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선수형이 술 따라주며 칭찬한 건 처음, 배구 인기 위해서라면 유튜브도 할 수 있다” 정지석은 꿈을 꾼다

배재흥 기자 2024. 4. 16.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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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정지석이 8일 서울 서초구 더케이호텔에서 V리그 시상식을 앞두고 스포츠경향과 인터뷰를 하며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2024.4.8. 김창길기자



남자배구 정지석(29·대한항공)은 2023~2024시즌 뜻대로 풀리지 않는 배구에 마음고생을 했다. 허리 부상 탓에 남들보다 늦게 정규리그를 시작했고, 그 여파로 제 실력이 안 나왔다. V리그 최고의 ‘공수 겸장’ 아웃사이드히터로 평가받던 정지석도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4연속 ‘통합우승’이란 대업에 도전하던 대한항공에도 정지석의 부진은 악재였다. 정지석은 팀이 꼭 필요로 할 때 ‘에이스’의 기억을 되찾았다. 그는 통합 4연패의 마지막 한걸음, OK금융그룹과의 챔피언결정전에서 맹활약하며 대한항공을 정상으로 이끌었다. 그는 챔피언결정전 최우수선수(MVP) 트로피에 입을 맞췄다.

챔피언결정전 MVP로 선정된 정지석이 트로피에 입을 맞추고 있다. 연합뉴스



■“이대로 무너지고 싶지 않았다”

지난해 9월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남자 배구대표팀에 선발된 정지석은 출국을 일주일 앞둔 시점에 갑작스럽게 허리 통증을 느꼈다. 왼쪽 다리에 힘이 아예 안 들어갈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고대하던 아시안게임을 제대로 치르지 못한 정지석은 정규리그 초반 2라운드에도 출전하지 못했다.

그는 괜찮은 ‘척’을 했다. 지난 8일 V리그 시상식에서 만난 정지석은 “쫓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일부러 여유 있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안일하게 했던 면이 있다”며 “사실은 늦었다는 조급함과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많이 느꼈다”고 고백했다.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은 부담감은 경기력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줬다. 정지석은 “심리적 압박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6라운드가 될 때까지 경기력이 오락가락했다”며 “코치님들도 연습 때는 괜찮은데, 실전에서 부진한 저를 보고 굉장히 안타까워했다”고 전했다.

우리카드와 치열한 선두 다툼 끝에 간신히 정규리그 1위를 차지한 대한항공은 챔피언결정전에 직행했고, 당시 정지석은 “이대로 무너지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는 “내가 누군지 다시 보여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했다. ‘역시 정지석’이란 말이 나오게끔 반전을 일으키고 싶었다”고 했다.

비장한 각오로 코트를 누빈 정지석은 득점(2위), 공격종합(1위), 블로킹(1위), 디그(1위) 등 공수 양면에서 펄펄 날았다. 대한항공은 OK금융그룹과 5전3승제 챔피언결정전을 3차전 만에 끝내고 또 한 번 왕좌에 올랐다.

정지석의 활약은 주장 한선수의 칭찬도 끌어냈다. 그는 “회식 자리에서 (한)선수 형이 술을 따라주며 ‘고생했다’는 말을 해줬다”며 “머리털 나고 처음 들어보는 말인데, 낯설지만 기분은 줗았다”고 미소를 지었다.

정지석이 지난 2일 OK금융그룹과 챔피언결정전 3차전에서 득점 후 세리머니하고 있다. 연합뉴스



■동기부여? “아직 한참 모자라”

정지석은 팀으로도, 개인으로도 그간 V리그에서 상당한 성취를 이뤘다. 4연속 통합우승에 정규리그와 챔피언결정전 MVP도 각각 2번씩 수상했다. 하지만 그는 배구 선수로서 여전히 부족함을 느낀다.

정지석은 “아직 한참 모자란 선수라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지 영상도 많이 찾아보며 공부한다”며 “이번 시즌만큼 배구를 못 한 적이 없어서 다음 시즌엔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고 다부지게 말했다.

5연속 통합우승을 목표로 잡은 대한항공으로서도 2024~2025시즌엔 정규리그부터 정지석의 활약이 필요하다. 올 시즌 외국인 선수 공백을 메웠던 임동혁의 입대로 전력 손실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정지석은 “다음 시즌엔 외국인 선수 역할을 대신한 (임)동혁이가 빠진다”며 “다른 선수들과도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지 얘기해봐야 할 것 같다. 대한항공은 팀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통합 5연패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곧 30대가 되는 정지석은 올해 몸 관리의 중요성도 뼈저리게 느꼈다. 그는 “경기를 뛸 수 있는 최적의 몸 상태를 만드는 게 중요한 것 같다”며 “챔피언결정전을 치르고 나니까 허리는 괜찮은데 이젠 다른 곳이 아프다. 후유증이 없도록 관리를 잘해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

지난해 6월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인터뷰하는 정지석. 연합뉴스



■국가대표 그리고 남자배구 부흥

정지석은 태극마크 유니폼에 대한 강한 애착도 드러냈다. 국제대회 경쟁력을 잃은 남자배구의 인기가 떨어진 것에도 큰 아쉬움을 느꼈다.

그는 “V리그에서는 기록을 많이 세웠다고 생각하는데 대표팀에서는 지지부진했다”고 자책하며 “더 잘할 수 있는데 결과가 좋지 않으니까 답답하고 속상하다”고 안타까운 심정을 이야기했다.

남자 배구대표팀은 지난 항저우 대회에서 61년 만의 아시안게임 ‘노메달’ 수모를 겪었다. 올림픽은커녕 아시아 대회에서도 더는 경쟁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처지다.

정지석은 “1999년생 젊은 선수(임동혁, 임성진, 김지한 등)들의 활약 속에 남자배구가 기로에 선 것 같다”며 “물이 들어올 때 열심히 노를 저어서 경쟁력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래야 팬들도 납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한배구협회는 최근 남자 배구대표팀 사령탑에 브라질 출신 이사나예 라미레스를 선임하며 변화를 모색했다. 정지석은 “새로운 감독님이 어떤 배구를 선보일지 너무 기대된다”며 “대표팀에 뽑힌다면 모든 것을 쏟아붓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그는 자선대회 개최나 유튜브 채널 운영 등 남자배구 부흥을 위한 여러 아이디어를 구상 중이다. 언젠가 국외리그에 진출해 자신의 경쟁력을 시험해 보고 싶은 꿈도 있다.

정지석은 “프로배구를 사랑해주시는 팬들 덕분에 선수들이 포기하지 않고 대표팀 경쟁력을 위해 열심히 하고 있다”며 “응원해주신 만큼 작년보다 나은 성적으로 보답하겠다”고 전했다.

배재흥 기자 he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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