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가 등 돌려도, 사직서 내고도 병원 남았다…'필수과 의사'의 속마음
최근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이 SNS를 통해 수련병원 교수들을 "착취의 사슬에서 중간관리자 역할을 해왔다"고 간접적으로 비판하며 의료 현장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교육·수련을 명분으로 전공의의 노동력을 착취해 병원의 배를 불리는 데 일조했다는 비난이 일며 병원에 남은 교수들마저 세간의 비난에 직면했다. 이미 사직서 제출, 진료 시간 단축에 나선 의대 교수들이 전공의와 갈등으로 심경의 변화가 일 경우 의료공백이 더 심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고개를 든다.
의대 교수들은 어떤 마음으로 병원을 지키고 있을까. 박 비대위원장이 SNS에 '착취의 중간관리자' 글을 공유한 지난 12일, 소아 심장을 다루는 김웅환 서울대병원 소아흉부외과 교수는 '서울의대 교수 비대위' 유튜브 채널에 전공의들의 행동을 두둔하는 내용의 영상을 올렸다.
그는 "지금까지 교수들이 (사직서 제출 등) 집단으로 행동한 것은 전례가 없었다"며 "후배들에게는 이걸(현재 의료시스템) 물려주고 싶지 않다"고 운을 뗐다. 김 교수는 "저는 의사라는 자부심이 있고 필수 의료를 하는 소명 의식이 있지만 다음 세대에는 그것만 가지고 필수 의료를 하라고는 안 되는 거다"며 "평생 외롭고 힘들고 이런 과(흉부외과)를 하겠다는 후배가 오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정부가 자부심마저 짓밟은 지금 후배들에게 하라고 이야기할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김 교수는 의대 증원으로 늘어난 의사가 필수 의료 분야로 넘어오는 소위 '낙수효과'는 기대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지금의 의료 시스템에선 의사가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많은데, 소송 등 위험 부담을 감수하며 굳이 필수 의료를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그의 얘기다. 김 교수는 "지금 하는 수술의 50%는 수술료가 없다. 새로운 수술이 나오고 점점 수술이 어려워지지만 정부는 (수가를) 조금씩만 올린다"며 "할수록 적자라 안 해야 한다"고 자조했다. 그런데도 그는 "말 못하는 애들을 위해서 싸워주고 건 의사밖에 없다"면서 "국립대병원 중 제대로 된 어린이병원은 서울대병원뿐이다. 사립대병원까지 서로 나서 어린이병원을 만들도록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정부의 실효성 있는 지원책 마련을 촉구했다.
혈액암 환자를 보는 신동엽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이달 초 올린 영상에서 "개인적으로 죽을 맛"이라며 "굉장히 힘든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전공의가 하던 일이 모두 교수에게 넘어오며 기본 모니터링, 밤샘 당직 등을 떠맡는 동시에 외래, 병동 환자 진료를 유지하는 게 버겁다고 그는 말했다.
신 교수는 사직서를 제출했지만 "내가 안 보면 돌아가실 확률이 높은 대부분의 환자"를 위해 "천벌 받을 짓은 할 수 없다"며 병원을 지키고, 앞으로도 지킬 생각이라고 했다. 수많은 고민 끝에 사직서를 제출한 것은 전공의 때문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신 교수는 "지금 중요한 것은 목소리를 내서 나간 전공의가 돌아오게 하고 정부와 얘기하는 것"이라며 "시위성 성격에 동참하게 됐다"고 했다. 다만 그는 "환자를 볼 때 내 앞에 있는 환자가 1번이다. 끝까지 부여잡고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많은 의사가 생각한다"면서도 "사태가 해결되지 않으면 3개월은 버틸 텐데 그다음 나가떨어질 것 같다"는 위기의식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승미 산부인과 교수 역시 "필수 과나 응급과는 최소한의 의료진이 필요하다. 그것 때문에 교수직도 사직서를 냈지만 현장을 못 떠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가 담당하는 산과는 전임의가 올해 10명 내외에 머무는 등 무서운 속도로 '붕괴'하고 있다. 저수가와 365일 당직 콜을 받아야 하는 압박감, 몇십억원에 달하는 의료사고 보상금 등이 복합적으로 얽힌 결과라고 이 교수는 설명했다. 그는 "분쟁 속에서 어떻게 하면 환자를 지킬지 굉장히 고민하고 있다. 그러나 교수진 15~16명이 2~3명씩 돌아가며 당직을 서다 보니 다들 굉장히 지친 상태"라며 "이 상황이 장기화하면 몸이 아파서 (진료를) 못 하는 상황이 올 것이라 생각한다"고 의정 갈등의 조속한 해결을 주문했다.
박정렬 기자 parkj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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