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달] 한국원자력연구원, 방사선으로 삶의 질 높인다

정인선 기자 2024. 4. 16. 19:3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하수슬러지 처리 기술로 수질오염 대응
국내 최초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영상화
토양 지키는 친환경 콘크리트 블록 상용화
항염증·소염 제품 개발·콜레라균 독성 제어
인체에 무해한 라돈 차단용 기능성 도료 개발
의료용 및 산업용 방사성 동위원소 개발과 기초과학 연구에 활용하는 입자 가속기 사이클로트론. 한국원자력연구원 제공

건강과 복지, 환경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다양한 분야에 활용할 수 있는 방사선 기술도 주목받고 있다. 방사선은 테라노스틱스(Theranostics·치료와 진단의 영어 합성어)와 같은 최첨단 의료에서부터, 새집증후군 방지 도료 같은 생활용품 분야에까지 다방면에서 활약 중이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인류의 건강과 생활 편익을 증진시키고, 국민 삶의 질을 향상하기 위해 고부가가치 방사선 기술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방사선으로 콜레라균의 독성을 제어하고, 여드름·아토피 등 피부질환에 탁월한 메이신(항산화 기능성 성분) 상품을 만드는 데도 일조한다. 친환경 콘크리트나 인체에 무해한 라돈 차단용 기능성 도료를 개발한 데 이어, 방사선의 일종인 감마선을 이용해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하수슬러지를 짧은 시간에 대용량 처리하고 비료로 재활용하는 기술도 개발했다. 이 같은 성과를 토대로 원자력연 첨단방사선연구소는 지난해에만 총 4억 2000만 원의 정액기술료를 받고 민간기업에 기술을 이전하는 등 신산업 창출에 힘쓰고 있다.

방사선을 이용해 육종 연구를 하는 모습. 한국원자력연구원 제공

◇방사선으로 수질오염 막는다… 하수슬러지 처리·재활용 기술 주목

우리가 배출하는 하수는 대부분 미생물을 이용해 정화한다. 이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미생물의 농축된 찌꺼기인 하수슬러지가 다량 발생해 또 다른 환경오염을 유발한다. 2006년 해양오염 방지에 관한 국제협약으로 하수슬러지의 해양 투기가 전면 금지되면서 국내서도 하수슬러지를 육상에서 처리하고 있다. 2022년 기준 국내 하수슬러지 발생량은 약 447만 톤으로, 이를 처리하기 위해 연간 약 6300억 원이 소요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국내 하수처리장에서 사용하는 슬러지 처리 기술은 하수슬러지를 또 다른 미생물을 이용해 분해한 후 압착해 처리하는 방식이다. 이 기술은 30일 이상의 긴 시간이 걸리는데다, 하수슬러지를 약 30%밖에 줄이지 못한다.

반면 원자력연 해체기술개발부 임승주 박사 연구팀이 개발한 기술을 활용하면, 단 5시간 만에 최대 61.5%의 슬러지 저감을 이끌어 낼 수 있다. 분해된 하수슬러지 분해액을 복합비료와 탄소원으로 재활용할 수도 있다.

이 '하폐수 처리장 슬러지 저감처리 재활용 기술'은 오폐수처리 전문 기업 에이치엔엠바이오에 이전됐다.

◇국내 최초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영상화 성공

첨단방사선연구소 가속기동위원소연구실 박정훈 박사 연구팀은 동식물의 유전자에서 손상된 DNA를 잘라내고 정상 DNA로 교체해 질병을 억제하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영상화에 성공했다. 유전자 가위와 의료용 방사성동위원소인 지르코늄-89(Zr-89)를 접목해 새로운 바이오 소재를 개발했는데, 지르코늄-89에서 나오는 감마선을 추적해 유전자 가위가 어디로 이동하는지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특정 DNA로 찾아가는 유전자 가위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해 치료 효과를 높일 수 있어 활용도가 높을 것으로 기대된다. 향후 암과 같은 여러 질환의 진단·치료는 물론, 신약 기술 개발이나 연구 등에 활발히 사용될 전망이다.

첨단방사선연구소 핫셀 시설. 한국원자력연구원 제공

◇토양 지키는 친환경 콘크리트 블록

일반 콘크리트 블록은 사용하고 버려질 때 건설 폐기물로 분류돼 환경오염을 야기한다. 원자력연 첨단방사선연구소는 방사선 기술로 친환경 콘크리트 블록을 만들어 상용화에 나섰다.

