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 칼럼]‘채 상병 특검’, 아직은 순서 안 지킨 반칙

송평인 논설위원 2024. 4. 16.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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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장 처벌 함부로 해서 안 된다”는
윤 대통령 발언 사실이라면 성급한 것
다만 수사권 없는 군 검찰 보고서에
수사 개입 인정할 수 있는지 불명확
송평인 논설위원
해병대 채모 상병 사망 사고와 관련한 수사 개입 의혹은 어려운 문제다. 수사선상에 있는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주호주 대사 발령이 일파만파를 몰고 온 이유는 어려운 문제를 어렵다고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분명한 점 하나는 이 문제가 정치적 혼란을 초래하는 요인이 되지 않도록 주의 깊게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의혹의 핵심은 물론 윤석열 대통령이 수사 개입을 했느냐다. 해병대 수사단장이었던 박정훈 대령 측은 윤 대통령이 “이런 일로 사단장까지 처벌하면 대한민국에 누가 사단장을 할 수 있겠냐”며 질책한 것이 수사보고서 내용을 바꾼 이유라는 취지의 자료를 언론에 공개했다. 윤 대통령의 수사 개입을 추정할 만한 것은 현재로선 이것뿐이다. 개연성은 있어 보이지만 대통령실과 대립하는 박 대령 측이 만든 자료라는 점이 문제다.

병사가 죽었다고 사단장까지 처벌해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은 쉽지 않다. 사단장까지 처벌하면 누가 사단장을 할 수 있겠냐는 문제의식은 군을 잘 아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잘 모르는 것일 수 있다. 작전 단위가 대대라면 현장 사정을 가장 잘 아는 것은 통상 대대장이다. 사단장 등 윗선에서야 늘 성과를 내려고 다그치겠지만 대대장은 현장에서 스스로 판단해서 결정해야 하니까 병사와 다른 장교인 것이다. 그러나 사단장이 현장까지 내려와 직접 지시를 한다면 사정이 다르다. 윤 대통령이 군 경험이 있었다면 자신 있게 그런 말을 하기보다는 사고 당시의 상황을 더 알아보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그런 말을 했다고 하더라도 수사 개입이 되는지는 불명확하다는 게 이 사건의 특징이다. 문재인 대통령 때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개정된 군사법원법이 2022년 7월부터 시행돼 군인이 사망한 사건은 민간 수사기관으로 이첩하도록 됐다. 채 상병 사건도 민간 수사기관인 경찰에 이첩됐다. 물론 경찰로 이첩하기 전에 군 검찰 지휘로 초동수사가 이뤄졌다. 그러나 경찰이 일반 변사 사건에서처럼 수사권을 갖고 진행하는 초동수사와는 다르다.

군의 수사 결과에 얽매이지 말고 경찰 등 민간 수사기관이 독립적으로 수사하라는 것이 군사법원법 개정의 취지다. 군 수사가 본래 축소나 은폐가 많다고 여겨져 이런 개정이 이뤄졌으나 민간 수사기관으로 이첩하게 된 것을 계기로 군 지휘부에 늘 축소나 은폐 압력을 받아왔던 군 검찰이 진상을 밝히려고 시도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다만 법적인 관점에서 보면 군의 수사 결과 보고서는 경찰이 참고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자료가 되고 말았다. 군 검찰로서는 다소 무책임하게 보고서를 낼 수 있는 여지도 주어졌다.

채 상병 사고에 대한 지휘관의 과실 책임은 경찰이 수사하지만 수사 개입 의혹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서 수사하고 있다. 공수처는 처장과 차장이 모두 임기가 끝난 지 수개월이 지났지만 후임자들이 임명되지 않고 있다. 상당 기간 동안 공백의 책임 중 절반은 당연직 공수처장 추천위원인 법무부 장관을 뒤늦게 지명한 정부에 있었고 절반은 야당 추천위원을 늦게 지명한 민주당에 있었다.

채 상병 특검은 공수처의 채 상병 수사 결과를 본 뒤 경찰이 지휘관 과실을 어느 선까지 인정하는지 참조해서 결정하는 것이 순서다. 민주당이 추진하는 특검은 이 순서를 어기는 것이기 때문에 잘못이다. 민주당은 공수처의 수사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니 특검으로 바로 가겠다는 속셈일 수 있다. 그러나 억지로 공수처를 만든 것이 민주당 아닌가. 그런데도 공수처 수사를 건너뛴다는 건 이율배반이다. 그래서 특검은 정략적이고, 이 시점에서 국민의힘 안철수 조경태 김재섭 당선인의 채 상병 특검 수용 발언은 경솔하다고 하겠다.

민주당이 특검법을 통과시킨다면 대통령은 자신과 관련된 것이므로 거부권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는 여기서 통하기 어렵다. 수사 미비 등 특검의 전제조건이 충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검의 전제조건이 충족되면 그때 가서 특검을 수용하면 될 일이다. 지금 당장의 특검은 총선 민심에 부응하는 것도 아니고 협치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다. 정해진 순서를 지키지 않는 반칙, 즉 법치의 훼손일 뿐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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