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꼬리 지분율' 총수 통제책 두고 갑론을박 [마켓톡톡]

한정연 기자 2024. 4. 16.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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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일성
“우수 지배구조 기업에 인센티브”
총수 겨냥한 평가 가이드라인 나와
재계 벌써부터 반발하고 나서

한국경제인협회와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같은 날 다른 행사에서 '기업지배구조 우수기업 인센티브 제도'를 놓고 정반대의 의견을 내놓았다. 아직 정해지지도 않은 평가 기준이 문제였다. 어떤 기준이기에 재계가 미리 반발하고 나선 걸까.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살펴봤다.

이복현 금감원장이 15일 제40차 금융산업위원회에 참석해 '자본시장 대전환과 우리 기업·자본시장의 도약을 위한 발걸음'이란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15일 대한상공회의소가 개최한 한 행사에서 '자본시장 대전환과 우리 기업·자본시장의 도약을 향한 발걸음'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이 원장은 "기업과 정부가 함께 기업 가치를 높이고 자본시장에 대한 국민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지배구조가 우수한 기업에는 감사인 지정제도의 적용을 면제하는 등 인센티브를 통해 기업 부담을 경감하겠다"고 말했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는 같은 날 '지배구조, 기업 밸류업 인센티브 기준으로 타당한가'란 주제로 전문가 좌담회를 열었다. 정철 한경협 연구총괄대표 겸 한국경제연구원장은 "기업 지배구조는 각 기업이 처한 상황에 따라 기업의 특성에 맞춰 자율적으로 구성하는 것이 최선"이라며 이복현 원장의 의견에 반론을 제기했다.

토론자로 참석한 학자들도 비슷한 의견을 잇달아 냈다. 권재열 경희대 교수는 "기업별로 상황이 다른데 획일적인 지배구조를 인센티브 기준으로 제시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어떤 인센티브이기에 한경협이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을 사실상 저격하고 나선 걸까. 정부가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 차원에서 지배구조 우수 기업에 주는 인센티브는 감사인 주기적 지정제도 면제다. 기업이 6년 동안 감사인을 자유 선임하면 다음 3년 동안은 증권선물위원회가 직접 감사인을 지정하도록 했는데, 우수 지배구조 기업에는 이를 일정 기간 면제해준다는 얘기다.

재계가 금융당국에 반발하는 이유는 인센티브보다는 이를 부여하는 평가 기준에 있다. 이복현 원장은 이날 지배구조 우수기업의 가이드라인이 되는 내용을 일부 공개했다. 이 원장은 "주주 친화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인적분할시 자사주에 신주 배정을 금지하는 등 최대주주의 자사주 활용 방지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적분할은 존속회사 주주들이 기존의 지분 비율대로 새로운 회사의 주식을 나눠 갖는 것으로 재벌총수 등 지배주주가 현물출자와 자사주의 지분을 활용해 신설회사 지분을 뻥튀기하는 수단으로 사용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자료 | 공정거래위원회, 참고 | 친족 지분 포함]

지배구조 우수기업을 평가하는 기준은 기업지배구조의 정점인 재벌 총수를 정조준할 수밖에 없다. 지배구조 평가 방법이 개선된다면 이 잣대를 이후에 어디에서든 활용할 수 있다. 물론 금융당국이 평가 가이드라인을 직접 밝히진 않았다.

다만 김우진 서울대 경영대 교수, 정준혁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지난 2월 28일 한국재무학회·한국공인회계사회의 '기업지배구조 개선 평가 가이드라인' 세미나에서 발표한 내용이 그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얘기가 있다.

어떤 내용일까. 예상대로 소수 지배주주, 이를테면 기업집단의 재벌 총수를 다룬 내용이다. 발표자들은 우리나라에서 일감 몰아주기로 가업승계에 나선 기업, 경영자가 이사회를 와해시킨 기업이 지배구조 우수기업에 선정됐던 사례를 먼저 지적했다.

발표자들은 "한국 대기업은 가족 중심의 경영권 승계가 이뤄지고 과반수에 미치지 못하는 소수 지분만으로 회사를 지배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지배주주와 일반주주의 이해관계가 일치하지 않아 소수 지배주주(총수)가 지배권의 사적이익을 추구할 유인이 크다"고 지적했다.

기업지배구조 우수성을 평가할 때 총수의 사적이익을 감시할 수 있는 제도에 좋은 평가를 주자는 게 핵심 내용이다. 첫째, 재벌 총수의 현금흐름권이 높을수록 좋은 평가를 받는다. 예를 들어 대기업집단의 총수가 지주회사 지분을 30% 소유하고, 지주회사가 자회사 지분을 30%, 자회사가 손자회사 지분을 30% 보유한 상황을 가정해보자. 이 경우 총수에게는 손자회사에서 발생하는 현금흐름 중 2.7%만이 귀속된다. 총수와 손자회사의 일반주주가 배당을 놓고 이익이 달라진다. 그러면 총수는 전체 주주의 이익을 추구하기보다 자기거래 등을 통해서 자신의 이익을 챙길 유인이 더 크다.

총수가 소유한 개인회사도 사적 이익 추구의 유인이 될 수 있다. 총수의 개인회사가 대기업집단 소속 상장기업과 따로 존재하면 문제가 없지만, 이들 개인회사 대부분은 계열사와 수많은 거래를 한다. 총수의 개인회사는 일감 몰아주기, 불공정 합병비율 등 부당지원행위가 발생하는 원인이다.

둘째, 이사회에 집중투표제를 도입하면 지배구조가 우수한 것으로 평가한다. 집중투표제는 이사회에서 이사를 2인 이상 뽑을 때 표를 한명에게 몰아주는 제도다. 집중투표제를 시행하면 총수가 이사회 이사 전체를 다 자신이 선호하는 인물로 뽑을 수 없다. 그래서 일반주주가 지배주주인 총수를 견제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지난해 집중투표제를 도입한 우리나라 기업은 3.5%에 불과했다.

참여연대가 개최한 '재벌총수 범죄 봐주기 흑역사, 더이상 안 된다' 좌담회 모습. [사진=뉴시스]

셋째,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회사가 특별한 경영상 목적 없이 각종 부를 총수 일가에 이전하거나 일가의 지분을 높이기 위한 거래를 하면 지배구조 평가에서 좋지 않은 평가를 받는다.

총수 지분율이 낮은 계열사의 알짜 사업을 총수 지분율이 높은 기업으로 이전하는 터널링도 감점 요인이다. 총수 일가의 보수 수준, 총수 일가의 승진 타당성, 총수 자녀의 대표이사 임명 여부 등을 지배구조 평가항목에 명시하는 방안도 있었다.

정부가 추진해온 밸류업 프로그램에서 기업지배구조 우수성 평가 잣대로 이런 내용을 활용한다면 상장사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재벌 총수의 지나치게 낮은 지분율이었기 때문이다. 낮은 지분율을 소유한 총수 일가의 이해관계는 앞서 언급했듯 배당이나 사업 구조 재편을 놓고 일반주주나 회사의 이해관계와 일치하기 힘들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공시대상기업집단 주식소유현황'을 보면 지난해 대기업집단 82개 중에서 총수가 지정된 72개 집단의 총수 일가 지분율은 3.6%였다. 동일인(총수) 지분율은 1.7%에 불과했다. 총수 일가 지분율은 2019년 3.9%에서 2023년 3.6%로 오히려 떨어졌다. 새롭게 재벌로 편입한 카카오의 총수 지분은 0.51%, 두나무의 총수 지분은 0.21%에 불과했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ayhan0903@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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