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쉽긴 해요" 역대급 오심 은폐, 왜 선수가 체념해야 하나…예견된 참사, 확실한 대책 필요하다

김민경 기자 2024. 4. 17. 0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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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C 다이노스 이재학은 뜻하지 않게 ABS(자동볼판정시스템) 오심 논란에 휩싸였다. ⓒ NC 다이노스
▲ NC-삼성 경기 도중 심판진이 자신의 잘못을 은폐하려 했다는 정황이 나와 충격을 안기고 있다. ⓒ삼성 라이온즈

[스포티비뉴스=창원, 김민경 기자] "조금 아쉽긴 해요. 아쉽지만, 이미 다 지난 일이고 나는 또 다음을 준비하면서 그냥 그렇게 있는 상황이다."

NC 다이노스 투수 이재학은 뜻하지 않게 논란의 중심에 서게 돼 당혹스러운 눈치였다. 이재학은 올해 KBO리그에 ABS(자동볼판정시스템)가 도입된 이래 최악의 오심 은폐의 피해자가 됐는데, 정작 선수는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KBO는 ABS를 도입하면서 볼과 스트라이크 판정이 너무도 명확하기에 더는 심판과 선수의 감정싸움이 없으리라 믿었지만, 선수는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는 말을 또 한번 곱씹으며 참아야만 했다.

문제는 지난 14일 대구에서 열린 NC와 삼성의 경기에서 발생했다. 선발투수 이재학은 NC가 1-0으로 앞선 가운데 3회말 2사 1루에서 이재현을 상대했다. 이재현만 잘 잡으면 다음 이닝으로 넘어갈 수 있었는데, 볼카운트 0-1에서 2구째 직구에 문승훈 주심이 볼을 선언했다. NC 벤치에서는 스트라이크가 아닌가 의구심이 드는 공이었는데, 'ABS가 볼이라고 했으니 맞겠지'라는 생각으로 넘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강 감독은 KBO가 각 구단에 지급한 ABS(자동볼판정시스템) 확인용 태블릿 PC를 보고 오심을 확신했다. 태블릿 PC에는 2구째 직구가 스트라이크로 찍혀 있었고, 그러니 주심의 판정으로 이뤄진 볼카운트와 달랐다. 강 감독이 더그아웃을 박차고 나가 주심에게 어필을 시작한 이유다.

NC가 뒤늦게 항의에 나선 건 ABS 데이터가 구단 태블릿 PC로 전송되는 속도가 느려서다. 현장에서는 시범경기 때부터 "ABS 데이터가 태블릿 PC로 너무 늦게 전송된다"는 목소리가 나왔고, KBO도 해당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실제로 이날도 문제의 공을 던지고 2~3구 정도 더 던진 뒤에야 2구째 직구가 태블릿 PC에 스트라이크로 찍혔다. NC는 정당한 항의 기회를 일차적으로는 ABS 시스템 문제로 놓치게 됐다.