원자력연의 생분해성 고분자 복합소재 제조 기술로 만든 친환경 콘크리트 블록은 주변 식물의 성장을 도와주며, 재활용하지 않고 버려질 때는 자연분해 되는 장점이 있다.

친환경 콘크리트 블록은 하이드로겔과 바이오매스, 콘크리트 조성물을 최적 비율로 조합해 만들어졌다. 하이드로겔 특성 때문에 식물 재배, 물 저장·흡수가 필요한 장소에 블록을 설치하면 건조한 환경에서도 지속해서 수분과 영양을 공급할 수 있다. 블록은 하천이나 강둑에 식생 옹벽, 호안 등의 형태로 사용할 수 있으며, 주차장 잔디 블록과 스마트팜 등에서도 활용될 수 있다.

연구팀은 이 기술을 콘크리트 제조 기업인 이레콘텍㈜에 이전했다.

방사선 이용 생분해성 고분자 복합소재 제조기술을 활용해 제작한 친환경 콘크리트 블록(왼쪽) 기존 제품과 바이오매스 추가 생산 제품. 한국원자력연구원 제공

◇방사선으로 천연 잔디추출물 '메이신' 함량↑…항염증·소염 제품 개발

메이신은 옥수수 수염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항산화 기능성 성분이다. 생리 활성능력이 뛰어나지만 화학적 합성이 불가능한데다 옥수수 수염과 잔디의 일종인 센티페드그라스에만 극미량이 존재해 희소성 있는 고부가가치 천연물로 알려져 있다.

첨단방사선연구소 정병엽 박사 연구팀은 지난 2012년 세계 최초로 메이신을 센티페드그라스에서 분리·정제해냈다. 뿐만 아니라 방사선을 이용해 극미량의 메이신 함량을 증가시키는 기술로 국내는 물론 해외 주요 국가 특허등록을 마쳤다.

원자력연은 천연 잔디추출물인 메이신 관련 특허 7건을 출자해 제8호 연구소기업 ㈜바이오메이신을 설립했다. 정읍 첨단과학산업단지에 생산 시설을 갖추고 항염증·소염 효과가 있는 제품을 지난 2022년부터 출시하고 있다. 자외선 차단, 미백, 주름개선, 노화방지 등의 기능을 갖춘 고기능성 화장품은 물론 여드름·아토피 개선제, 발모 촉진 기능성 제품, 치주염·충치예방 기능성 제품도 만든다.

한국원자력연구원 제공

◇방사선 이용해 콜레라균 독성 제어 실마리 발견

첨단방사선연구소 가속기동위원소연구실 김민규 박사 연구팀은 콜레라균의 독소 발현과 관련된 단백질 간 결합 구조를 세계 최초로 분석했다.

연구팀은 방사선의 일종인 X-선을 활용했는데, X-선을 원자에 쪼일 때 나오는 회절현상을 분석해 원자 구조를 알아냈다.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선명하게 파악해 단백질 간 결합 방식과 복합체의 구조적 특징을 확인한 것이다. 이는 향후 콜레라균의 독성 제어와 치료제 개발 등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인체에 무해한 라돈 차단용 기능성 도료 개발

밀폐된 공간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실내 공기 중 라돈 농도를 낮추고 제거하는 것은 중요하다. 실내 라돈은 오래된 건축물의 갈라진 틈, 지하수 등을 통해 토양에서 유입되거나 건축 자재에서 발생한다. 실내로 유입된 라돈은 충분한 환기를 통해 외부로 내보낼 수 있지만 겨울철 등 환기가 어려운 상황에서는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첨단방사선연구소 방사선융합기술연구부 박종석 박사 연구팀은 라돈을 광범위하고 효과적으로 차단하면서도 인체에 무해한 라돈 차단용 기능성 도료를 개발했다. 기존 도료의 라돈 차단율은 75% 수준인 반면, 연구팀이 개발한 도료는 고농도 라돈 방출에도 90% 이상의 차단율을 보였다. 페인트와 비슷해 시공이 간단하고 발림성이 좋아, 건물 내 균열 또는 틈새 사이로 유입되는 라돈도 쉽게 막을 수 있다.

원자력연은 항균성 라돈 차단용 조성 물질과 제조 방법 관련 특허 기술 5건을 출자해 친환경 기능성 도료를 생산하는 연구소기업 ㈜해븐코리아를 설립했다.

주한규 한국원자력연구원장은 "국민의 건강과 삶의 질을 높이는 대체 불가 방사선 융합 강점 기술을 지속해서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Copyright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