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는 ‘70조’ 살포하는데 한국은 이제야 보조금 검토…반도체 패권 어디로

허인회 기자 2024. 4. 1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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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정부, 삼성전자 ‘9조원’ 보조금 지원 결정
美생산기지 거점 삼아 파운드리 점유율 확대 복안
직접지원 난색 한국, 최근에야 검토…현실성은?

(시사저널=허인회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반도체 현안 점검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미국 정부가 경제 안보를 위해 삼성전자에 9조원에 가까운 반도체 보조금 지원을 결정했다. 미국은 전 세계 반도체 기업을 미국 영토로 끌어들이기 위해 5년 동안 70조원에 가까운 인센티브를 제공할 예정이다.

반면 한국은 용수, 전기 등 인프라 구축과 세액공제 등 간접 지원에만 치중하다 이제야 직접지원인 보조금 지급 검토에 나선 모양새다. 반도체 패권을 둘러싸고 전 세계가 보조금 지급에 열을 올리는 가운데 한국만 동떨어진 인식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삼성전자 "50년의 꿈에 중요한 이정표 세워"

16일 재계에 따르면, 전날 미국 상무부는 '반도체 및 과학법(칩스법)'을 근거로 삼성전자에 64억 달러(약8조9000억원)의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9조원에 가까운 보조금을 받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기존 투자 규모를 대폭 확대한 것이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앞서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에 170억 달러(약 23조원)를 투자해 반도체 공장을 지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에 더해 공장 규모와 투자 대상을 확대, 2030년까지 총 450억 달러(약62조3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기존 투자 규모에 2배가 넘는 수준이다.

미국 정부는 흡족한 모습이다. 보조금 지원 결정 이후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삼성의 미국 내 투자 발표는 나의 '인베스트 인 아메리카' 의제와 한·미 동맹이 미국 모든 지역에 기회를 어떻게 창출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또 다른 본보기"라고 밝혔다.

지나 러몬도 상무부 장관은 "삼성전자는 사상 처음으로 미국 텍사스에서 핵심 연구개발, 미래 지원, 대규모 제조 및 첨단 패키징을 모두 수행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15일(현지 시각) 미국 텍사스 오스틴 삼성전자 공장에서 열린 미 정부 반도체보조금 지원 발표 기념식 ⓒ삼성 오스틴 반도체(Samsung Austin Semiconductor) 엑스(X) 계정 게시물

삼성전자 측도 기대감을 표했다. 경계현 삼성전자 DS부문장 사장은 16일 링크드인에 올린 글에서 "반세기 전 한국에서 삼성 반도체는 지구상 가장 작고 발전된 컴퓨터 칩을 만들어 세상을 잇겠다는 목표로 설립됐고, 오늘 그 50년의 꿈에 중요한 이정표를 세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테일러의 최첨단 제조 시설은 완공되면 우리를 미국 파트너 및 고객과 더욱 가깝게 연결하고, 미국 칩 공급망을 안정화하면서 새로운 일자리 수천 개를 창출할 것"이라며 "설계부터 완성까지 미국에서 하는 최첨단 제품을 고객에게 제공할 수 있게 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60조원이 넘는 미국 투자를 통해 대규모 공장을 비롯해 연구개발(R&D) 센터까지 지을 계획인 만큼 반도체 생산기지를 한국과 미국으로 양분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에서 TSMC에 절대 열세에 놓인 삼성전자로선 판도를 뒤흔들 승부수를 던졌다는 분석이다. 아울러 이 같은 삼성전자의 선택은 반도체를 경제 안보의 축으로 삼고 각국의 반도체 기업을 유치하려는 미국의 전략과 맞물렸다는 평가다.

삼성전자가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건설 중인 파운드리 공장 부지 ⓒ삼성전자 제공

"검토 중"→ "결정된 바 없다"→ "전면 재점검"

한국 역시 'K-칩스법'을 통해 반도체 기업을 지원하고 있다. 지원 방식은 반도체 대기업이 설비투자를 하면 최대 15%(중소기업은 25%)를 세액공제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식이다. 하지만 세액공제 특성상 공장 가동 이후 수익이 나야 감면을 받을 수 있다. 투자 시점부터 직접 보조금을 지급하는 미국보다 유인 정도는 낮은 셈이다. 이마저도 올해로 일몰 예정이다. 정치권은 총선 과정에서 K-칩스법 연장을 공약했지만 기업 입장에선 속이 타는 상황이다.

그간 기업들은 꾸준히 직접 지원, 보조금 지급을 요구해왔지만 정부는 미온적인 입장을 유지했다. 하지만 미국을 비롯해 일본, 대만 등 반도체 경쟁 국가에서의 보조금 지급이 현실화하자 이제야 검토하는 모습이다.

지난달 27일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가첨단전략산업위원회' 5차 회의에서 정부가 "반도체 특화단지 입주 기업에 대한 투자 인센티브 제도 확충 방안도 지속 검토해나간다"고 밝혀서다. 하지만 정부 내부에서 정리가 되지 않는 모습도 보였다. 지난 4일 기획재정부가 "첨단전략산업에 대한 인센티브 확대 방안은 종합적으로 검토 중"이라면서 "반도체 투자 보조금 관련 내용은 결정된 바 없다"는 입장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부처간 교통 정리가 되지 않자 결국 윤석열 대통령까지 나섰다. 윤 대통령은 지난 9일 직접 주재한 '반도체 현안 점검회의'에서 "반도체 경쟁이 산업 전쟁이자 국가 총력전"이라고 강조하며 "전시 상황에 맞먹는 수준의 총력 대응 체계를 갖추기 위해 투자 인센티브부터 전면 재점검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보조금 지급이 현실화되기까진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 업계의 관측이다. 업계 관계자는 "예산을 쥔 기재부가 '건전재정' 기조를 유지하고 있고, 설령 지급을 결정한다고 해도 경쟁국과 같은 규모가 아니라면 크게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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