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256] 늑대와 빨간 모자
작은 빨간 모자는 괴상하게 모자를 푹 내려쓰고 누워 있는 할머니에게 물었습니다.
“할머니 귀가 왜 이렇게 커요?”
“귀가 커야 네 말을 더 잘 들을 수 있지.”
“할머니 손이 왜 이렇게 커요?”
“손이 커야 널 더 잘 잡을 수 있지.”
“할머니 입은 왜 이렇게 커요?”
“입이 커야 널 더 잘 잡아먹을 수 있지!”
늑대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불쌍한 작은 빨간 모자를 한입에 꿀꺽 삼켜버렸습니다.
- 그림 형제 ‘작은 빨간 모자’ 중에서
대통령 부부가 부산과 서울에서 따로따로 사전 투표했다. 정부 수장은 당일에 투표한다는 상식이 깨졌다. 아침 일찍 대통령 부부가 기표한 투표용지를 나란히 투표함에 넣는 사진도 사라졌다. 선거 날은 법정 휴일이다. 굳이 본선거 닷새 전에 사전 투표일을 이틀이나 주는 이유, 집권 여당과 대통령 부부까지 나서서 말 많고 탈 많은 사전 투표를 권장한 까닭은 뭘까?
“새로운 희망을 찾기 위해 사전 투표를 반드시 해야 한다. 많은 분이 사전 투표에 참여해야 한다”고 대통령은 강조했다. 사전 투표가 유권자 참여를 높이고 높은 투표율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 그러나 결과는 야당의 승리. 대통령의 희망이 여당의 패배일 리는 없을 터, 전략이 부재했거나 정보전에 무능했다는 뜻이다.
작은 빨간 모자라고 하는 어린 소녀는 할머니 댁에 심부름하러 간다. 숲길에 들어서면 한눈팔지 말라는 엄마 말을 듣지 않고 아이는 꽃밭에서 한참을 논다. 배고픈 늑대는 먼저 가서 할머니를 잡아먹고 아이를 기다린다.
빨간 모자는 늑대가 적이라는 걸 몰랐다. 할머니 집 위치를 알려주었고, 늦게 도착해서는 할머니인 척하는 늑대의 큰 귀와 큰 손과 큰 입을 보고도 거짓과 위험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구전을 옮긴 샤를 페로의 원전은 이렇게 살 기회를 몇 번이나 놓친 아이가 늑대에게 잡아먹히는 것으로 끝난다. 그러나 그림 형제는 사냥꾼을 등장시켜 할머니와 아이를 늑대 배 속에서 꺼내 살리는 이야기를 더했다.
현실은 동화가 아니다. 늑대만 나쁘다고 탓할 일도 아니다. 지지자의 조언은 흘려듣고 적이 좋아할 일들만 골라 하다 패배한 집권당에는 해피엔딩을 선물할 사냥꾼, 다음 정권을 창출할 의지와 지혜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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