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은 왜 '민심 겸허하게 받아들인다'를 '받아들여야 한다'로 고쳤을까

이재진 기자 2024. 4. 16.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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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회의 최종 발언 곳곳에서 표현 수위 고심 흔적
야당 일제히 일방향 소통 형식 및 내용 한참 부족 비판

[미디어오늘 이재진 기자]

▲16일 윤석열 대통령이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모습.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통해 내놓은 총선 메시지에 야당의 혹평이 쏟아지는 가운데 책임 주체와 관련된 최종 표현에 대통령이 고심한 흔적이 발견된다.

대통령실은 대통령 발언에 대한 보도 편의를 위해 미리 배포용 자료를 출입 기자들에게 준다. 발언을 기사화할 때는 반드시 발언 이후여야 하고, 최종 발언을 확인 후 보도해야 한다. 대통령이 내용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국무회의 발언은 여권 총선 참패 이후 윤석열 대통령이 민심을 어떻게 읽고 있는지, 사과 혹은 반성 메시지가 포함될지, 국정기조 변화를 수용할지 여부 등에 관심이 쏠렸다. 그만큼 대통령도 발언 하나하나 표현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첫 발언부터 윤석열 대통령은 배포용과 다른 발언을 내놨다. 배포용 자료에선 “이번 총선을 통해 나타난 민심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며 자신을 주어로 한 문장을 썼지만 실제 발언에선 “이번 총선을 통해 나타난 민심을 우리 모두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며 국무위원에게 당부하는 말로 바꿨다.

야당과의 협치 문제에 대해서도 배포용 자료에선 “민생 안정을 위해 필요한 예산과 법안을 국회에 잘 설명하고, 더 많이 소통하겠다”고 나와 있었는데 최종 발언은 “민생 안정을 위해 필요한 예산과 법안은 국회에 잘 설명하고, 더 많이 소통해야 한다”고 바뀌었다.

자신을 주어로 하는 문장은 책임의 주체를 명확히 할 수 있는데, 굳이 “해야 한다”며 국무위원에 주문하는 형태로 바꾼 것은 국무회의라는 형식을 감안하더라도 책임 통감에 부족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더 낮은 자세와 유연한 태도로 보다 많이 소통하고 민심을 경청하겠다”는 표현은 “저부터 민심을 경청하겠다”며 소통 의지를 명확히 했다. “큰 틀에서 국민을 위한 정책이라 해도 세심한 영역에서 부족했음을 통감한다”라는 표현은 “부족했다고 생각한다”로 바뀌었다. “고금리로 고통 받는 민생에”라는 대목에서 '고금리' 앞에 “근본적인”이라는 표현이 추가된 것도 눈에 띤다.

“정책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정책과 현장의 시차를 극복하는 데는 부족했다”고 진단한 대목은 “극복하는 데 부족함이 많았다고 생각한다”고 수정했다. “경제 회생의 온기를 골고루 확산시키는 데까지는 정부의 노력이 닿지 못했다”, “온전히 전달되지 못했다”라던 대목은 “정부의 노력이 부족했다”, “온전히 전달되는 데는 미흡했다”로 고쳤다.

▲16일 윤석열 대통령이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모습. ⓒ대통령실

이날 메시지에 야당은 윤 대통령의 첫 총선 관련 메시지로 한참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한민수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오늘 윤석열 대통령의 대국민 메시지는, 조금이라도 국정의 변화를 기대했던 국민을 철저히 외면했다”며 “윤석열 대통령은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불통의 국정운영에 대한 반성 대신, 방향은 옳았는데 실적이 좋지 않았다는 변명만 늘어놓았다”고 했다.

한 대변인은 “결국 반성은커녕 지금까지처럼 용산 주도의 불통식 정치로 일관하겠다는 독선적 선언이었다”며 “국회와 긴밀히 협력하겠다고 하면서 야당을 국정운영 파트너로 인정하라는 총선 민의에 대해서는 한마디 말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조국혁신당은 국무회의를 통한 일방향 메시지 형식부터 잘못됐다고 비판했다. 김보협 대변인은 “국민은 기자회견이나 '국민과의 대화' 같은 토론 형식을 기대했지만, 국무회의 모두 발언을 통해 준비된 메시지를 읽고 끝냈다”며 “국무회의를 토론의 장으로 이용한 역대 대통령도 있었지만, 윤 대통령이 국무위원들과 토론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일방적 지시의 장이었다. 그곳에서 또다시 일방적 '교시(敎示)'하듯 모두발언을 읽어 내려갔다”고 했다.

김 대변인은 “예전에 탄핵당했던 어떤 대통령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며 “총선 민심을 제대로 읽은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 윤석열 대통령이 언제까지 이렇게 불통하고, 하고 싶은 말만 늘어놓는지 지켜보겠다”고 밝혔다.

홍성규 진보당 대변인도 “대국민담화나 기자회견도 아니고, 마치 지난 4월10일 아무 일도 없지 않았느냐는 듯 대통령은 천연덕스럽게 일상적인 국무회의 모두발언에 나섰다”고 꼬집었다. 홍 대변인은 “(대통령 발언을) 요약하면, 국정방향도 옳고 대통령은 좋은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를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국민들이 난데없이 심판의 표를 던졌다는 것 아닌가”라며 “최소한의 소통과 이해는 커녕 만천하에 공표된 이번 총선의 결과마저 조금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대통령의 태도에, 실망과 절망을 넘어 극히 분노스럽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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