강인권 NC 감독은 16일 창원 한화 이글스전을 앞두고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방지할 수 있었던 것들이 분명히 있었는데도 그런 상황을 만들었다는 게 조금 안타깝기는 하다. 우리들이 시범경기를 통해서 ABS를 이용하면서 태블릿PC에 전송되는 시간과 관련해 항상 문제 제기를 했다. KBO에서도 인지는 하고 계셨고, 시즌이 시작하면 분명 개선될 것이라고 이야기도 해 주셨다. 그런 점들이 조금 일찍 개선되지 않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또 음성 수신기 장비를 일주일 뒤에 도입한다고 들었는데, 조금 더 일찍 해 주셨으면 이런 상황이 발생되지도 않지 않았을까 그런 아쉬움이 든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 보다는 상황을 안 만들어야 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든다"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이어 "육안으로는 2구째가 스트라이크라고 생각했다. 스트라이크라고 인지했고, 다만 태블릿PC에 무감각해진 이유가 한 구를 던지면 2~3구 뒤에 결과가 전송이 되기 때문에 처음에는 관심 있게 보다가 조금 무감각해진 것이 사실이다. 계속 투구하는 것도 확인해야 할 점들이 분명 있기 때문에. 꼼꼼히 체크하지 못한 점들도 분명 있었겠지만,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른 볼카운트라 그때 태블릿 PC를 확인했고, 스트라이크로 나와 있어서 정정할 수 있는 점이 있겠구나 해서 어필을 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염경엽 LG 트윈스 감독은 강 감독과 같은 문제점을 짚었다. 염 감독은 16일 잠실 롯데 자이언츠전을 앞두고 "공 하나가 넘어가야 (ABS 볼 판정 결과가) 나온다. KBO도 알고 있다. 개막 미디어데이 때 실무자들하고 감독하고 같이 미팅을 했다.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미스(누락)가 나왔을 때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봤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상황이어서 번복이 된다고 했고, 최대한 이른 시간 안에 바로바로 뜨도록 하겠다고 얘기를 했다. KBO도 줄이려고는 한다. 시범경기보다는 빨라졌는데 그래도 다음 공은 들어와야 뜬다"고 설명했다.

▲심판이 ABS를 통해 볼판정을 내리고 있다. ⓒ삼성 라이온즈
▲ 한화 이글스 류현진이 구단에 지급된 태블릿 PC로 ABS 데이터를 확인하고 있다. 현장에서는 데이터 전송이 너무 늦다는 목소리를 꾸준히 내왔다. ⓒ 한화 이글스

ABS 시스템의 문제점이 노출된 상황에서 심판진의 미숙한 일 처리가 문제를 더 키웠다. 강 감독의 항의에 심판진이 모여 논의를 시작했는데, 오심을 의도적으로 덮으려는 의도가 담긴 발언이 전파를 타면서 야구팬들의 분노를 샀다.

1루심을 맡았던 이민호 심판팀장이 “안 들렸으면 안 들렸다고 사인을 주고 해야 되는데 그냥 넘어가 버린 거잖아”라고 말하자 문승훈 주심은 “지나간 건 그냥 지나간 걸로 해야지”라고 받아치는 목소리가 그대로 중계방송에 나갔다. 문승훈 주심이 ABS 콜을 제대로 못 들은 상태에서 볼로 선언하고 넘어갔다는 뜻으로 읽혔다.

그다음 발언은 더 충격적이었다. 이민호 심판팀장은 "음성은 분명히 볼로 인식했다고 들으세요(하세요). 아셨죠? 우리가 빠져나가려면 그것밖에 없는 거예요. 음성은 볼이야. 알았죠? 우리가 안 깨지려면 일단 그렇게 하셔야 돼요”라고 너무도 당당하게 말했다. 이 목소리가 방송으로 그대로 중계되지 않았더라면 자칫 '음성은 볼이었다'고 모두가 속고 넘어갈 뻔했다.

논란의 대화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문승훈 주심은 “(이어폰을 통해 전달된 판정 내용이) 지지직거려서 볼 같았다고 하겠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민호 심판팀장은 “같았다라고 하면 안 된다. 볼이 나왔다고 하시라. 우리가 안 깨지려면 그렇게 해야 한다”고 다그쳤다.

이민호 심판팀장은 마이크를 잡고 "투구한 공이 음성으로는 볼로 전달이 됐다. 그런데 ABS 모니터를 확인해 보니 스트라이크로 판정이 됐다. 어필 시효가 지난 걸로 해서 카운트 그대로 진행하겠다”고 일단 발표하며 진화에 나섰다.

염경엽 감독은 이번 일은 ABS 시스템의 문제가 아닌 심판진의 잘못된 대처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봤다. 염 감독은 "ABS의 문제라기 보다는 심판들의 판단 문제다. 심판들이 들은 그대로 얘기했으면 되는데 본인들이 다르게 해석을 하다가 문제가 커진 것 아닌가. ABS 자체는 심판들보다 형평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1년 만에 모든 게 완벽하게 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지금은 완벽으로 가는 과도기에 있다고 봐야 할 것 같다"고 강조했다.

