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건축] 모더니즘 건축의 유산

심영섭 건축사사무소·우노 대표 2024. 4. 1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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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섭 건축사사무소·우노 대표

근대주의 또는 현대주의로 번역하는 모더니즘은 예술사에서 일반적으로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반에 이르는 시기를 일컫는다. 모더니즘은 과거의 전통적인 가치와 관습을 부정하고 과학과 객관성, 산업화, 시장경제, 개인주의 등의 가치를 중시하였다. 건축에서 모더니즘 또한 과거의 장식적이고 형식 위주의 유럽건축 전통에서 벗어나 새로운 재료와 기술, 기능을 바탕으로 무장식의 입방체 순수형태를 추구하였다. 일부 건축학자들은 건축의 모더니즘은 영국 런던에서 최초의 세계박람회가 개최되었던 1851년부터 미국 세인트루이스의 푸르이트-아이고 주거단지가 폭파된 1972년까지의 기간으로 구체적인 시기를 규정하기도 한다.

1851년 런던 세계박람회 개최를 위해 건설된 수정궁(Crystal Palace)은 몇 달의 박람회 동안만 한시적으로 사용할 대형의 내부공간을 최소의 비용과 최단의 기간에 건설 및 해체가 가능해야 했다. 따라서 과거의 건축과는 달리 규격화, 표준화, 산업화 된 재료와 공법으로 기능적이고 새로운 건축을 만들어야 했다. 수정궁은 공장 생산된 규격화된 주철재 부재와 유리를 사용한 길이 564m, 높이 39m의 건물로서 5개월 만에 완성되었다. 과거에는 볼 수 없던 재료 및 형태에 대형 유리온실을 연상시키는 내부공간을 지녔던 이 건물이 역사와 장식을 거부하고 기계미학과 기능주의를 표방한 모더니즘 건축의 시작으로 평가되는 이유이다.

반면에 미국의 세인트루이스시 외곽의 저소득층 슬럼지역에 2762세대를 수용하는 대규모 공공주택단지로 재개발된 푸르이트-아이고 주거단지는 1954년 완공되었으나 20년이 채 지나지 않아 다이너마이트로 단지 전체가 폭파되었다.

푸르이트-아이고 주거단지는 현재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대규모 아파트 주거단지와 흡사한 모습으로서 11층의 네모 반듯한 판상형 아파트 33동이 6열로 늘어서 있었다. 커뮤니티 시설이나 녹지도 없이 주거 기능만 있었던 이 주거단지는 대형의 수용소와 다름없었다. 잇단 범죄에 따른 빈집의 증가와 슬럼화의 반복 심화 끝에 단지 전체의 폭파만이 유일한 해결책으로 판단되었다. 1972년 7월 15일 이 주거단지 전체가 폭파되는 모습은 TV를 통해 방송되었고, 도미노처럼 연달아 무너져 내리는 아파트 붕괴 장면은 건축계는 물론 일반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모더니즘 건축의 종말을 고하는 순간으로 기억되는 까닭이고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 건축가들이 이른바 한국의 부자 동네라는 강남 고급 아파트촌의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모더니즘 건축은 20세기를 대표하는 건축양식으로서 기후나 문화에 상관없이 세계의 건축과 도시 모습을 단일한 양식과 모습으로 통일한 최초의 사례이다. 그래서 모더니즘 건축은 국제주의양식(International style)으로 불리기도 했으며, 근대화 이후 급조된 우리나라의 건축과 도시 모습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정확히 얘기하면 우리가 받아들였던 건축양식은 '모더니즘' 건축이 아니라 '모더니즘적' 건축이다. 예술로서 건축이 지닌 태생적 한계를 벗어나 순수예술의 경지까지 근접했던 모더니즘의 개념과 미학은 잊혀지고 경제성과 손쉬운 모방으로 인해 모더니즘의 흉내를 낸 건물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크고 작은 우리의 도시 경관을 지배하고 있는 모더니즘 건축은 불도저로 밀어 없애야 할 대상이 아니라 근대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과거의 유산이자 미래의 자산이 되어야 한다. 한때 값싸고 남루한 모더니즘적 건물과 공장이 즐비하던 서울의 성수동이나 문래동이 도시재생을 통해 매력적인 도시의 일부로 탈바꿈한 사례는 건축 전문가나 일반인 모두에게 교훈이 되어야 한다. 건축과 도시가 사람을 만드는 게 아니라 사람이 건축과 도시를 만든다. 심영섭 건축사사무소·우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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