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양의(良醫)에 관한 비유

박상호 시인·고향의봄 회장 2024. 4. 17.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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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들어 치료 원하는 환자, 양약 거부하면 완치 불가
백팔번뇌 시달리는 중생, ‘묘법’ 깨치면 해탈 가능
박상호 시인·고향의봄 회장

묘법연화경에서 여래는 방편으로 중생을 교화하는데 그 까닭은, 만약 부처가 오래도록 세상에 머무르면 박덕한 사람은 오욕에 탐착하고, 망령된 소견의 그물 속에 갇히기 때문이다. 만약 여래가 항상 있어 멸하지 아니한다고 보이면, 곧 교만해지고 게을러져서 만나기 어렵다는 생각과 공경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못한다. 이런 까닭으로 여래수량품에서 여래는 방편으로 모든 부처가 세상에 나오셔도 만나기 어려우니 그 까닭은, 모든 박덕한 사람은 무량한 백천만억겁을 지나서 부처를 뵐 수도 있고, 뵐 수 없는 자도 있으므로 이와 같이 말한다. “모든 비구여, 여래는 만나 뵙기가 어렵느니라.”

중생들은 이와 같은 말을 들으면 반드시 만나기 어렵다고 생각하고, 마음에 연모를 품고, 부처를 갈앙해서 곧 선근을 심는다. 이런 까닭으로 여래는 실제로도 멸하지 아니하지만, 멸도한다고 말한다. 비유컨대 좋은 의원이 있어 지혜가 총명하고 통달해서 진단과 처방에 능숙해 모든 병을 잘 다스리는 것과 같다. 그 사람에게 여러 자식이 있으니, 그 수가 100에 이른다. 어떤 사연이 있어 멀리 다른 나라에 가게 됐다. 모든 자식들은 그 후에 다른 독약을 마시고, 약이 퍼져서 정신이 어지러워 땅에 뒹군다. 이때 그 아버지가 집에 돌아왔다. 여러 자식들은 독을 마시고, 혹은 본심을 잃고, 혹은 잃지 아니한 자도 있다. 멀리서 그 아버지를 보고 기뻐하며, 절하고 꿇어앉아 문안드리기를 “편히 잘 다녀오셨나이까. 우리는 어리석어 잘못하여 독약을 마셨나이다. 원컨대, 치료하여 구원하사 다시 수명을 주시옵소서”라고 했다.

아버지는 자식들이 이와 같이 고뇌하는 것을 보고, 여러 가지 처방으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양약은 색과 향과 좋은 맛을 모두 갖추었으니, 너희는 먹을지어다. 그리하면 속히 고뇌를 없애고 다시 모든 병이 없어지리라.”

그 많은 자식 가운데에서 마음을 잃지 아니한 자는 이 양약의 색과 향이 모두 좋은 것을 보고, 곧바로 이를 먹으니 병이 모두 나았다. 다른 마음을 잃은 자는, 그 아버지가 온 것을 보고, 또한 기뻐하며 문안드리고 병을 치료해 달라고 청했으나, 그 약을 주어도 굳이 먹지 아니하니, 그 까닭은 독기가 깊이 들어가서 본심을 잃었기 때문에 이 좋은 색과 향이 있는 약을 좋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 자식들은 참으로 불쌍하구나. 중독되어 마음이 모두 거꾸로 되었느니라. 나를 보고 기뻐하며 치료하여 구해 주기를 바라면서도, 이와 같이 좋은 약을 굳이 먹지 아니하니, 나는 지금 바로 방편을 마련하여, 이 약을 먹게 하리라.”

곧 이와 같이 말한다. “너희는 마땅히 알지어다. 나는 이제 늙어 쇠약해져 이미 죽을 때가 이르렀느니라. 이 좋은 양약을 지금 여기에 남겨 두니, 너희는 먹을지어다. 차도가 없을까 걱정하지 말지어다.” 이렇게 이르고 나서, 다시 타국에 가서, 심부름꾼을 보내어 전하기를, “너의 아버지는 이미 죽었느니라”라고 했다.

이때 여러 자식들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는 말을 듣고 “만약 아버지가 계셨다면, 우리를 구해 주실 터인데, 세상을 떠나셨으니 우리는 고아로서 의지할 데가 없구나”라고 항상 슬픔에 잠겨 있었는데, 마침내 본심이 깨어나 이 약의 색과 향과 맛이 좋은 것을 알고, 즉시 이를 먹으니 병이 모두 나았다.

그 아버지는 자식들의 병이 모두 나았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돌아와서 이들을 만나 보았다. “모든 선남자여. 어떻게 생각하느뇨. 어찌 누가 이 좋은 의원에게 허망한 죄가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느뇨”라고 했다.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가 말씀하시기를, “나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성불한 이래로 무량무변한 백천만억나유타아승기겁이지만, 중생을 위하기 때문에 방편력으로 마땅히 멸도한다고 하느니라. 이와 같이 설한 나를 능히 허망의 잘못이 있다고 감히 말할 자가 있겠느뇨”라고 했다. 여기서 등장하는 양의(良醫)는 부처를 의미하고, 아이들은 중생을 의미하며, 대양약은 묘법연화경이며 이는 석존을 성불시킨 근원적인 스승과 같은 경전이다. 괴로움에 뒹굴고 있는 아이들은 전도된 중생이라 하며, 병들어 치료를 원하면서도 약을 마시고 싶어 하지 않으므로 ‘전도’이며, 현대 사람 대부분도 전도된 중생이라고 생각된다. 여기서 병이란, 탐욕·노여움·어리석음으로 생명이 혼탁한 것을 의미한다.


석존은 자신의 광대한 내적 우주를 탐구하고 궁극에서 자신을 뛰어넘어 외적 우주와 하나가 된 우주 생명을 법(다르마)으로 깨달았다. 이는 구원의 부처 영원한 부처가 석존뿐만 아니고 모든 중생의 생명에 내재하고 있음을 밝힌 비유이며 위대한 깨달음의 핵심적 진리다. 인간의 생명뿐만 아니라 우주의 삼라만상을 꿰뚫고 생과 사에 걸친 근원법이 묘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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