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혁기의 책상물림]아삭하고 쌉싸름한 두릅나물
며칠 차이로 연이어 각기 다른 분에게서 같은 선물을 받았다. 손수 따서 보내신 반가운 두릅나물. 살짝 데쳐서 한 입 베어 무니 아삭한 봄 내음이 입안 가득히 번진다. 저촌 심육의 마음이 이랬을까. 지인이 보낸 두릅나물 한 광주리를 받고 심육은 앓고 난 입안에 맑고 새로운 기운이 생겨난다면서 흥에 겨워 시를 지었다. “강변 살아 산이 아득히 멀기만 한데, 맛깔스러운 두릅나물이 밥상에 올라왔네. 헤어진 뒤에도 여전한 벗의 마음 느끼며, 보배 같은 산나물 맛에 파안대소한다오.”
두릅나물을 먹는 것은 우리나라와 일본, 그리고 중국의 산둥반도 지역뿐이라고 한다. 17세기 문헌에 이미 ‘둘훕’이라는 우리말 표기가 보이는데, 한자로는 목두채(木頭菜), 요두채(搖頭菜) 등으로 썼다. 센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다가 바람 잦아든 뒤 혼자 움직인다고 해서 독활(獨活)이라고 부르는 땅두릅, 엄나무에서 나는 개두릅도 있지만, 보통 두릅이라고 하면 두릅나무 가지 끝에서 자라는 새순인 참두릅을 가리킨다.
낙하생 이학규가 두릅나물을 찬송하며 지은 노래는 이렇게 시작한다. “맛 좋은 나물이 나무 끝(木頭)에서 솟아났네. 붉은 끄트머리 뾰족 내밀었고 푸른 가시마저 부드럽구나. 육포를 대신할 만한 산중의 진미로다.” 딱딱하고 거칠어서 도무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던 나뭇가지 끄트머리에서 연하디연한 초록의 새순이 살포시 돋아나는 모습은,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이겨내는 봄날의 기적이 그대로 담긴 풍경이다.
자연산 두릅나무에서 새순을 따는 일은 때를 놓치지 않는 게 중요하다. 덜 자란 두릅은 먹을 게 없고 조금만 더 자라면 단단해져서 먹을 수 없다. 때맞춰 따야 그 식감과 풍미를 온전히 느낄 수 있다. 그 맛을 제대로 누린 입헌 한운성은 ‘두릅나물’이라는 제목의 시에서 “입안에서 아사삭 궁상의 곡조 절로 나네. 아하! 이제 남은 날엔 고기 맛을 잊겠구려”라고 읊었다. 춘곤증과 무력감이 몰려오기 쉬운 계절, 우리 몸이 더 굳어버리기 전에 부드러운 두릅나물 한 입 베어 물 일이다. 쌉싸름함이 상쾌함으로 이어져 퍼지는 가운데, 봄날의 기적이 우리 마음에도 새 희망 한 조각 채워주지 않을까 기대하며.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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