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 해묵은 직장어린이집법, '일·가정 양립' 중심으로 변화 필요

김태윤 기자 2024. 4. 16.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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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클립아트코리아

출산율이 떨어지고 있는 가운데 저출산 문제의 해법으로 '일 가정 양립'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유자녀 임직원이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도록 다양한 육아 복지 선택지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현행법상 상시 여성 근로자 300명 이상 또는 상시 근로자 500명 이상의 사업장은 '직장어린이집'을 설치해야 한다. 설치가 어려운 경우 사업주 공동으로 직장어린이집을 운영하거나 지역 어린이집 위탁 보육을 통해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지난 3월 정부는 올해부터 중소기업의 '직장어린이집 시설 임차비 지원'을 신설해 연간 소요된 월세의 80%, 최대 3억원까지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직장어린이집 건립이 어려운 중소기업의 설치 부담을 완화해 중소기업 근로자의 직장어린이집 이용 기회를 늘리자는 것이 골자다. 지난해에는 강력한 규제 마련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기도 했다. 직장어린이집 설치 이행강제금을 현행 1억원에서 3억원으로 인상하고, 가중방식도 현행 50%에서 최대 200%까지 4배 인상해 연 최대 18억원까지 이행강제금을 상향하는 등이다.

이와 함께 일각에서는 단순히 직장어린이집 수를 늘리는 지원 확대나 규제 강화보다 맞벌이 부부의 '돌봄 공백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다양한 육아 복지 제도를 법적 의무로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2022년 기준 직장어린이집 설치 의무 이행률은 91.5%로 기업들은 직장어린이집을 설치하거나(74%) 위탁 보육(26%)을 통해 의무를 이행 중이다. 의무 이행률은 이미 5년 전인 2018년부터 90%를 상회하고 있다. 반대로 출생률은 최저점을 경신하고 있어 1991년 제정된 직장어린이집법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저출산 여파… 운영비 느는데 정원충족률 60%대 그쳐
직장어린이집 설치와 운영에서 가장 큰 장벽 중 하나는 사업주가 부담하는 비용 문제다. 2021년 육아정책연구소 실태조사에 따르면 기업 사업주의 설치 부담금은 12억8503만원이다. 월평균 운영비는 1억1466만원으로 연간 약 14억원에 달한다. 문제는 직장어린이집을 설치해도 이용 대상이 해마다 줄고 있다는 것이다. 직장어린이집 대상 기업 중 91.5%가 의무를 이행 중이지만 정원충족률은 64.5%에 불과한 것은 생각해 볼 대목이다.

◇중견기업 A사는 직장어린이집을 설치했으나 정원충족률은 45%로, 3~4세 반은 현재 운영하지 않고 있다. 해당 기업에 재직 중인 한 직원은 "직장어린이집을 짓는다기에 기대가 많았는데 막상 이용하려고 보니 매일 출퇴근 시간에 집과 본사 어린이집을 오가는 것이 엄두가 안 나 집 근처 어린이집에 계속 다니기로 했다"고 말했다.

2021년 맘편한세상의 '직장 어린이집 현황 조사'에 따르면 직장어린이집에 대한 만족도는 대체로 높은 편이지만 이용자의 96%가 불편함을 느낀다고 응답했다. 응답자들은 △어린이집 휴원 혹은 아픈 아이 등원 불가 시 돌봄 공백(49%) △동네 친구 교류 부족(31%) △아이와 함께 출근 준비 시 어려움, 장거리 운전(30%) △연차 휴가, 재택근무 시 등·하원 문제(29%) △야근 ·회식 등의 상황에 사전 조율(27%) △0~7세까지 연령별 반이 모두 개설되지 않음(17%) 등을 불편함의 이유로 꼽았다.

직장어린이집 짓고 싶어도 못 짓는 기업들/ 다양한 근무 형태에 따른 맞춤형 육아 복지 방안 고민할 때
해마다 아이가 줄어드는 초저출산 상황에서 기업들은 획일화된 제도 적용에 어려움 느끼고 있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저출산 현실에 맞춰 다양한 근무 환경에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도록 제도의 인정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서비스기업 C사는 임직원들의 자녀 돌봄을 지원하기 위해 자구책을 논의 중이다. 프로젝트 단위로 업무를 진행하는 만큼 일이 몰리는 특정 시기에 연장 근무 및 주말 근무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특히 전문 인력은 대체 인원을 구하기 어렵고 미숙련 인력으로는 업무 성과가 나지 않아 육아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다.

◇제조기업 D사는 전국에 있는 모든 지역 사업장에 직장어린이집을 지을 수 없어 형평성 문제로 고심 중이다. 사업장마다 상시 근무 인원수가 달라 설치 대상과 비대상이 나뉘는데 같은 기업에 다니고 있음에도 상이한 처우에 직원들이 불만을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례처럼 기업의 업종, 규모, 지역 분포, 근무 형태 등 기업마다 그 환경이 달라 다양한 어려움이 발생하고 있다. 특히 직장어린이집의 경우 설치비와 운영비가 막대하지만 이를 대체할 방법은 현행법상 사업주 공동 어린이집 운영이나 위탁 보육밖에 없는 상황이다. 양육 부담을 완화할 수 있는 관련 법 개정이 요구되는 이유다.

직장어린이집 대체할 수 있는 육아 복지 선택지 확대해야
◇중견기업 E사는 직장어린이집 설치 의무 대상은 아니지만 다양한 육아 복지 제도를 선제적으로 도입했다. 그중 '베이비시터(육아도우미) 서비스 지원'이 높은 만족도를 보인다. 베이비시터가 가정을 방문하는 '돌봄 서비스'와 연계해 기업에서 매월 일부 돌봄 비용을 지원하는 제도다. 아이돌봄 문제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고 기업에서 일부 비용을 지원해 임직원의 경제적 부담 완화에도 도움이 된다는 평가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직장어린이집 이행 의무에 대한 강제성을 강화하기보다는 가족친화 전략을 통해 성장해야 하는 기업과 임직원의 근로 상황에 맞춰야 한다"며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지원 방식을 선택할 수 있도록 제도적 유연성을 허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직장어린이집 설치 의무 대상이 아니더라도 임직원의 '일 가정 양립' 지원 정책에 기업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정부가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예를 들어 '아이돌봄 서비스' 이용을 지원하는 기업에 정부도 함께 지원하고, 우수기업이나 가족친화 인증 등의 평가 항목에 '비의무적 육아서비스 지원'에 대한 가산점을 신설하거나, 가족친화경영 기업에 대한 세제 혜택을 확대하는 등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바뀔 수 있도록 정책적 변화를 이뤄야 한다"고 했다.

김태윤 기자 tyoon80@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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