김태형 롯데 감독은 "그냥 전광판에 그려놓고 표시하는 게 제일 정확하다. 뭘 우리가 그것(음성 수신기)까지 듣게 하나"라며 "다음 공은 끝나야 데이터가 들어온다. 강 감독도 다음 공을 보고 나서 어필하지 않았나. 어쨌든 늦게 들어오니 어필하기도 늦다"며 KBO가 궁여지책이 아닌 확실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봤다.

▲ 강인권 NC 다이노스 감독은 이번 일은 미리 막을 수 있었던 참사라고 이야기한다. ⓒ곽혜미 기자
▲ 주심은 이어폰으로 ABS 판정이 어떻게 됐는지 전달해 듣는다. 주심이 듣지 못하면 3루심이 확인하도록 시스템을 마련했지만, 문제가 발생한 날에는 주심과 3루심 모두 판정을 놓쳤다. ⓒ곽혜미 기자

이재학은 스트라이크가 볼로 둔갑된 여파로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이재학은 3⅓이닝 6실점에 그쳐 패전을 떠안았다. NC는 결국 삼성에 5-12로 역전패했고, 16일 창원 한화전까지 4-7로 역전패하면서 연패에 빠졌다. KIA 타이거즈와 선두 싸움을 펼치던 NC는 시즌 성적 13승7패를 기록해 3위까지 떨어졌다. KIA는 14승5패로 선두를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키움 히어로즈가 그사이 5연승을 질주하면서 12승6패로 승률에서 NC에 앞서 2위에 올랐다.

억울한 논란의 당사자가 된 이재학은 "조금 아쉽긴 하다. 아쉽지만, 이미 다 지난 일이고 나는 또 다음을 준비하면서 그냥 그렇게 있는 상황이다. 그 순간도 경기의 일부라 생각해서 그냥 다시 던지려고 했다. 별 생각하지 않고 던지려고 마음을 먹었다. 내가 잘 마무리했으면 좋았겠지만, 결과는 일어나야 알 수 있는 것이지 않나. 확률적으로는 (스트라이크였다면) 조금 더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는 확률이 있었겠지만, 그 뒤에 결과는 또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하고 또 지나간 것이라 생각하고 그냥 좀 잊고 다시 준비하려 생각하고 있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강 감독은 "(이)재학이도 당시 컨디션이 조금 흔들렸던 점도 있고, 내가 또 어필이 조금 길어진 순간에 또 리듬을 깬 점도 있기 때문에 그 점은 재학이에게 미안한 마음"이라고 했다. NC 구단은 KBO에 해당 문제를 정식으로 항의하고 사과를 요청하는 공문을 전달한 뒤 심판진 징계 등 답을 기다리고 있다.

KBO는 사태의 심각성을 확인하고 심판진 징계 및 대책 마련에 나섰다. KBO는 15일 '허구연 총재 주재로 긴급 회의를 진행하고 14일 대구 NC-삼성 경기의 심판 팀장 이민호 심판위원, 주심 문승훈 심판위원, 3루심 추평호 심판위원에 대해 금일 부로 직무 배제하고 절차에 따라 인사위원회에 회부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3루심도 ABS 판정 콜을 주심과 같이 들을 수 있고, 주심이 못 들었다면 정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어 징계 대상에 포함됐다.

KBO는 "사안이 매우 엄중하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엄정하게 징계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다. KBO는 이날 허구연 총재 주재로 ABS 긴급 점검 회의를 개최했으며, 주심 혹은 3루심이 스트라이크/볼 판정 수신에 혼선이 발생했을 경우, ABS 현장 요원이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도록 매뉴얼을 강화하기로 했다. 또한 양 팀 덕아웃에서도 주심, 3루심과 동일한 시점에 스트라이크/볼 판정을 전달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최대한 이른 시일 안에 음성 수신기 장비를 배치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 KBO가 야심차게 도입을 추진한 자동 투구 판정 시스템 ABS. ⓒ K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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