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참패' 고개 숙인 윤석열 대통령 "국민들께 죄송" 사과
윤석열 대통령이 4·10 총선 참패와 관련해 "국민들께 죄송하다"며 몸을 한껏 낮췄다.
윤 대통령은 16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주재한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올바른 국정의 방향을 잡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국민들께서 체감하실 만큼의 변화를 만드는 데 모자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총선 이후 윤 대통령이 직접 선거 결과에 대해 언급한 것은 이날이 처음이다.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지난 2년 동안 국민만 바라보며 국익을 위한 길을 걸어왔지만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며 "국정의 최우선은 첫째도 민생, 둘째도 민생, 셋째도 민생이다. 어려운 국민을 돕고 민생을 챙기는 것이 바로 정부의 존재 이유"라고 밝혔다.
이어 "그런 측면에서 이번 총선을 통해 나타난 민심을 우리 모두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며 "더 낮은 자세와 유연한 태도로 보다 많이 소통하고 저부터 민심을 경청하겠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큰 틀에서 국민을 위한 정책이라 해도 세심한 영역에서 부족했다고 생각한다"며 "무엇보다 어려운 서민들의 삶을 훨씬 더 세밀하게 챙겼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예산과 정책에 집중해서 물가 관리에 총력을 다했다. 그러나 어려운 서민들의 형편을 개선하는 데 미처 힘이 닿지 못했다"며 "미래세대를 위해 건전재정을 지키고 과도한 재정 중독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세심하게 살피지 못한 부분이 많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이자 환급을 비롯해서 국민 부담을 줄여드리기 위해 애썼다"며 "그렇지만 근본적인 고금리로 고통받는 민생에 충분한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 "부동산 3법의 폐해를 바로잡기 위해 주택 공급을 활성화하고 재개발, 재건축 규제도 완화해서 부동산 시장을 정상화하고 천정부지로 치솟았던 집값을 낮췄다"며 "그러나 집을 소유하기 어려운 분들과 세입자들, 개발과 재건축으로 이주하셔야 하는 분들, 그분들의 불안까지 세밀하게 살피지 못했다"고 반성했다.
이외에도 정부의 주식 시장 활성화, 수출 드라이브, 원전 생태계 복원, 청년 자산 형성 지원, 사교육 카르텔 혁파, 늘봄학교 정책 등을 언급하며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보완해야 할 부분이 많이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윤 대통령은 "정책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정책과 현장의 시차를 극복하는데 부족함이 많았다고 생각한다"며 "결국 아무리 국정의 방향이 옳고 좋은 정책을 수없이 추진한다고 해도 국민들께서 실제 변화를 느끼지 못한다면 정부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민께서 바라시는 변화가 무엇인지, 어떤 것이 국민과 나라를 위한 길인지 더 깊이 고민하고 살피겠다"며 "민생을 위한 것이라면 어떠한 일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비공개로 진행된 국무회의 마무리발언과 국무회의 종료 직후 청사에서 연 참모들과의 회의에서는 보다 구체적인 사과 표현이 나왔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이날 마무리발언에서 "국민들께 죄송하다"며 "대통령인 저부터 국민의 뜻을 잘 살피고 받들지 못해서 죄송하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특히 '소통'을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국민을 위해서 못할 게 뭐가 있겠나. 대통령인 저부터 잘못했고 앞으로 대통령인 저부터 소통을 더 많이 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 고위 관계자는 윤 대통령의 해당 발언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영수회담 등 야권과의 만남에 모두 응할 수 있다는 뜻을 담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장관들과 공직자들도 국민과의 소통을 비롯해 소통을 더 강화해달라"며 "소통이라는 것이 단순히 몇 번 만나서 민생 문제를 개략적으로 듣고 확인하는 게 아니라 국민들의 다양한 니즈(필요)와 요구, 애로사항을 세밀히 파악하고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미인데, 정부 정책은 보편성을 가져야 하기 때문에 모든 국민들을 일일이 충족시킬 수 없을진 모르지만 그런 경우도 왜 이 문제 해결이 어려운지 앞으로 어떻게 대안을 마련할지를 다 설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선거 결과는 한편으로는 당의 선거운동이 평가를 받은 것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정부의 국정운영이 국민들로부터 매서운 평가를 받은 것"이라며 "매서운 평가의 본질은 더 소통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어린 시절 잘못해서 어머니한테 회초리를 맞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회초리를 맞으면 아프니까 그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손을 모아 빌면서 용서를 구할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매를 맞으면서 내가 뭘 잘못했고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반성한다면 그 사랑의 회초리의 의미가 더 커질 것"이라며 "결국 국민을 위한 정치를 얼마나, 어떻게 잘 해야할지가 국민들로부터 회초리를 맞으면서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점"이라고 했다.
다만 윤석열 정부가 추진 중인 3대 개혁과 의료 개혁 등 큰 틀에서의 국정 목표에는 변화를 주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 고위 관계자는 "국정의 방향은 옳다, 다만 국정을 운영하는 스타일, 소통 방식 이런 데 문제가 있지 않나라는 게 굉장히 다수 내지는 절대다수의 의견인 것 같다"며 "국정 기조나 국정 방향은 지난 대선을 통해 응축된 우리 국민의 총체적인 의견"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 뜻을 받아서 윤석열 정부가 집권을 했고 그 뜻에 따라서 국정을 운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단순한 사건이나 선거 때문에 국정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꾼다는 것은 국민에 대한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 게 될 수 있다"며 "우리가 지금 추진해 왔던 각종 기조나 원칙, 이 방향은 가져가되 그동안 제기돼 왔던 여러 기술적인 문제나 소통의 문제, 입법의 문제 이런 부분을 저희가 잘 조화해 나가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도 이날 모두발언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구조 개혁은 멈출 수 없다"며 "노동, 교육, 연금 3대개혁과 의료개혁을 계속 추진하되 합리적 의견은 더 챙기고 귀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또 민주당의 '민생회복지원금' 등 현금 지원 정책을 겨냥한 듯 "무분별한 현금 지원과 포퓰리즘은 나라의 미래를 망치는 것"이라며 "경제적 포퓰리즘은 정치적 집단주의와 전체주의와 상통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은 우리 미래에 비춰보면 마약과 같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안채원 기자 chae1@mt.co.kr 박종진 기자 free2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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