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로 뛰어든 시민과 눈 마주친 기관사…반복되는 ‘철도 비극’

정윤경 기자 2024. 4. 16.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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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차 기관사 정아무개(29)씨는 1년 전 4월14일을 잊지 못한다.

이날 정 기관사는 수도권 지하철 1호선 진위역에서 송탄역으로 향하는 열차를 운행하고 있었다.

정씨는 "사고 당시 시민이 열차 밑으로 빨려 들어간 것밖에 기억이 안 난다"고 말했다.

사고 수습으로 열차가 지연돼 시민들이 겪는 불편함도 있지만, 사고의 전 과정을 눈앞에서 목격하고 패닉 상태에 빠져도 운전대를 놓을 수 없는 기관사들의 '트라우마' 또한 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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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차 기관사 “선로에 투신한 시민, 살리지 못했다는 죄책감”
인명사고 겪은 기관사, 특별휴가 5일에 심리상담 지원이 전부

(시사저널=정윤경 기자)

4월15일 오전 전철 1호선 의왕역~당정역 사이에서 인명사고가 발생했다. 사진은 1호선 명학역 열차 운행 중지를 알리는 입간판 ⓒ연합뉴스

6년 차 기관사 정아무개(29)씨는 1년 전 4월14일을 잊지 못한다. 이날 정 기관사는 수도권 지하철 1호선 진위역에서 송탄역으로 향하는 열차를 운행하고 있었다. 90㎞/h 속도로 역사(驛舍)에 진입하던 정씨 앞에, 갑자기 나무 뒤에 숨어있던 한 시민이 뛰쳐나와 선로 안으로 투신했다. 시민과 눈이 마주친 정씨는 깜짝 놀라 급제동을 시도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열차와 충돌한 시민은 결국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정 기관사는 사고에 대한 후유증으로 사건 당일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정씨는 "사고 당시 시민이 열차 밑으로 빨려 들어간 것밖에 기억이 안 난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어떻게 대처했는지 사건 직후 보게 된 CCTV를 통해 알게 됐다고 했다. CCTV 속 정 기관사는 블랙아웃(black out·잠시 의식을 잃은 상태)에 빠진 상황에서 운전대를 부여잡고 승객을 안전한 장소에 하차시킨 뒤 무전기로 도움을 요청했다.

선로에 무단 진입한 시민이 운행 중인 열차와 충돌해 숨지는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사고 수습으로 열차가 지연돼 시민들이 겪는 불편함도 있지만, 사고의 전 과정을 눈앞에서 목격하고 패닉 상태에 빠져도 운전대를 놓을 수 없는 기관사들의 '트라우마' 또한 상당하다. 16일 정 기관사는 시사저널과 통화에서 "선로에 뛰어든 시민을 조금 더 일찍 발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망자 가족에 대한 미안함에 한동안 집에 들어가는 것도 힘들었다"며 그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수도권 지하철역 선로 위 모습 ⓒ 연합뉴스

"인명사고 발생 시 트라우마 교육 필요해"

앞서 지난 15일에도 수도권 전철 1호선 의왕역~당정역 사이에서 인명 사고가 발생했다. 사망자는 선로에 무단 진입했다가 운행하는 열차에 치여 숨졌다.

이날 인명사고가 발생했던 수도권 전철 1호선에서 정 기관사는 동일한 사고를 겪었다. 1년 만에 같은 일이 되풀이됐지만 현장은 달라진 점이 없다. 전국철도노동조합(철도노조) 관계자는 "승객이 선로에 무단 진입할 수 없도록 감시 체계를 강화하는 등 대안이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이와 관련, 한국철도공사(코레일) 관계자는 "승객이 선로에 진입할 수 없도록 방어 울타리를 쳐놓고 건널목을 통해 들어갈 수 없도록 차단기를 설치해둔 상태"라며 "역사 끝에서 뛰어들지 못하게 경보음이 울릴 수 있도록 조치했다"고 설명했다.

열차 사고를 겪은 기관사에 대한 지원도 제자리다. 철도노조에 따르면, 코레일은 이 같은 사고를 겪은 기관사들에게 5일간 특별 휴가를 주고 심리 상담을 지원한다. 철도노조 관계자는 "5일 간 휴식이 과연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데 충분한지 재고해야 한다는 현장의 목소리가 나온다"며 "사고 수습에 투입되는 객실 승무원 등에 대한 대책은 더 취약하기에 규정을 손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 기관사는 트라우마를 다스릴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씨는 인명사고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그는 "보통 사고가 나면 취미 생활도 끊고 평범한 일상을 포기해 버린다"면서 "심리 상담을 받으면서 쉼 없이 공부도 하고, 운동도 하면서 일상을 되찾으려 노력했다"고 털어놨다.

정 기관사는 "신입사원 때는 열차가 고장 났을 때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위주로 배우는데, 기관사로 근무하다 보면 이런 사고를 겪을 수 있다는 것도 알려줘야 한다"며 "인명사고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침착하게 대처할 수 있는지, 트라우마는 어떻게 극복 가능한지에 대한 내용이 반드시 교육에 들어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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