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던 尹 장점은 다 어디로 갔나[핫이슈]

김병호 기자(jerome@mk.co.kr) 2024. 4. 16.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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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제17회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4.04.16.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이승환기자
여당의 총선 패배 과정을 복기해보면 지난 1월 어느 일요일 저녁, 윤석열 대통령이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내친다는 얘기가 나왔을 때 낌새가 안 좋았다. ‘윤 대통령의 배포가 저 정도였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황당한 사건에 다들 고개를 저었고, 이러다간 총선이 어렵다고 봤을 것이다. 다행히 한 위원장은 자신을 발탁한 최고통치권자 앞에서 공손했다. 야당 의원한테 하듯 ‘이게 총선 앞두고 뭔짓인가’ 하는 푸념이 목까지 차올랐겠지만 그는 참았다.

그리고는 이틀 뒤 화재가 난 충남 서천시장에서 눈발이 내리는 가운데 점퍼만 걸치고 상념에 잠긴 채 윤 대통령을 기다렸다. 당정 분열이 최고조에 달한 이 장면을 두고 본인은 ‘카노사의 굴욕(Humiliation of Canossa)’이라는 표현을 썼다. 현 상황이 약 950년 전 역사처럼 흘러가는 듯 싶었기 때문이다. 실제 한 위원장은 어려운 만남을 겪고나서 윤 대통령 신임을 회복했고, 이후 민주당의 ‘뻘짓’ 속에 여당 지지율이 상승했다. 굴욕 당한 하인리히 4세가 자신에 모욕을 준 교황을 내치고 신권(神權)까지 장악했듯이 한 위원장도 총선 승리와 그 너머의 길을 가는 듯했다.

이후 총선 사령탑인 한 위원장에게 관심이 집중된 반면 윤 대통령은 사고치는 일에 주로 나타났다. 황상무 시민사회수석과 이종섭 주호주 대사 사퇴, 대파 가격 논란, 의대 증원 건이다. 이는 윤 대통령만이 아니라 결국 총선에서 한 위원장 발목을 잡았다. 물론 한 위원장이 정책 비전 대신 야당 공세만 앞세우고, 일부 공천 잡음, 싸움닭 언행 같은 자체 실책도 있었다.

尹 대선 전 강점 사라져 패착
여당 총선 패배 원인 중 하나는 우리가 대선 전 알던 윤 대통령 모습이 이번엔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상대방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늘 당당하고 공평무사할 것 같던 모습이 어느 순간 사라졌다. 그는 모시던 문재인 대통령을 거슬러 조국 법무부장관 일가를 수사하고, 상관인 추미애 법무부장관에 맞서서도 기죽지 않았다. 그가 대통령이 되면 국민을 갈라치기했던 민주당을 심판해서 나라 기강을 바로잡고 잘못을 돌려놓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그는 대선 후보일 때도 이준석 당시 국민의힘 대표와 티격태격했고, 김종인 고문도 떠나보냈다. 포용력이 크지 않다는 점을 그때 새로 알았다. 굳건한 신념을 뒤집어 보면 고집도 그만큼 셀 것이다. 시장에서 음식을 사먹는 소탈함이 그의 진면목이었지만 대기업 총수들까지 대동한 모습은 골목대장 같은 권위로도 읽혀졌다. 물론 윤 대통령 본심은 그게 아니었겠지만 국민 정서는 부정적이 되면 얼마든지 왜곡해 볼 수 있다.

대통령 당선 후 도어스테핑을 시행하다가 곧 포기했고 이를 계기로 기자회견도 사라젔다. 박근혜·문재인 대통령에 비해 능란한 말발로 국민과 소통하며 설득할 능력이 있었지만 부인 관련 일들 때문인지 그런 장점을 쓰지 못했다. 본인 주장에 일리가 있다고 해도 많은 국민이 고개를 갸우뚱할 일은 안 하는 게 나은데도 이를 회피할 정무적 감각이 없었다. 옆에서 쓴소리를 해줄 인사도 없었던 모양이다. 검찰 생리대로 그는 밀어붙이면 될 줄 알았을지 모른다.

의대 2000명 증원 이젠 접어야
해결이 난망한 의대 증원 문제는 남은 시험대다. 총선에서 패배한 마당에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것은 3년 남은 임기를 막 가자는 것과 같다. 여소야대 와중에 많은 국민이 반대로 돌아선 의대 이슈를 놓고 예전 2000명 증원 주장을 관철시키긴 힘들다. 2000명 증원 포기로 국가의 영이 서지 않는다고 해도 상대방과 충분한 논의가 먼저다. 총선 전 그것을 간과하고 밀어붙였다가 많은 표를 잃었다. 교육과 국민 생명과 직결된 국가 정책이 이렇게 우당탕 결정돼서는 안된다. 정부와 의사단체, 민주당까지 협의체 결성을 주장하지만 아직 구성이 요원한데 거기서 합의가 언제 도출될지 예단하기 어렵다. 2000명 증원에 반대하는 의대 교수들이 의욕도 없이 제대로 가르칠 것으로 기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교육시설 문제는 교수가 증원에 동의한 다음 얘기다. 2000명 건이 관철되더라도 의료 교육의 질 저하는 불문가지다. 정부 체면(?)을 위해 억지로 뽑아놓고 부실하게 교육 받은 의사들이 미래 국민 생명을 다루게 하는 게 올바른 길인가. 윤 대통령은 이젠 의대 문제에서 집착을 버려야 한다. 과거 칼럼에 썼듯이 정부가 의사들 면허정지를 보류할 때부터 정부는 기우는 모양새였다. 의사들을 두둔하지 않지만 다른 것도 아닌 국민 생명과 직결된 일을 상대 의견을 배제한 채 뚝딱해서 처리해선 안된다.
여소야대 속 살길은 높은 국민 지지뿐
윤 대통령은 이제 어떤 대통령으로 남을지 고민해야 한다. 과거 문 전 대통령이 과한 정책과 황당한 답변으로 국민 스트레스를 키웠을 때 본인은 “임기 후 역사에 어떤 평가를 받는 대통령으로 남게될지 고민해 국정을 돌보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지금 윤 대통령한테도 똑같다. 임기를 마칠 때까지 여소야대 국회 속에서 그는 전임자보다 상황이 더 나쁘다.

옆에 쓴소리하는 참모를 두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것으로 본인이 얼마나 바뀔지 미지수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뿐이다. 국민과 직접 소통해 국민 공감을 이끌어내는 방법밖에 없다. 야당 공세 수위가 더 높아질텐데 이것 역시 높은 국민 지지를 얻어 돌파해야 한다. 그래서 윤 대통령은 더 자주 국민 앞에 나와야 한다. 선거 때 각본이 짜여진듯한 민생토론회 같은 것 말고 대통령의 진솔한 뜻을 전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한 방법은 윤 대통령 입장을 전달해줄 기자들과의 스킨쉽이고, 기자회견 활성화, 도어스테핑 부활 등이 될 수 있다. 야당 주도의 국회 독선이 더 심각해질 상황에서 돌파구는 국민을 내편으로 만드는 수밖에 없다.

과거 윤 대통령이 호감을 샀던 장점들을 살려나갔으면 한다. 소탈함과 솔직함, 당당함, 위트와 거침없는 말솜씨...거기에다 자기 반성과 경청을 더해야 한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지난 12일 “적어도 국민 앞에 털털하고 솔직하고 과단성 있을 줄 알았던 대통령이 무슨 일이 생기면 하릴없이 숨어서 뭉개고 있다”고 했다. 그동안 윤 대통령은 본인 장점을 너무 잊고 지냈다.

김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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