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총선 참패’에도 국정 운영은 ‘마이웨이’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밝힌 총선 참패에 대한 입장은 ‘국정 방향과 정책은 옳고 정부는 최선을 다했지만 국민에 전달되기에 미흡했다’로 요약된다. 자성과 변화보다 기존 국정운영 정당화에 방점을 찍어 총선 패배에 따른 쇄신 메시지로서의 의미는 사라졌다. 또 협치 대신 국정 방향을 둘러싼 대결의 장을 열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윤 대통령의 이날 국무회의 모두발언은 여권의 4·10 총선 참패 뒤 처음으로 직접 내놓는 대국민 메시지라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사실상 대국민 담화 성격으로, 앞서 밝힌 국정쇄신의 구체적인 방향을 어떻게 제시할지가 관건이었다.
12분가량 진행된 발언에서 전면적, 전향적 쇄신책은 전무했다. 윤 대통령은 대신 그간의 정책을 정당화하는 데 치중했다. 총선 참패의 원인은 윤석열 정부가 추진한 정책의 효과를 국민이 체감하지 못한 데서 찾았다. 발언 중 “국정 방향이 옳고 좋은 정책을 수없이 추진해도”, “올바른 국정 방향을 잡고 실천에 최선을 다했음에도”라며 여러 차례 정부 방향이 옳았다고 강조했다.
세부 분야별 진단도 마찬가지다. 윤 대통령은 물가 문제는 “총력을 다했다”면서 “미래세대를 위해 건전 재정을 지키고 과도한 재정 중독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세심하게 살피지 못한 부분이 많다”고 밝혔다. 부동산 문제는 “부동산 시장을 정상화하고 천정부지로 치솟았던 집값을 낮췄다”며 “그러나 세밀하게 살피지 못했다”고 했다. 탈원전 정책으로 “망가진 원전 생태계”를 살렸지만 중소기업 등에 전달이 미흡했고, “청년 자산 형성과 내 집 마련 지원을 엄청나게 늘리긴 했지만” 청년들이 변화를 체감하지 못한다고 짚었다.
윤 대통령은 의대 증원 문제를 둘러싼 의·정 갈등 해결 방향도 제시하지 않았다. 그는 “노동·교육·연금 3대 개혁과 의료 개혁을 추진하되, 합리적인 의견을 더 챙겨 듣겠다”고만 밝혔다. 의료계가 과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대안을 제시하면 논의할 수 있다던 기존 입장의 반복이다. 의대 2000명 증원을 두고 전공의들이 현장을 이탈한 상황이고, 사직서를 제출한 의대교수들이 오는 25일이면 병원을 떠날 수 있어서 갈등 해결 시한은 다가오고 있다.
윤 대통령 입장은 기존 국정 기조를 그대로 지키면서 국민 체감을 높이는 소통 강화, 속도전에 나서겠다는 게 골자다. 야당에 압도적 힘을 실은 총선 민심은 정치권 안팎에서 정권심판이자 국정 대전환 요구로 해석됐다. 이에 대해 윤 대통령은 ‘국정 고수’라는 답을 내놓은 셈이다. 윤 대통령은 비공개 국무회의와 참모진 회의에서 “선거 결과는 한편으로는 정부의 국정운영이 국민들로부터 매서운 평가를 받은 것”이라며 “매서운 평가의 본질은 더 소통을 하라는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국정 기조, 국정 방향은 지난 대선을 통해 응축된 우리 국민의 총체적인 의견”이라며 “그 뜻을 받아 윤석열 정부가 집권했고 국정을 운영하는 것이므로 선거 때문에 국정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꾸면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총선을 통해 분열된 민심을 아우르는 통합 메시지도 없었다. 윤 대통령 발언에서 ‘협치’와 ‘통합’, ‘야당’이란 단어는 아예 등장하지 않았다. 총선 참패로 임기 내내 입법 주도권을 야당이 쥐는 상황을 고려해 여당 내에서도 적극적인 협치 주문이 나왔지만 이날 메시지에선 빠졌다. 대신 윤 대통령은 국무위원들에게 국회와의 긴밀한 협력을 당부하는 원칙적인 발언을 내놨다. 공식 연설마다 통합과 협치 메시지에 인색했던 기존 기조가 그대로 유지됐다.
야당이 추진하는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 사건 수사외압 의혹과 김건희 여사 범죄 의혹 관련 특별검사 도입 법안 등에 대한 입장은 담기지 않았다. 총선 국면에서 대표적인 ‘용산발’ 악재로 꼽힌 이종섭 전 호주대사 도피 출국 의혹 등에 대한 입장도 포함되지 않았다. 조만간 이어질 인적쇄신에 대한 원칙도 빠졌다.
유정인 기자 jeong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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