.

김유정 주심 | 대한축구협회 제공



김 심판은 “홍은아 선배님의 뒤를 잇는다는 사실이 영광”이라며 “2년 전 20세 이하 여자 월드컵에 주심으로 참가했을 때도 홍 선배님 이후 12년 만이라 기뻤는데, 올림픽도 같은 길을 걷게 됐다. 아시아에 뛰어난 국제 심판이 많기에 2028년 LA 대회가 내 순서라 생각해 놀랐다. FIFA 심판위원회에 ‘왜 날 뽑았느냐?’고 묻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김 심판의 겸손한 발언과 달리 그는 국제 무대에서 인정받는 심판이다. 2018년 처음 국제 심판 휘장을 얻은 이래 16세 이하 여자 아시안컵 1차예선을 시작으로 숱한 국제 대회를 누비며 호평을 받았다. 점점 빨라지는 현대 축구의 템포를 무난히 따라갈 수 있는 신체 능력과 적확한 판정 능력을 겸비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김 심판은 국내에선 여자실업축구 WK리그 뿐만 아니라 남자 세미프로리그인 K3리그, 코리아컵 등에서 그라운드의 포청천으로 활약하고 있다. 2022년 6월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파라과이의 평가전에선 대기심으로 나서면서 남자 A매치까지 경험했다. FIFA가 이번 올림픽에서 처음 남·녀 축구의 심판을 통합 발표했는데, 김 심판이 높은 점수를 받은 배경이다.

김유정 심판(왼쪽에서 세 번째)이 2022년 6월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파라과이의 평가전을 앞두고 양 팀 주장과 함께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김유정 심판 제공



김 심판은 “(여자 축구 명문인) 위덕대 재학시절까지 현역으로 뛰었다. 부상으로 은퇴를 결심한 뒤에도 유니폼을 계속 입고 싶어 심판을 선택했는데, 그 효과를 보고 있다. 올림픽에선 아직 남자 경기를 들어갈지, 여자 경기를 들어갈지는 결정된 게 없다”고 말했다.

김 심판이 올림픽에서 투입될 무대는 6월 24일까지 제출해야 하는 FIFA의 올림픽 심판 테스트에 달렸다. 남·녀 심판 모두 테스트 형식은 같지만, 기준점이 다르다. 40m 달리기를 6회 반복하는 숏 스프린트의 경우 남자는 5.8초, 여자는 6.3초 안에 통과해야 한다.

김 심판은 “몸 상태가 좋을 때는 남자 기록도 도전할 만 하다. 5월 3일 예정된 테스트에서 몸 상태에 따라 남자 기록까지 도전할지 결정할 계획”이라며 “대한축구협회 심판위원회에서 한 명 밖에 없는 올림픽 주심이라고 배려를 많이 해주셔서 감사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김 심판은 자신의 올림픽 참가가 심판을 넘어 잠시 꺾인 여자축구 전체의 발전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스포츠 예능프로그램 <골때리는 그녀들>의 인기와 달리 어린 여자 선수들이 줄어들고 있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실제로 여자축구 전문 선수는 10년 전인 2014년(1765명)보다 15%가량 줄어든 1570명(2023년 8월 기준)에 머물고 있다.

김 심판은 “휘슬을 불지 않는 날에는 전주에서 성인 여성과 초등학교 여자 아이들을 가르치는 지도자도 맡고 있다. 축구를 좋아하는 여성들을 풀뿌리에서 지원하는 게 목표”라며 “아직 여자축구에선 올림픽에 참가한 일이 없다. 심판으로 다녀온 뒤에는 아이들에게 올림픽 현장의 경험을 전달하고 싶다”고 말했다.

전주 | 황민국 기자 stylel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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